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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 생가지에서
이제 논마다 모내기를 끝내고 뿌리를 내리면서 하루 다르게 노릇하다가 푸르러진다. 곧 빈 들이 시퍼렇게 채워질 것이다. 아담하니 전형적인 농촌이다. 성삼문 선생 유허지에서 이웃에 있는 최영 장군 사당으로 간다. 동네로 들어섰다. 밭에는 담배를 많이 심었다. 한 잎 한 잎 밑에서부터 따서 잘 건조하여야 좋은 등급을 받고 제값 받게 된다. 한우를 키우는 농가도 있다. 소들이 멀뚱멀뚱 쳐다본다. 그러나 사람들은 만날 수가 없다. 언덕바지를 올라 주차장이 나온다. 다시 가파르게 비탈진 길을 시멘트포장 하였으나 차도 힘들다고 내려서 걸어올라 간다. 뒤뚱뒤뚱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땀까지 힘들게 한다. 산중턱에 올라 최영 장군 사당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닭재산으로 닭재봉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수리봉과 매봉이 있다. 닭재봉 바로 아래에 최영 장군의 사당인 기봉사(奇峰祠)가 자리를 잡고 수리봉 아래에는 성삼문 선생의 노은단이 있으니 명산인 셈이다. 닭재봉 양쪽에서 수리와 매가 닭을 잡아먹고 싶지만, 서로 노려보고 있으니 섣불리 달려들지를 못하는 형세라고 한다. 가운데 닭은 항상 양쪽의 견제와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명당인 곳이다. 닭재산! 닭의 벼슬은 문(文), 발톱은 무(武),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 ‘꼭꼭’ 거리며 병아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규칙적으로 새벽을 알려주는 것은 신(信)이라고 하여, 다섯 가지의 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최영 장군(1316~1388)은 이곳 홍북면 노은에서 태어나 홍건적을 격파하고 왜구를 섬멸하였으며 홍성대첩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큰 공을 세운 명장이다. 고구려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 요동정벌에 나서기도 하였다. 더구나 이곳 홍북면 노은은 비록 최영 장군은 고려 사람이요, 성삼문 선생은 조선의 사람이지만 불과 102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동네서 태어난 거목이니 더 많은 관심을 끄는 화제의 마을로서 길지라고 아닐 수 없다. 굳이 풍수지리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최근에는 산 너머 이웃에 내포신도시가 생겨나 도청까지 옮겨왔으니 이 또한 예사로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다. 이 마을의 뒷자락에 비록 야트막하지만 닭재산이 있는 것이다.
최영 장군은 고려 사람으로 위화도회군 때부터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고려의 역적인 이성계에게 밀리며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성삼문은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단종의 역적 수양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또한 같은 홍성 출신인 김좌진 장군은 일본이라는 역적을 넘어 국가 간의 철천지원수인 일본을 상대로 만주벌판에서 독립군으로 맹활약 하였으며 한용운 선생은 같은 시기 스님으로 3.1독립운동을 주도한 한 분이다. 하지만 이성계는 혁명군으로서 그 당위성을 인정받았으며 최영 장군은 장군대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또한 수양대군은 세조로서 나름 후대에 논란 속에 인정을 받은 셈이고 성삼문의 절의 또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껏 반성은커녕 사사건건 얄미운 짓만 일삼는 존재로 남았다. 그럴수록 김좌진 장군이나 한용운 선생의 존재가치는 더 높이 평가된다. 이처럼 홍성이 충절의 고장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산 너머에 바위가 아주 많고 빼어난 용봉산이 있다. 최영은 장군봉에서 활 쏘고 말달리며 무예를 단련하였다. 심지어 자신이 쏜 화살보다 말이 느리다고 애마를 단숨에 칼로 내쳐 묻었다는 말무덤까지 전해오고 있다. 일찍이 돌밭에서 훈련한 탓인가「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명언을 만들어 냈다. 요즘은 부정한 돈의 흐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검은 유혹에 빠져들었다가 본인은 물론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지나친 욕심이 부르는 화근이라고 할 것이다. 내 것이 아니면 돈 보기를 종잇장처럼 하여야지 은행원이 눈앞에 돈에 현혹되면 어떨까? 수백 년이 흘렀어도 최영 장군의 그 한마디는 영원불변 진리로 번뜩이게 한다. 사당에서 탁 트인 전경은 가히 일품이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절로 패기가 넘칠 것이다. 온통 소나무 숲인데 사당 위로 솟아오른 소나무 우듬지가 예사롭지가 않다. 사당으로 더할 나위없는 곳이지 싶다. 길목 숲에 커다란 복숭아나무가 있다. 매실만큼 한 것이 다닥다닥 열려 풋내를 풍긴다. 뽕나무 오디의 붉은 열정이 까맣게 익어 바닥에 나뒹군다. 맛본 몇 알 달콤함이 마치 최영 장군의 넉넉한 인품처럼 스며들었다. - 2013. 06. 08. 뜨락 문학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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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장군이 계신 곳은 틀별했습니다.
얼마전 용봉산 산행~~~좋은산행 추억~~~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