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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014_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51 12.03.26 19: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부산 웹친구들과 점심들을 먹고 오후 2시경 정선아님과 약속을해 서면의 카페로 갔으나 만나질못해 모두들 아쉬운 헤여짐의 악수를 나누고 백산내외는 터미널로 가고 성산과 나는 울산으로 가기로 하고 울산의 멋쟁이와 동해북부도로를 탔다. 한참을 가다가 문득 통도사가 보고싶어진다. 성산과 의논의 눈빛을 보낸다. 거의 무조건 오케이로 우리의 눈빛은 타올랐다. 멋쟁이는 통도사를 다녀왔다며 먼저 울산으로 간다고 하여 우리는 양산의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 근처에 도달하니 벌써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다행이도 우리는 피해갈 수가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준비를 끝내고 열심히 매표소로 달렸다.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가 여러곳에 있어 주차장도 여러 입구마다 준비되어있어 더욱 정감이가는 그런곳이다. 개울을 끼고 만들어진 길속에 아름다움을 찾아 간다. 통도사의 역사는 곧 이 불사리(佛舍利)를 지켜온 투쟁의 역사이기도 한데, 고려 말부터 왜구들이 침범하여 수차례에 걸쳐 불사리를 가져가려 함에 서울까지 피신시켰고, 조선시대에는 왜구에게 약탈당하였다가 동래에 사는 한 거사가 이를 극적으로 찾아서 탈출하기도 하였다. 이후 사명대사(四溟大師)는 불사리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금강산의 휴정대사(休靜大師)에게 보내어, 전운이 다소 후에야 비로소 황폐한 금강계단을 정리하고 다시 본 자리에 봉안하였던 것이라고 한다.

[양산 통도사입구의 거창한 산문...]

[문 옆에서 바라본 통도사 오르는 개울의 한가함...]

커다란 입구문을 들어서 한참을 걸으니 우측으로 엄청난 부도군과 비석군이 자리한다. 통도사는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이다보니 정말로 고풍스러움이 우리의 마음을 압도한다. 다만 오래된 것이라는 그런 마음만으로도 흡족할 정도로....

[통도사 남녀 장군석상...]

[통도사 입구에 자리한 비문과 사리탑들...]

통도사 경내 아래쪽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개울을 건너면 남향한 터에 자리한 부도원을 만난다. 이곳은 통도사의 역대 고승들의 사리탑과 탑비를 봉안한 곳이다. 이곳에 있는 부도와 탑비들은 원래 통도사 주변과 산내암자에 흩어져 있던 것인데, 1993년 가람을 정비하면서 모두 이곳으로 이전하여 부도원(浮屠院)으로 조성한 것이다. 현재 부도원에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 60여 기와 탑비 및 중수비ㆍ공덕비 등 석비(石碑)가 60여 기가 즐비하게 줄지어 있다.

[통도사 부도밭의 전경...]

넓으면서도 아담해보이고 막혀있는 골짜기인데도 시원함을 느끼며 조금걸으니 일주문이 반긴다. 영취산 통도사라 써있는 현판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사찰에 들어가기전에 마음을 모아 정결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이제껏 일주문 안으로 통과한적이 없다. 앞으로는 가운데로 들어가야 되지않을까?...

[영취산 통도사 일주문...]

절에 들어갈 때 지나는 첫번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일주문은 우리 나라 고유의 양식으로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독특한 일주문의 양식은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진리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로 향하는 마음가짐을 올곧게 다지라는 깊은 뜻을 상징하고 있다. 일주문 정면에 걸린 현판 글씨인 ‘영취산 통도사’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쓴 것으로 영취산의 장엄한 기상에 어울릴 만큼 매우 장중하다.

두 기둥의 주련에는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부처님의 으뜸 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 종찰(宗刹)임을 알려 주는 사격(寺格)을 잘 표방해 주고 있다. 라고 일주문의 연혁을 알려준다.

[통도사 멋진다리...]

