제목: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술만은 아니더군요
한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
우리 아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고 혹 앞으로 살면서 내 자식에게 아픔이 온다면 꼭 나에게 대신 와주길 바랐던 기도가 생각납니다. 그런 마음으로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다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5살이 되면서까지 말을 잘 못하고 다른 아이와 다르게 편집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찾아간 아동 정신과에서 청천벽력 같은 검사 결과를 받아 본 순간 우리 아이가 내 아이가 내 생명 보다 더 소중한 우리아이가 정신과 적인 문제가 있다는 결과를 들었을 때 모든 세상이 어두워지고,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고, 모든 걸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내 눈을 내어서라도 이 모든 현실을 부정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ADHD(주의력 결핍장애)라는 질병을 갖고 태어난 “김인규(가명)” 라는 아이의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가 사물에 인지 능력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생활을 하는 6세부터 점점 증세는 심해졌습니다. 다른 아이와 다르게 사회성이나, 표현력 과 인지발달, 성격발달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우리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보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유치원에서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또 표현력이 또래아이와는 다르게 서투르다보니, 선생님은 표현하지 못하는 인규에게 관심을 두고 관찰하기보다 인규가 다른 아이의 수업을 방해 하지 않을까 하는 쪽에 더 무게를 뒀습니다. 그래도, 유치원 시절은 아이들에 순수함에 묻혀갔으나 본격적인 의무 교육이 시작 되는 초등학교 입학하자 저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웃는 저 아이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또래 아이들에게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불안하고 슬펐습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에게 상담한 결과, 인규의 질병은 절대 불치의 장애가 아니며 감정적인 능력은 또래와 똑같은 감정을 갖고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따라서 학교에서 선생님의 관찰과 또래 반 아이들의 도움으로 집단생활을 하면서 사회성도 익히고, 함께 어울리면 더 좋아 질수 있다는 말에 용기 내어 살고 있는 퇴계원에 국립 ‘도제원 초등학교’ 에 입학시켰습니다.
물가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 마음이 이랬을까요? 학교에 가는 우리 인규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불안하고 애가 타던지. 담임선생님에게 우리 인규 사정을 잘 말씀해 드리고 주변 또래 아이들에게 우리 인규와 놀아 달라고 부탁이 아닌 사정을 하면서 인규 주변에서 인규가 이상한 아이 취급 받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하며 인규가 등교를 한 후엔 제발 잘하고 오길 기도하고 또 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인규의 앞머리가 잘려 있었습니다.
어디서 그랬냐는 말에 제 눈을 보지 못하고 다른 말을 하는 아이를 채근하며 다시 물어도 아이는 다른 말만 했습니다. 우려 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 같아 다음날 학교에 찾아가 제가 민규 뒤에서 보조교사 역할을 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는 아직 그런 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날 이후 아이는 점점 더 이상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자기 눈썹을 뽑기 시작하고,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기 시작 했습니다. 아이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병원에서는 아이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못 이겨 자기를 자해 하는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전에 의사 선생님이 한 말이 저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인규는 감정적인 능력은 또래와 똑같은 감정을 갖고 느끼지만 그것을 표현하는데 장애가 있습니다” 라는 말이 제 심장에 못을 박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남들과 똑같은 감정으로 느꼈을 모든 고통들이 말 못하고 가슴에 묻다 못해 자기 몸을 자해할 정도였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하고 생각하니 차라리 인규가 정신지체로 감정마저 못 느끼는 상태라면 마음에 상처라도 받지 않았을 텐데 라고 몹쓸 생각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우울증 약을 먹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공교육을 포기하고 대안 학교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학년을 마치면 바로 대안 학교로 전학을 시키기 위해 이곳 저곳을 알아보았으나 인규처럼 심한 집중력 장애가 아닌 경우엔 입학하기가 쉽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절망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 노력하며, 1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인규는 2학년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상태는 좀 더 나아 질것 같지 않았고 불치의 장애가 아닌 우리 인규를 어떻게 하든 공교육 속에서 적응 시키려고 2학년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1년 전 했던 대로 민규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 드리고 부탁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신경 써야할 선생님께는 저의 부탁이 부담일 것이라는 생각에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아이의 상태를 상담 하시던 선생님이 아이의 증상을 자세하게 말씀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좀 의아 했습니다. 선생님의 적극적인 모습에 약간 당황도 했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인규 어머님 이 질환은 좋아질 수 있는 질환입니다. 희망을 갖으시고, 학교와아이들 그리고 가정에서 관심을 가져주면 좋은 결과 볼 수 있으니까 같이 한번 열심히 해 보시죠”라고 말씀해주시면서 인규에 대한 이원적인 관찰을 하기위해 가정통신문과, 별도 과제, 등을 따로 보내주시고 이메일로 인규의 학교생활 상황을 2~3일 간격으로 매일 보내 주셨습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우리 집에선 아이에게 어떻게 체계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쳐야할지도 몰랐는데 선생님이 분야별로 집단활동,교우관계,정리정돈,자신감,자기중심적,담임과의관계,일의 속도, 만들기 능력 등 8개 분야로 나눠 학교에서의 행동과 가정에서의 지도 제안 등을 가르쳐주시고 그 결과를 이메일로 서로 공유하며 결과 지도를 해주셨습니다.
저번에는 아이가 웃는 얼굴로 집으로 들어와서 “ 엄마 나 우리 반에서 구구단 챔피언 됐어”라며, 자랑을 하더라고요. 항상 집에 오면 기죽어 들어오는 아이가 신기해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니, 선생님이 평소에 무엇이든 외우는 습관을 가진 인규의 장점을 발견해 아이들 앞에서 자신감을 갖게 해주기 위해 반 아이들 보는 앞에서 구구단대회를 했고 인규가 1등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아이를 바보라고 놀리던 아이들도 이젠 인규에게 함부로 못하도록 선생님이 인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친구가 없던 인규에게 친구를 만들어주시기 위해 일부러 짝꿍과 수업 뒤에 청소를 시키시면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시고 관심을 써 주신 결과, 그 뒤로 인규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고 언어 표현력이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희망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선생님이 그 희망을 우리 인규, 아니 우리 식구들에게 주신 것이지요. 점점 낳아지는 인규를 보면서 우리 친정, 시댁 식구 모두 인규를 불쌍하게 보지 않고 기특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치료해야할 3년간의 치료를 선생님이 다하셨을 정도로 좋아진 상태라고 하더군요. 전 그 말 듣고 인규 손을 붙잡고 병원에서 나오면서 두 눈에 한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전처럼 절망의 눈물이 아닌 희망의 눈물을.....
정말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의술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우리 인규, 아니 우리 식구를 희망이라는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신 선생님 높으신 은혜로 사랑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큰 은혜에 어떤 것이라도 드려야한다는 서툰 생각에 내민 봉투를 보시고 저의 잘못을 꾸짖으시던 선생님의 큰 은혜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이게 하신 선생님.
이중현 선생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동적이네요 학교안에서 두려워하기보다 희망을 안겨주기를
아... 눈물납니다. 선생님, 정말 존경스럽네요.
이 선생님 '학교가 달라졌다' 책 쓰신분 이지요? 최초로 교사출신 교장선생님이신 분. 조현초 교장선생님이셨죠. 시인이기도 하시구요. 전교조로 해직되셨다 복직하셨어요 지금은 경기도 장학관으로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