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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9:1
우리는 종종 종교적 열심과 행위가 신앙이 좋아지게 만든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제사와 반복되는 종교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영적 무감각을 심화합니다. 참된 신앙은 외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순종에 있습니다. 공주야! 하나님을 안다 말만 하고 실제 삶은 엉망인 사람과 대놓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멋대로 사는 사람 중 누가 더 나쁠까? 남 유다는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도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았다.
We often mistakenly believe that religious zeal and works make faith better. However, formal sacrifices and repetitive religious rituals are nothing before God, and rather they deepen spiritual numbness. True faith lies not in outward deeds, but in reverence for God and obedience to Him. Princess! Who is worse: someone who only says they know God but lives a complete mess in real life, or someone who openly denies God and lives selfishly? Even in their desperate situation, Judah did not come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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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나라 앗수르는 주님을 인정하지 않아서 유다를 공격했다. 유다가 악했기에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했지만 둘 다 망했다. 유식하거나 무식 하거나 모두 하나님을 모르는 것으로부터 심판은 시작된다. 예루살렘은 태연히 축제를 즐기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지접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그들을 낮추실 것이다. 수치스럽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굳건한 신화를 하나님께서 손수 무너뜨리실 것이다. 다윗의 왕조가 영원하리라는 당신의 약속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안전하리라는 약속도 하나님께서 손수 무너뜨리실 것이다.
Assyria, a foreign nation, did not acknowledge the Lord and attacked Judah. Because Judah was evil, he used Assyria as a tool of judgment, but both fell. Judgment begins with whether one is knowledgeable or ignorant, or whether they do not know God at all. Jerusalem will enjoy the festival in peace, but now God will go to war against it and bring them down. You will make it shameful. God will personally bring down their unshakable myths. Your promise that David’s dynasty would endure forever, and the promise that Jerusalem with its temple would be safe, will also be personally brought down by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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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예 예루살렘(아리알)이 제단(아리엘)처럼 될 것이다. 불살라 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기회가 있다. 아리엘을 치는 강력한 세력들을 부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들을 순식간에 겨 같이 날려버리시는 분도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적들의 침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심판 의지를 읽어야 한다. 그때라도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돌이키실 것이다. 이것은 경고다. 최종적인 심판의 칼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돌아서야 한다.
The Jerusalem of God’s honor (Ariel) will become like the altar (Ariel). It will be burned. However, there is still a chance. God is also the one who calls forth the powerful forces that strike Ariel, and God will also be the one who blows them away like a fierce gale in an instant. We must read God’s will for judgment by observing the enemy’s invasion. If you turn back even then, God will turn back the adversaries. This is a warning. We must see God’s power and turn away before the final sword of judgment 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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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요행으로 넘기면 더는 기회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에 형식적으로 반응하고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가장 우선적인 심판은 유기다. 어두운 마음이 계속 어둡도록 하신다. 잠든 영혼이 깨어나지 않게 두신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봉헌 계시가 되게 하신다. 입으로는 찬양하고 고백하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을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의 최후다.
If you let this slide as a stroke of luck, there will be no more chances. God will judge Jerusalem for responding merely in form to the opportunity given by God and not turning back its heart. The most urgent judgment is abandonment. He makes the dark heart remain dark. It keeps the sleeping soul from waking. He makes God’s word to them a consecrated revelation. They praise and confess with their mouths, but in their hearts they are the last of those who have turned far from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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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일 뿐이다. 이제 그들에게 하실 기이한 하나님의 일은 심판뿐이다. 우리는 무감각한 습관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믿고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두움 가운데 도모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To them, God’s word is not a word that brings about the work of life, but merely a commandment of man. The only strange work of God to do to them now is judgment. Are we not approaching God with an insensitive habit? Isn’t it more dangerous than not believing in God to live without God while being certain that you believe in Him? What am I plotting in the midst of dark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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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곤궁과 구원(1-8)
a.예루살렘의 심판:1-4
b.예루살렘의 구원:5-8
분별 럭 없는 백성(9-14)
a.스스로 장님이 되는 자들:9-10
b.거절된 예언자의 선포:11-12
c.피상적 신앙에 대한 경고: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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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아리엘이여(1a)
아리엘이여(1b)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1c)
연부년 절기가(1d)
돌아오려니와(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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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2a)
괴롭게 하리니(2b)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2c)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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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3a)
사면으로 둘러(3b)
진을 치며(3c)
군대로 너를 에우며(3d)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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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낮아져서(4a)
땅에서 말하며(4b)
네 말소리가 나직이(4c)
티끌에서 날 것이라(4d)
네 목소리가(4e)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4f)
땅에서 나며(4g)
네 말소리가(4h)
티끌에서(4i)
지껄거리리라(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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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라도(5a)
네 대적의 무리는(5b)
세미한 티끌 같겠고(5c)
강포한 자의 무리는(5d)
불려 가는 겨 같으리니(5e)
그 일이(5f)
경각간에 갑자기(5g)
이룰 것이라(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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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께서(6a)
벽력과 지진과(6b)
큰 소리와 회리바람과(6c)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6d)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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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을 치는(7a)