제법 수량이 많아진 개울위로 많은 다리가 놓여져있다. 곳곳에 주차장이 있다는 말도 이다리들과 일맥상통하는점이있다. 각 주차장에서 경내로 들어오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독특하게 생긴 돌다리를 지나 이제 복잡하고 또 공사중인 경내로 들어간다. 첫 번에 범종루가 반긴다. 규모나 분위기가 백양사것과 흡사하다.

[통도사 종각이 자태를 뽑내고...]

2층 누각 형식의 건물로서 정면 상하 3칸, 측면 2칸의 팔작(八作) 지붕 건물이다. 현판에는 ‘범종루, 범종각, 통도사’ 등의 글씨가 적혀 있고, 기둥마다 주련이 달려 있다. 상하 층에 4물(物)을 비치하고 있다. 4물은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올릴 때마다 홍고, 운판, 목어, 범종의 순서로 치게 된다. 범종(梵鐘)은 속계(欲界) 6천, 색계(色界) 18천, 무색계(無色界) 4천 등 모두 28천을 상징하여 28번을 친다. 범종 소리는 하늘 나라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신호인 동시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염원하는 소리이다. 라고 종각에서 타종할때 타종 수와 또 타종을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통도사 극락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 지붕 건물이다. 초창은 1369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초의 건물 양식을 나타낸다.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추녀의 네 귀는 활주(活柱)로 받쳤다. 내부에는 서방 정토 극락 세계의 주존(主尊)인 아미타불과 그 좌우에 협시 보살로서 관세음 보살과 대세지 보살 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4호이다.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그림은 1740년 임한 등이 제작한 것으로 아미타 여래가 서방 정토에서 무량한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화면 구성은 화면 한가운데 아미타 여래가 앉아 있고, 그 좌우에 10보살, 4천왕 그리고 여러 부처와 성문중들이 같은 수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보존 상태가 좋아서 밝고 안정된 색채감을 느끼게 한다.

[통도사 극락보전과 석탑...]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1369년(고려 공민왕 18) 성곡대사(星谷大師)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그후의 중건과 중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건물의 내부에는 목조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극락보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외벽의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이다. 배의 모습은 앞을 용머리(龍頭), 뒤를 용꼬리(龍尾)고 나타내었고, 그 앞뒤에는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합장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비록 근세에 그려지기는 했으나 구도와 내용면에 있어 보기 드문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통도사 극락보전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물이지만 뛰어난 짜임새와 벽화로 인해 중요성을 인정받아 경남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통도사 영산정앞 탑과 석등...]

하로전(下爐殿)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곳으로서, 부처님이 계신 불국토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영산전(靈山殿)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 지붕으로 전면의 주칸이 다른 건물과 달리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3호이다. 통도사의 전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영산전은 1704년에 건립된 것으로 단청 문양 및 색상도 원래의 모습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았고, 내부 가구 형식도 조선 초기의 품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보탑을 비롯하여 양류 관음, 나한상, 여러 가지 경전의 내용 등을 그린 벽화도 품격 높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처님의 일생을 압축하여 그린 8상도는 보물 제1041호로 지정될 만큼 당시의 불화 화풍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그림이다.

[통도사 영산전앞의 동그란 연못...]

[통도사 영산정앞의 쌍사자 석등...]

[통도사 약사전...]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다포계 양식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측면에는 공포(空包)가 생략되었으며, 앞뒤 면에만 공간포(空間包)를 배치한 점이 특색이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7호이다. 내부의 천장은 층급(層級)을 둔 우물 정자 모양이며, 어간 후면에는 약사 후불 탱화를 봉안하였다.

[통도사 용화전...]

대광명전과 관음전 사이에 위치한 용화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1369년에 초창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725년에 청성(淸性) 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4호이다. 내부에는 약 2미터나 되는 거대한 미륵불 좌상을 봉안하였다. 안쪽 공포는 5출목 형식으로서, 천장 높이까지 공포가 짜여져 11포의 화려한 공포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불당의 특징이다. 용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와 건물 내부의 담에는 용의 장식이 있다.

