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산하 기계연구소인 이곳은, 2030년 설립되어 지난 26년간 대한민국 첨단산업을 이끌어온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 한기련은 대한민국의 안보는 물론 세계의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존재들이 태동되고 있다.
"에스원. 자고있나?"
한기련의 연구원 박상호.
올해 나이 37세인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두뇌와 기계에 대한 애정, 일에 대한 열정으로 팀장의 위치에 오른 실력파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에스원과 비밀 프로젝트의 존재를 아는 몇 안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에스원은 놀라거나 하지 않은 채 침대에 걸터 앉아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저을 뿐이다.
그런 에스원을 바라보며 박상호는 속으로 남몰래 투덜거린다.
'쳇, 프로그램을 하려면 이왕이면 쫌 활발한 놈으로 할 것이지, 저건 뭐 완전 좀비잖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반응은 마음과는 정반대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그만 자라. 조만간 대통령님도 만나야하고,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도 되야 하니까……."
역시나 에스원은 고개를 몇차례 아래위로 끄덕일 뿐.
이렇다할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런 에스원의 모습에 박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방문을 닫아주었다.
박상호가 나가자 에스원은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속도가 이게 최대 시속 300km가 가능한 놈이 맞나? 싶을 만큼 느렸다.
거의 게으름뱅이 수준으로.
그렇게 느릿느릿 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에스원은 스위치를 향해 -마찬가지로 느릿느릿하게- 다가가 그것을 눌렀다.
이내 방안은 어둠에 잠기었다.
그러나, 에스원에게 있어 어둠이란 밝음보다 눈이 덜 부신 것일 뿐.
보는 것에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침대로 걸어간 에스원은 이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사이보그로 개조되었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뇌의 반이 살아있고, 팔다리를 제외한 나머지 육체가 유기물임을 감안할 때 에스원은 명백한 인간이다.
음식을 섭취해야 움직일 수 있고 잠을 자야 피로를 풀 수 있다.
더욱이 아직 확정나진 않았지만 조만간 대통령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이 될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푹 쉬어두어야 할 것이다.
실전에 투입되면 언제 쉴 수 있을지 장담이 불가능 하니까…….
***
2056년 12월23일.
바로 내일이 크리스마스 이브고, 모레가 크리스마스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한산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거리는 연말연초가 아니라 평소에도 늘 붐볐다.
하지만 수인이 나타나 무차별적인 살인행위를 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외출을 꺼렸고 자연스럽게 거리는 한산해졌다.
그 결과 피해는 거리의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갔다.
사람들이 거리에 붐비면, 자연스레 자영업자들은 그들을 손님으로 끌어모을 수 있고 그들에게 서비스를 공급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거리가 한산해지면, 자연 끌어모을 손님의 숫자도 줄어들고, 자연 자영업자들은 손님을 하나라도 더 많이 끌어당기기 위해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격을 낮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의 숫자는 많지 않다.
그 결과 자영업자들은 빚만 가득 않고 가게를 헐값에 내다 팔 수 밖엔…….
그런 한산한 거리를 씁쓸한 눈길로 바라보는 중년인이 있다.
정준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자 역대 최장기 집권자인 그가 수행원 하나 없이 홀로 거리에 나와있다.
하지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하긴, 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쓴 그를 알아볼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있어봐야 영부인 정도?
어쨌든 지금 그는 한산한 거리에서 대한민국과 자기 야망의 현실을 보고 있었다.
'바꿔야 한다. 이대로라면……이대로라면 미래는……미래는 없어. 바꿔야해……바꿔야…….'
낙선하거나 죽기직전까지 대통령으로써 집권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준혁은 그게 가능하리라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가능해보였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3년 전.
수인이 나타나고, 그들이 무차별 살인을 자행하고, 정부가 제대로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국민들은 등돌리고……
그렇게 정준혁의 야망은 그 성사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아니, 지금 이대로라면 불과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낙선이 불보듯 뻔하다.
그리고 그것은, 정준혁 개인의 야망은 물론 지난 23년간 그가 대한민국에 뿌리 깊게 심어 놓았던 것들의 근간이 뒤흔들림으로써 대한민국의 뿌리가 뽑히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비약이 심한듯 하지만, 실제 현 야당인 신좌익이 지난 20여년간 야당으로 지내며 쌓아온 내공과 20여년간 여당으로 집권한 신우익에 대한 반감 등을 볼때에 신좌익이 여당이 될 경우 그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신우익 25년을 파고들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물론 정준혁의 비밀세력과 그들이 추진한, 신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일 몇 개는 밝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감춰진 진실들은 명명백백 밝혀질게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극심한 혼란에 사로잡힐 것이며 그것은 대한민국의 침몰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막기위해서라도 정준혁은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를 해야한다.
그래야만 그의 야망도, 대한민국도 지킬 수 있으니까.
'에스원…….'
불연듯 정준혁은 에스원을 떠올렸다.
에스원.
애초 목적은 수인 사냥이지만 실상 정준혁의 야망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존재.
이제 정준혁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의 카드는 그것 하나 뿐이다.
'내일이던가? 에스원과의 대면……훗, 기대되는군.'
한 차례 씁쓸함이 감도는 눈빛으로 한산한 거리를 바라본 정준혁.
이내 발걸음을 옮겨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그의 걸음걸이는 힘이 없었지만 왠지모를 희망같은 것이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