열방의 무리(7b)
곧 아리엘과(7c)
그 보장을 쳐서(7d)
곤고케 하는(7e)
모든 자는 꿈 같이(7f)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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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 자가(8a)
꿈에 먹었을지라도(8b)
깨면(8c)
그 속은 여전히 비고(8d)
목마른 자가(8e)
꿈에 마셨을지라도(8f)
깨면 곤비하며(8g)
그 속에 갈증이(8h)
있는 것 같이(8i)
시온 산을 치는(8j)
열방의 무리가(8k)
그와 같으리라(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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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놀라고 놀라라(9a)
너희는 소경이 되고(9b)
소경이 되라(9c)
그들의 취함이(9d)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9e)
그들의 비틀거림이(9f)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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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여호와께서(10a)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10b)
너희에게 부어 주사(10c)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10d)
눈은 선지자(10e)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10f)
머리는 선견자라(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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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모든 묵시가(11a)
너희에게는(11b)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11c)
그것을(11d)
유식한 자에게 주며(11e)
이르기를(11f)
그대에게 청하노니(11g)
이를 읽으라 하면(11h)
대답하기를(11i)
봉하였으니(11j)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1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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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12a)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12b)
이를 읽으라 하면(12c)
대답하기를(12d)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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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가라사대 (13a)
이 백성이(13b)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13c)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13d)
그 마음은(13e)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13f)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13g)
사람의 계명으로(13h)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1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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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가(14a)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14b)
곧 기이하고(14c)
가장 기이한 일을(14d)
다시 행하리니(14e)
그들 중의(14f)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14g)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1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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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는 주의 백성_the unbelieving people of the Lord
믿지 않는 이방 나라_an unbelieving foreign country
무지가 자초한 심판_a self-inflicted refe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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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어두움과 이 시대의 문제들이 주께서 기이한 일을 행하심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일 인 것을 고백합니다. 믿는다하면서 믿지 않은 이스라엘과 대 놓고 믿지 않은 아수르는 둘 다 심판을 받았나이다. 주님,입 술이나 명목상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어 생활을 개혁하는 주님의 새 창조가 내 안에, 우리 안에, 불 일 듯 일어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바라기는 매일 큐 티 하면서도 적용 없는 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I confess that the darkness within me and the problems of this age can only be resolved by the Lord doing marvelous things. Israel, who said he believed but did not, and Ashur, who openly said he did not believe, were both judged. Lord, I can only pray that Your new creation, which changes hearts and renews lives—not merely in words or on the surface—will arise within me, within us, as if a fire were kindled. I pray that You help me not become someone who does QT every day but still has no application.
2020.8.18.tue. Clay
신학 비평//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믿고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사야 29장의 날카로움은 이방의 불신앙보다 먼저 예루살렘의 익숙한 신앙을 겨눈다는 데 있습니다. ‘아리엘’은 다윗의 성읍이며 제사의 도시입니다. 절기는 해마다 돌아오고 제사는 계속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반복이 신앙의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거룩한 성읍을 포위하시고 티끌까지 낮추십니다. 성전이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을 소유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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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자체가 무너진다”기보다, 그 약속을 안전보장증서처럼 이용했던 예루살렘의 잘못된 신화가 무너진다는 점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을 마음껏 배반해도 보호받는다는 면허증이 아닙니다. 오히려 언약 백성이기에 그들의 위선은 더욱 엄중하게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주권과 구원의 주권은 같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티끌까지 낮추시는 하나님께서 앗수르와 열방도 티끌과 겨처럼 날려버리십니다(5-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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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유다는 선해서 구원받고 앗수르는 악해서 멸망하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다와 앗수르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제국조차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9-14절에서는 심판이 더욱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단순한 전쟁이나 패배가 아니라 영적 무감각입니다.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가지고도 읽지 못합니다. 여기서 ‘봉한 책’은 계시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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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은 있는데 말씀을 들을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고발하는 종교적 비극입니다. 특히 13절이 본문의 심장입니다.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예배도 하고, 절기도 지키고, 말씀도 공부합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신앙 행위가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신앙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이라는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묵상의 반대말은 반드시 불신앙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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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없는 묵상, 회개 없는 예배, 변화 없는 경건도 말씀을 무력하게 만드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덧붙이고 싶습니다. 삶의 어려움을 곧바로 “내 형식적인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고난을 개인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벌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왜 이런 벌을 받았나?보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떻게 돌이킬 것인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29장의 ‘기이한 일’은 단순히 벌주는 기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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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랑하던 지혜와 종교적 자기확신을 무너뜨려 다시 하나님만 경외하게 만드는 낯선 은혜입니다. 심판조차 새 창조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기도가 그래서 본문과 잘 맞습니다. 주님, 매일 말씀을 읽으면서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말씀 때문에 어제와 다르게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아는 하나님 때문에 오늘 무엇이 달라졌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