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100원과 눈깔 사탕"
벌써 40년도 훨씬 지난 소싯적 이야기이다.
가물가물하면서도 아련한~
그러나 어느 대목은 마치 엊그제의 일처럼 명료한 기억이 가슴을 뛰게 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말,
우리 집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고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였다.
우리 집 역사상 (내 위로 2명의 형이 있었지만) 학교에 진학한 아들로서는
내가 처음으로 “우등상”을 타와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기 때문이다.
(학교에 입문한 첫해에 상을타는 일은 모두의 관심사였기에 마을에 금새 소문이 났다)
기분이 좋아진 어머니는 그해 설날에 내게 새 옷을 입혀 마을에서 15리나 떨어져 있는
먼 동네의 막내 이모부에게 나로 하여금 세배를 가게 하였다.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태어나 생전 처음’으로 제법 먼 길을 떠난 것인데,
왠지 싫지가 않은 "막연하지만 뭔가에 대한 기대”로 마냥 가슴이 설레는 그런 여행이었다.
이모부는 '마을 이장을 도맡아 지내다시피 한' 꽤 똑똑한 인물로 정평이 난 분이셨는데,
고만 고만한 자녀들이 5~6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가장이셨다.
얼굴도 잘 몰랐던 이모부께 세배인사를 드리고 나서 자리를 고쳐 앉자, 이모부께서
“어디보자! 우리 아들 놈, 공부도 잘해서 우등상을 탔다면서?”라는 말씀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고서는 세뱃돈을 내미는데,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
그 당시 세뱃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100원짜리 지폐를 주시는 것이 아닌가?
놀라 망설이는 나에게 이모부는 “어서 받아 학용품 사서 쓰거라!” 하시면서 굳이 쥐어 주셨다.
그때의 기분이란, ~~~~
지금생각해도 가슴이 뛰고 찌릿한 흥분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다.
가난한 시골이라는 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 100원은 상당히 큰돈이었다.
더우기 자잘한 자식들이 적지 않은 환경이었음에도
조카인 내게 그런 거금을 선뜻 건네 주신 이모부의 통 큰 배포는
나 뿐 만이 아니라 친척들 사이에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1원이면 눈깔사탕을 10여개나 살 수 있었고,
10원이면 건빵을 도시락으로 가득 채워주던 시절이었다.
나는 너무나 흥분하여
‘온천지에 소복이 쌓인 눈길위에 흩날리는 함박눈’을 맞고 걸으면서도
추운 줄 모르고 다시금 15리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
(어쩌면, 주머니에 가득채운 눈깔 사탕을 먹는 즐거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이후 초등학교시절 동안 내내 ~
누군가로부터 100원의 용돈을 받아 본 기억이 내게 없다.
그런대로 살았던 우리집이었음에도
"5학년 소풍때 어머니는 내게 고작 10원~20원의 용돈"을 주셨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당시 부유층 자녀들만 신던 운동화도 불과 몇십원에 불과하던 시절, 내게 찾아온 로또! )
그 이후,
지난한 젊은 날을 보낸 끝에 나는 '큰 돈을 버는 기회'를 잡았건만
안타깝게도 '그 인심 후하고 사람 좋았던 이모부'가 세상을 일찍 떠난 뒤였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 그 충격적인 사건을 잊지 못하고 항상 이모부께 감사하고 있었다)
끝내 내가 '이모부'께 어떠한 보답(?)도 할 기회를 가질 수는 없었지만,
사촌 동생 가운데 “행정고시 패스”로 고위 공직자로 진출하는 등,
집안 형제 모두가 제법 잘 풀려 그래도 내 마음이 흐뭇하다.
해마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날이면
“이모부와 세뱃돈 100원”이 생각난다.
그리고 달콤한 눈깔사탕 생각이 난다.
신나게 "빨아먹다 으깨어먹다"' 했음에도
집에 올 때까지도 다 먹지 못했던 ‘새 하얀 눈깔사탕’과
'생애 최고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신 이모부 생각에,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내 가슴 한 켠은
그 잊지못할 일들로 조금씩 따뜻해져옴을 느낀다.
ㅎㅎ -20남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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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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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님 따라서 시집 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 가는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
어디선가 저만치서 뻐꾹새 슬피 울어 대던길
한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엔 노을이 섦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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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맘때쯤^^ 겁게 보내세요
욱친구가 방문해줘서...
명절도 되고해서...
같이 공감할수있는 글이기에 올려봅니다
연휴
요즘
추억과함께 빛바랜 사진한장 첨부했습니다
5학년때쯤에 우리집에 대바구니 맹글던 어떤 아저씨가 머물면서 동네 바구니를
맹글어주시면서 계셨는디...편지지와 봉투를 사다
폴짝거리고 뛰어놀다 잃어버려서 어둑할때까징 그걸찾느라 울면서 집에갔던 추억이 생각나는구만..
아씨노래는 내 18번인디...잘 듣고 간데이`
을매나 촐랑거렸으면
2원이란 거금을 잃어뿌럿냐
77맞게시리
공숙친구 구정 명절 잘 보냈는가? 참으로 귀한 사진을 보았네. 자네가 어떻게 이사진을 보관 하고 있었는가? 기회되면 재 인화해서 나도 1장 가졌으면 하네. 어떻든 고맙네 이렇게 잊지안고 이런 갸륵한 정성을보여 주시다니""""""""""""""""""
어이친구명절은 서울에서 보냈능가두고두고 써묵고있네떼굴 굴러댕겠다는구만^^둘러보게나
이사진은 신호친구가 간직하고 있었던 사진인데
우리카페에 여러번 등장했었네
보물중에서도 귀한보물이기에
원규친구 가족들이 이 사진을보고 떼굴
시간나는데로 친구 앨범방에 들어가서 한번 쭉
종욱이 친구야 나 이문안 봉성이다.
많이 궁금하고 보고잡다.
전화로 통화도 하고 싶다. 010,3748-9191
친구 번호도 알려주라.
저렇게 귀여웠던 친구들이 이제는 50이 훌쩍 넘은 중년아저씨들이 되었부렀네. 거기있는 친구들 이번 숙희 딸 결혼식에서 만났으면 반갑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