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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9:15
이사야는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은혜로만 회복이 이루어짐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왕이시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는 교만 속에 머물 때가 많습니다.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공주야!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면 악하고 거만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삶이 깨질 수밖에 없고 회복이 불가능하게 된다.
Isaiah reveals how powerless human wisdom is and proclaims that restoration is accomplished only by God’s grace. We say that God is King, yet we often remain in the arrogance of trying to make ourselves the masters of our own lives. What does the calling to holiness mean to us? Princess, the master of my life is not me, but God. If you do not know that fact, you will have no choice but to live wickedly and arrogantly. Then life is bound to be shattered, and recovery will become im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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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길은 정반대에 있다. 예루살렘의 정치인들에게 사실상 하나님은 죽은 존재였다. 자신들의 계획을 아뢸 필요가 없는 존재이며, 그러면 그가 먼저 알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토기장이가 아니라 토기였고,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이었다.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이용하고 싶을 때만 찾아가는 존재였을 뿐이다. 하나님을 자기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총명도 없는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다.
The path to recovery lies on the opposite side. To the politicians of Jerusalem, God was, in effect, a dead being. Because they were beings who had no need to reveal their plans, and then he was, first of all, an unknowable being. To them God was not a potter, but pottery; not a Creator, but a creation. It was no different from an idol. It was merely something that came only when it was wanted to be used. He regarded God as a being without the ability to solve his own problems, nor intelligence. But such people are already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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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죽음과 파멸을 만들어내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창조주로, 역사의 주인으로 부상하실 때 모든 것이 뒤집어질 것이다. 아니 정상화될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하나님을 업신여긴 자들이 사라질 것이다. 먼저 자연의 변혁이 찾아와 숲이 풍요로운 토지로 변할 것이다. 그건 시작이다. 못 듣는 사람이 듣고, 맹인이 보고, 겸손한 자, 힘없는 자, 가난한 자가 즐거워할 날이 오게 하실 것이다.
They are those who, regardless of the God of life, create death and destruction on their own. When God rises as the Creator and the Master of history, everything will be turned upside down. No, it will be normalized. Those whom God delights in will emerge as the main actors in history, and those who have looked down on God will disappear. First, the transformation of nature will come, and the forest will turn into fertile land. That’s the beginning. A day will come when the deaf hear, the blind see, and the humble, the powerless, and the poor may rej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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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그들을 억압하여 하나님의 질서를 망가뜨리고 의인을 억울하게 한 강포한 자는 끊어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오늘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그 나라를 보게 하신다는 뜻이고, 그 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변혁과 역전의 역사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회복되고, 우리를 통해서 회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수치를 명예로 바꾸는 날이다. 불평을 감사로 바꾸고 불순종을 순종으로 바꾸는 날이다.
Conversely, the oppressor who oppresses them, destroys God’s order, and wrongs the righteous, will be cut off. This is the new heavens and new earth we dream of. The coming of God’s kingdom today means that He has made us see that kingdom, and living as a citizen of that kingdom means participating in this God’s work of transformation and reversal. We will be restored, and He will restore through us. God’s salvation is the day when shame is turned into honor. It is the day to turn complaints into thanksgiving and disobedience into obed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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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대접 받으시고, 우리는 당신의 피조물의 자리를 기뻐하며, 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을 즐거워하는 삶으로 되돌리시는 것이다. 그런 구원이 오늘 내가 누리는 구원이고, 내가 기대하는 구원인가? 토기장이를 진흙처럼 여길 수 있는가? 죄인들을 주께 돌아오게 할 만큼 주를 경외하고 사랑하는 삶과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가? 내가 송사로 사람에게 죄를 입히고 헛된 일로 의인을 억울케 한 일은 무엇인가?
