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it turns out 밝혀지다 라고 해석이 되는데
왜 수동태 형태가 아닐까요??
read 적혀있다와 같은 맥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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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왜 수동태이어야 할까요?
한국어로 "밝혀지다"이면 수동태이어야 할까요?
한국어는 왜 "밝혀지다"라고 할까요? 사람이 무엇을 규명하는 기능에 중점을 둔 표현 아닌가요?
과연 "밝히지다"는 한국어가 It turns~ "알고보니 ~이다"는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있는 절대적인 표현일까요? 어떤 것이 드러나는 현상은 사람이 드러내는, 밝혀지는 현상으로만 드러나는 걸까요? 아니면 모습과 눈과 봄(seeing)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일시적으로 화합하여 일어나는 지극히 조건적인 현상일뿐일까요? 눈이 없으면 보일까요? 모습이 없으면 보일까요? 봄이라는 인식 작용이 없다면 보이는 것이 있을까요?
"밝혀지다"라고 말하니까 당연히 수동태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어의 사고방식이 아닐까요? 그것이 어떤 것의 나타남이라는 현상을 온전히 말하는 유일한 표현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지금 보고 있는 이 화면은 여러분이 보고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러분이 보고 있지 않더라고 그것이 거기에 있어 나타나기 때문에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러분이 무의식 상태로 잠들어 있어도 보이는 것일까요? 아니면 화면의 모습과 눈과 봄(seeing)이 이 순간에 합쳐져서 여러분의 눈을 통해서 나타나는 화면을 여러분의 마음이 보고 있는 걸까요?
It appears ~는 '그것이 ~로 나타난다'로도 해석되고, '(그것으로) ~로 보인다"로도 해석됩니다. 그리고 appear는 자동사로서 절대로 수동태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것이 나타나는 것과 어떤 것이 보이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한쪽이 절대적으로 그 현상을 말하는 유일한 진술이라고 할 수 없는 건 아닐까요? It appears ~는 It이 억지로 ~로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억지로 ~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수동태가 불가한 절대 자동사적인 현상임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It turns out은 turn이 동작동사로서 "돌리다"의 뜻일 때와는 다릅니다. "돌리다"의 뜻일 때는 돌리는 것이 있으니 수동태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It turns out은 It이 자연의 흐름으로 돌아서 밖으로 나오는 자연현상의 나타남과 드러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이스 사람들은 이렇게 자연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을 physis라고 불렀습니다. physis의 뜻은 Martin Heidegger에 따르면 "the arising of something from out of itself(어떤 것이 자신의 밖으로 나타나서 생김)"("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Martin Heidegger, Basic Writings: 293)입니다. 이것은 꽃의 피어남과 같은 자연적인 현상이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우리가 그것을 밝혔기 때문에 나타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원래 꽃의 피어남이 있어서 우리에게 나타난 것일뿐일까요? 우리가 눈을 감고 잠이 들었을 때도 우리에게 꽃의 피어나는 모습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꽃이 피어나는 순간은 우리의 눈과 꽃의 피어나는 모습과 눈에 들어오는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이 순간적으로 합쳐져서 일어나는 것일까요?
It turns out~은 말하는 사람도 있고 듣는 사람도 있는 상황 자체이자, 말하는 사람의 밑(sub-)에도 깔려 있고(-ject) 듣는 사람의 밑에도 깔려 있는 말의 주제(subject) 자체인 It이( https://cafe.naver.com/maljjang2/1251945
가주어 or 비인칭 It?: <it takes + 시간 to 동사원형> & <It seems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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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타남과 사라짐의 상태적인 돌아감(turns) 속에서 밖으로(out) 나타나는 현상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It turns out ~은 It의 절대적 자동사적 상태를 통해 ~라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It turns out~에서 우리가 밝혀졌다고 하는 현상은 이 It이 ~로 나타남이죠. 알고보니 It은 ~인 것이죠.
이것은 자연과학의 발전과도 통합니다. 즉 우리가 어떤 것을 밝혀내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죠. 물론 우리의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에 초점을 맞추어 "밝혀내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의 전부는 아니죠. "밝혀내다"라고 하는 것은 기껏해야 사실의 반쪽일 뿐입니다. 스스로 나타나는 그 현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밝혀낸다는 것인가요? 스스로 나타나는 그 현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밝혀냄"은 조작과 날조 즉,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요?
영어에서 자연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이렇게 현상의 나타남에 초점을 맞추는 표현들, 즉 중간태(middle voice)의 표현들이 늘어납니다( https://cafe.naver.com/maljjang2/1263327
물주구문과 중간태: 기타가 연주했다(The guitars pla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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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표현들과 동사들은 한국인에게 한국어에서 벗어나서 영어가 말하고자 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합니다. 한국어로 영어를 이해하면 결코 영어를 익힐 수 없다는 것을 눈짓하고 손짓합니다. 영어를 영어로 이해할 때, 영어가 영어로 말하는 것이 드러납니다. 영어가 영어로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 초점을 맞출 때, 영어가 영어로 알아차려진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한국어가 유일한 해석이 아니고 한국어가 유일한 언어는 아니며, 영어에는 영어가 가리키는 열려있는 비밀(the open secret)이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출처 https://cafe.naver.com/maljjang2/127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