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바람 맛
김양순
봄빛으로 치장한 마이산 관광을 마친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고 관광버스에 다시 올랐다. 노학생들을 태운 버스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대아수목원을 향하여 달렸다. 평균 나이 60세가 넘은 문인들은 비가 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모두 동심이 되어 신바람을 날렸다. 버스 안은 노랫가락과 웃음소리 가득한 그야말로 천하태평이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내리던 빗물이 그친 것은 우리가 대아수목원에 도착하기 조금 전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깨끗하게 목욕한 산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파랗게 움돋은 이파리들은 갓난아기 같은 미소로, 군데군데 피어난 봄꽃들은 화사한 처녀 얼굴로 봄바람과 놀고 있었다. 이토록 신선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눈길 닿는 곳마다 생명의 기운이 물씬 풍겨서 “와, 예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수목원에 들어선 우리는 쉼터인 정자에 자리를 폈다. 정답게 음식을 서로 권하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은 가운데 나는 마음이 들떠서 뭔가를 표현하고 싶었다. 마침 바로 옆에 야외무대가 있기에 용기를 내어 일행에 제안을 했다.
“문우님들, 여기 야외무대에서 노래자랑을 한 번 해보신다면 나중에 즐거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나더러 먼저 시범을 보이라고 했다. 나는 아는 노래가 별로 없지만, 옛날 애창곡으로 불렀던 ‘사랑이 메아리 칠 때’ 가사가 생각났다. 망설이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 종이컵을 마이크 삼아 가슴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노래를 흔들어 깨웠다.
-바람이 불면 산 위에 올라/노래를 부르리라 그대 창까지…
녹슨 목소리로 부르는 내 노래가 별 매력이 없었는지, 다음 차례로 나서는 분이 없어서 즉석 노래자랑은 나 혼자로 끝나고 말았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생명력 넘치는 봄날, 어여쁜 꽃이 만발한 동산에서 부드러운 봄바람을 느끼며 노래 부른 순간은, 고운 그림 한 폭으로 내 마음 깊이 저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훗날 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고 노래 한 곡 제대로 부를 수 없는 시절일 때 회상해 본다면, 참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봄바람은 마술사처럼 온 천지를 흔들어 놓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만물은 봄바람 앞에서 다들 빗장을 풀게 된다. 죽은 것 같던 초목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산야를 수놓고, 사람들 역시 마음이 설레어서 나이든 어른들 가슴에도 동심이 돋아난다.
인생 후반부로 접어든 지점에서 만난 문우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동급생 학우들이다. 아직 마르지 않은 가슴속 샘물을 ‘수필’이라는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동질의 정서를 가지고 있기에, 같이 있으면 즐겁고 도타운 정이 생기나 보다. 그래서 수업 시간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수업이 끝나면 점심 식사를 서로 대접하겠다고 순서를 기다려야만 한다.
향기로운 봄날, 20명도 안 되는 숫자에 대형 관광버스를 불러 음식을 바리바리 싣고, 웃음보따리까지 잔뜩 챙겨온 순수하고 특이한 학생들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온종일 먹고 웃고 노래하며 봄의 정취와 따끈한 인정을 만끽하는 사이, 노학우들의 가슴에는 분명히 연둣빛 새싹이 뾰족 뾰족 움텄을 것이다. 모두가 봄바람 맛에 취하여 동심으로 되돌아간 날이었으니.
첫댓글 글을 읽는 나도 등다라 신바람이 납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참 좋은 때 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 인기 작가 되시기 바랍니다~
문학기행을 하셨군요. 깔끔하게 봄의 맛을 빚는 글 솜씨 따라 같이 동행하는 듯 젖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봄바람 글바람 따라 동행합니다.
멋진 상춘기행이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