Now God will be treated as God, and we will be restored to a life in which we delight in the place of your creatures and take pleasure in living as your people. Is that salvation the salvation I enjoy today, and the salvation I expect? Can you regard a potter as mud? Is there a life and a history among us that fears and loves the Lord enough to bring sinners back to the Lord? What is it that I have wronged people through lawsuits and unjustly wronged the righteous through vain d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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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무시하는 정치(15-16)
a.자기 계획을 숨기는 자들:15
b.스스로 결정권자가 되려는 자들:16
여호와의 응답(17-21)
a.구원시대의 변혁:17-18
b.겸손하고 가난한 자의 기쁨:19
c.강포한 자의 종말:20-21
야곱의 구원(22-24)
a.돌아오는 구원 시대:22
b.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23
c.불순종의 극복: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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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 진저(15a)
자기의 도모를(15b)
여호와께 깊이(15c)
숨기려하는 자여(15d)
그 일을(15e)
어두운데서 행하며(15f)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15g)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1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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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16a)
패리함이 심하도다(16b)
토기장이를(16c)
어찌 진흙 같이(16d)
여기겠느냐(16e)
지음을 받은 물건이(16f)
어찌 자기를(16g)
지은 자에 대하여(16h)
이르기를 그가 나를(16i)
짓지 아니하였다(16j)
하겠으며(16k)
빚음을 받은 물건이(16l)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16m)
이르기를 그가(16n)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16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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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구에 레바논이(17a)
기름진 밭으로(17b)
변하지 않겠으며(17c)
기름진 밭이(17d)
삼림으로 여김이(17e)
되지 않겠느냐(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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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18a)
귀머거리가(18b)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18c)
어둡고 캄캄한데서(18d)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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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자가(19a)
여호와를 인하여(19b)
기쁨이 더하겠고(19c)
사람 중 빈핍한 자가(19d)
이스라엘의(19e)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19f)
즐거워하리니(1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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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강포한 자가(20a)
소멸되었으며(20b)
경만한 자가 그쳤으며(20c)
죄악의 기회를(20d)
엿보던 자가(20e)
다 끊어졌음이라(2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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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21a)
송사에 사람에게(21b)
죄를 입히며(21c)
성문에서 판단하는 자를(21d)
올무로 잡듯 하며(21e)
헛된 일로(21f)
의인을 억울케 하느니라(2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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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아브라함을(22a)
구속하신(22b)
여호와께서(22c)
야곱 족속에 대하여(22d)
말씀하시되(22e)
야곱이 이제부터는(22f)
부끄러워 아니하겠고(22g)
그 얼굴이 이제부터는(22h)
실색하지 아니할 것이며(2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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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손은(23a)
나의 손으로(23b)
그 가운데서 행한 것을(23c)
볼 때에(23d)
내 이름을(23e)
거룩하다 하며(23f)
야곱의 거룩한 자를(23g)
거룩하다 하며(23h)
이스라엘의 하나님을(23i)
경외할 것이며(2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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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혼미하던 자도(24a)
총명하게 되며(24b)
원망하던 자도(24c)
교훈을 받으리라(24d)
하셨느니라(2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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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망할 사람_a damned man to the end
망했으나 회복할 사람_a man who is doomed but will recover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함_Holy the name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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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론의 황폐함을 기름진 밭으로 만드시는 주님, 주님께서 원하시면 육체의 질고를 고치실수 있다고 하였사오니 수재민들과 환우들을 지금 고쳐주옵소서. 더 이상,아프지 않고 고독하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새 창조가 내게 이루어지기 위해 먼저 교만(=마음)이 처리 되어져야 하나이다.(15.16) 하나님께 부정직하면 끝내 망하지만, 지금 하나님께 돌이키면 망했어도 회복될 것을 믿나이다. 세상의 강포가 소멸되고 경만한 자가 그치게 되며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가 다 끊어지는 그 날을 위해 속히 오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O Lord, who makes the ravages of Rebaron rich, If the Lord wants you to, he says you can fix your physical condition, so please fix the flood victims and your friends now. Please, protect me from pain and loneliness. Pride (=mind) must be dealt with first in order for new creation to come true to me. If you deny to God, you will be ruined, but if you turn to God now, you will be restored. Come quickly for the day when the siege of the world is extinguished, and the humble is stopped, and those who have seen the opportunity of sin are cut off. Lord Jesus, come!
2026.8.19.wed. Clay
신학 비평//
토기장이를 진흙처럼 여길 수 있는가? 이사야 29:15-24의 핵심 죄는 단순한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의 자리바꿈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자기 계획을 숨기면서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정치와 삶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고발하는 실천적 무신론입니다. 16절의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는 그래서 강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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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자기 삶의 절대적 결정권자가 되는 순간, 진흙이 토기장이를 평가하는 역전이 일어납니다. 문제는 인간이 계획하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선언이 절대화될 때 자유는 쉽게 교만으로, 지혜는 자기기만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파괴로 끝나지 않습니다. 17절부터 놀라운 역전의 신학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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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레바논이 기름진 밭이 되고, 귀머거리가 듣고 맹인이 보며, 가난하고 겸손한 자가 기뻐합니다. 반대로 강포한 자와 재판을 왜곡하여 의인을 억울하게 만드는 자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개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뒤틀린 사회적 관계와 정의까지 바로잡는 새 창조입니다. 따라서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은 세상과 단절되어 종교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함으로써 인간도 다시 인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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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면 약자를 바라보는 눈도, 돈과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23절의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는 예배당에서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특히 마지막 24절이 아름답습니다. “마음이 혼미하던 자도 총명하게 되며 원망하던 자도 교훈을 받으리라.” 회복은 완벽했던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길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배우기 시작하는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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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끝까지 망할 사람”과 “망했으나 회복할 사람”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실패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가에 있습니다. 새 창조는 세상이 바뀌는 데서만 시작되지 않고 토기장이의 자리를 차지했던 내가 다시 진흙의 자리로 내려오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자리는 굴욕의 자리가 아닌 나를 빚으시는 분의 손에 나를 맡길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실 때 비로소 인간도 인간다워지고, 그때 수치는 명예로, 원망은 배움으로, 불순종은 순종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결국 이사야가 말하는 회복은 ‘내가 다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시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