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8 주일예배
본문: 에베소서 6:10-13
제목: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
1.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한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엡6:10)
우리가 믿음으로 강건해질려면 먼저 주 안에 있어야 한다.
‘주 안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연합으로 강건해져야 한다.
그런데, 내 속에 다른 것이 있으면 주와 연합을 이룰 수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히1:3)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셔야
예수를 주로 믿고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며 주와 연합을 이룰 수 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이 세상의 신이 마음을 혼미케 하여 이 영광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믿지 못하고 주와 연합을 이룰 수 없다.
이 세대를 그대로 본받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게 된다.
주와 연합할려면 내 속을 비워야 한다.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려야 한다.
그래야 그분을 얻고 곧 모셔 들이고 그 분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내게 유익하던 것 중, 버린 것 얼마나 되는가?
버린 게 있기나 한가?
다 그대로 움켜 쥔 채, 그 위에, 그 겉에, 예수 이름 하나 얹은 것 아닌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가 이루어질 수 있다.
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스도 안이 아니라 세상 안에 그대로 있고
이전 것은 지나간 적이 없다면?
새 것은 찾을 길이 없다면?
그 사람은 명목상 그리스도인이고,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
바리새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였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였다.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하게 하였다.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 바리새인도 많고 사두개인도 많으니 문제이다.
겉은 그리스도인 같은데 속은 아니면 그런 것이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2:28-29)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표면적 세례가 세례가 아니다. 오직 이면적(속)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고,
세례도 마음에 해야지,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하다.
속이 그리스도인이어야 하고 세례도 영으로 마음에 받아야지,
율법 조문 따라 곧 교리 이론 따라 받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고 세례 받아야 한다.
물 세례는 그것에 대한 인침일 때만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한다.
사람들은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속한 것으로 강건해질려고 한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데도 오직 눈에 보이는 것이다.
심히 큰 능력은 그리스도께, 하나님께 있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한다.
그리스도인의 비밀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질그릇에 모셨기에, 연합했기에, 우리는 강건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방으로 육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질그릇은 강해 봤자 이다.
우리가 고난을 통해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고,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질 때,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된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한 것이다.
초대교인들이 발도인들이 화형에 극형에 처해지면서도 저항하거나 굴복하지 아니하고
의연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진 것이었다.
약한 그 때에 그 강함이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켰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한다.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으로 내가 가진 소유와 경력으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방법이요 결국 망쪼로 가는 비결이고 첩경이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께 멀리 떠난 사람이다.
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12a)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선지자의 글을 통해 밝혀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를 이어받은 발도인들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과 하늘에서 큰 상을 확실히 믿었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를 이루심을 믿었기에
혈과 육으로 무장한 유대교와 로마교에 혈과 육으로 맞상대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힘을 가진 자들, 박해를 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과 같이 혈과 육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주님 말씀하셨다.
기독교 역사는 십자가에 죽고 핍박을 당하고 계속 지는 것 같은데,
혈과 육으로 싸우지 않기 때문에 당하기만 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주리게 하시고 낮추기만 하시는 것 같은데,
결국 이기는 자는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니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사방에서 욱여쌈을 당해도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질그릇 안에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지만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진다.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묵묵히 주의 인도 따라 말씀으로 살면서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항상 기뻐하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상대방의 혈과 육에 대해서도 아니고 나의 혈과 육으로도 우리는 싸우지 아니해야 한다.
서로 사랑해야 하는 관계가 더욱 깨지고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하나님이 맺어준 우리의 관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관계임을 알고서
내가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이 현명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우리의 관계가 힘들고 어려워질 때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님을 돼새길 필요가 있다.
3. 우리의 씨름은 마귀와 그 세력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서
그 배후에 있는 마귀와 그 세력들과의 싸움임을 명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성령의 역사도 마귀의 역사도 믿지 않는 현대판 사두개인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다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고 먹으로 쓴 돌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사람의 지혜, 먹물이 문제이다.
그 먹물 배후에 마귀와 귀신들, 그 세력들이 있음을 성경은 누누이 명시하고 있다.
과학과 학문이 우상이 되고, 현대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이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본문을 믿지 않고, 영의 존재를 믿지 않으니,
교회가 세상이고, 세상이 교회인 것이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고,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이 되고 있다.
교회 안에 있는 목사들과 교인들만 모르는 가운데, 교회는 마귀와 귀신들의 처소가 되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세상 통치자와 권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귀신들과 권세들을 말한다. 작은 지역, 소수를 통치하는 귀신들이다. 산신령? 부엌귀신?
마귀와 귀신들도 통치 구조와 계급이 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 위에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 있다.
다니엘이 21일 금식 기도할 때, 첫 날에 가브리엘이 왔지만, ‘바사 국군’(바사 왕국의 군주)이
막아서 오지 못하다가 마지막 날에 미가엘 천사의 도움을 받아 도착했다고 했다.
그 ‘바사 국군’이 바로 바사국을 통치하는 마귀 세력이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은 지금의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은 이 공중 권세 자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못하면,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요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자기가 운명의 선장이요, 그 키를 쥐고 있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 같지만, 이 어둠의 마귀의 꼬임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에덴 동산의 뱀이요 살인자요 거짓의 아비의 직계 영들이다.
그래서 세상은 날로 어두워지고 혼란스러워지고 공허한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최고의 영적인 악의 마귀들이다.
천사들은 인간보다 원래 훨씬 뛰어난 본성을 지닌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천사들이 타락하였으니, 그들의 악은 사람들의 악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심할 수밖에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지 않으면
이 악의 영들을 상대함에 있어서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그 위에 입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3)
선다는 것은 무너지거나 항복하지 않고 이겨서 전쟁터에 견고히 서 있는 것을 말한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여야 한다.
힘의 중심인 허리에 띠로 무장하는 것이 진리의 말씀이어야 하고,
가슴과 배 전체를 보호해 주는 호심경은 자기 의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여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이 주는 화목과 평안이 우리의 신발이 되어야 하고
악한 마귀의 모든 불화살을 막는 방패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이다.
사람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서 마음과 생각과 뜻을 다 찔러 쪼개고 판단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다.
로마 병사가 완전무장하는 것에 비유하여 전신갑주이다.
성경이,하나님의 말씀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하고,
그 위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하신다.
우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어야 함을 우리는 더더욱 깊이 깨달아야 한다.
먹으로 머리의 돌판에 쓴 것들이, 율법 조문들이, 교리책들과 신조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알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들만이 우리를 살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씨름의 상대는, 작은 지역에서도, 이 어둠의 세상에서도, 하늘에서도,
역사하는 악의 영들임을 확실히 기억해야 한다.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그 배후에서 그 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악한 영의 존재인지를 확실히 알면,
우리의 싸우는 강건한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임을 분명히 알면,
우리는 넉넉히 싸워 이길 것이다. 하늘에서 그 상이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