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우 대사의 공인(公人)됨
권영민

김승웅 형,
비 외교관 출신으로 형만큼 대한민국의 외교를 아는 70 년대 외무부 출입 기자가 없었지요.
지난번 기사 "대사 박건우를 생각하며!" 는 그의 실증 사례이지요.
"대사 박건우"는 깨끗했던 고인의 외모에 외무차관을 마치고
주미대사를 역임하였던 선배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고인이 신라호텔 목욕탕에서 돌아가신 것이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주미 대사만 마치시고 귀국하시면 외부부 장관은 따 놓은 당상이었지요.
그러나 운명이 고인을 생각하였는지 모르지만, 이게 뒤로 한 텀 늦어젔지요,
고인이 외교부 의전장 시절, 대통령의 미국방문 선발대로 미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지요. 그 때는 노태우 대통령 때라고 생각됨니다. 이때 저는 고인과 일행이 되어 함께 방미 길에 올랐습니다.
고인은 제 외교부 선배였기 때문에, 당시 대통령의전비서관을 맡았던 저로서는
고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던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로스앤젤리스에는 고인의 동생이 KAL 지사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일행 중에는 훗날 경호실장이 되신 OOO씨(궁정동 사건 때 복부에 총탄을 맞아 신문 보도를 많이 탄 분)가
경호처장으로 같은 단원일 때죠,
단장이시던 박 대사가 처음부터 동생 만나기를 꺼려하고
"공무가 제일 중요하여, 사무는 공무를 마치고"하면 된다는 논지였습니다.
동생 만나기가 외국(LA) 에 나와 쉽지 않던 시절인데,
보통사람 같았으면, LA에 도착하자말자, 동생부터 만났을 텐데,
공무를 다 끝내고, 그것도 출발하기 직전에야 공항에서 동생을 만나는 것을 보고,
고인의 공인(公人)다운 자세에 감동을 먹었습니다. 또 모두가 분발했지요.
그렇습니다. 고인은 나름의 행동과 처신의 논리를 지니신, 보통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권영민/아산평화포럼 공동의장/주(駐)독일, 노르웨이, 덴마크 대사, 애틀랜타 총영사 역임/저서: "자네 출세했네"/서울대 독문과 졸/충남 아산 産>
PS:
김승웅,
한국일보에서 외무부 출입기자(충남 금산 산, 전주북중,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
후에 한국일보 주 파리 및 문화일보 주 와싱턴 특파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