[조금 좁은 듯한 통도사 경내...]

[통도사 관음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 평면 건물로 다포계 주심포식 양식의 팔작집이다. 건물 내부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았고, 앞뒤 기둥 위에 직접 대들보를 걸어 넓게 트인 내부 공간을 꾸몄다. 관세음 보살상을 안치하였고, 내부 벽화에는 보타락가산에 머물고 있는 관음의 모습과 남순 동자의 형상, 32응신(應身)을 상징하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을 표현한 벽화들이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251호이다.

[통도사 개산조당앞 석탑...]

영산전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기둥모양이 표현되고 특히 아래층에는 안상(眼象)이 얕게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올려 조성하고, 지붕돌 처마의 곡선처리와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도 탑의 외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1987년 해체 복원시 기단의 맨 윗돌에서 조선시대의 백자가 발견되어 이전에도 탑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체 높이는 약 350cm이고,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탑안의 신라인의 모습...]

[통도사 개산조당...]

개산조당(開山祖堂)은 해장보각(海藏寶閣)으로 통하는 문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다.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높게 솟아 있어 솟을삼문이라 한다. 3칸 모두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건물 형식은 조선 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의 솟을삼문과 같다.

[계산조당앞에 커다란 석등이...]

[통도사 세존비각...]

이 비각은 1706년 계파 대사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하고 석가 여래의 영골 사리비를 세우면서 건립한 것이다. 비석에는 자장 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가져 온 일과 임진 왜란 당시 사명 대사가 진신 사리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두 개의 함에 담아 금강산에 계신 서산 대사에게 보냈더니, 서산 대사는 이 곳 영취산 통도사가 바로 문수 대성이 자장 스님에게 부촉한 승지이므로 이 곳에 다시 봉안하도록 했고, 한 개의 함은 태백산으로, 다른 한 개는 현재의 계단에 봉안하도록 하였던 사실들을 석비 전면에 기록하고 있다.

[보물 471호 봉발탑...]

통도사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정확하게 어떤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이어받는 것을 상징한 조형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명칭을 탑이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어, 유물의 성격상 ‘석조발우(石造鉢盂)’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ㆍ가운데ㆍ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 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전체 높이는 약 230cm이고, 현재 보물 제4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리탑을 모신 금강계단...]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세기 중반에 처음 축조되었고, 그 뒤 일곱 번에 걸친 수리가 있어서 지금은 원래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현재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석종형의 부도, 각 상들의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17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모습은 바뀌었지만 문헌 기록상 가장 오래된 계단이며, 같은 성격을 띤 금산사나 용연사의 것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조형미도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계단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히는 것이다. 계단 주변에는 석문(石門)과 석조 난간을 둘러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4천왕의 입상이 있고, 기단의 상하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보살상을 배치하였다. 계단의 하층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보살상을 새겨 놓았고, 상층 면석에는 불보살 및 비천상을 부조로 새겨 놓았다. 하층보다는 상층의 양식이 유연한 수법이 월등하다. 두 손은 무기 대신에 천의(天衣) 자락을 쥐고 있는 듯한 신장(神將)의 퉁방울눈이 인상적이다. 계단 상층 중심부에 위치한 석종형 부도는 복련과 앙련의 상하 연화대 위에 위치하며, 그 조각 수법이 다른 조각과는 달리 매우 우수하다. 동서 좌우에는 유연한 비천상을 부조로 나타냈고, 정면인 남쪽에는 구름 속에 보합(寶盒)의 향로를 조각하였다.

[통도사 대웅전...]

[통도사 대웅전의 고풍스러움...]

통도사의 중심 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 지붕 건물이다. 임진 왜란 때 불탄 것을 1645년 인조 23년에 우운(友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른 전각과는 달리 정면의 너비가 측면보다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불이문 쪽과 금강계단을 향하여 이중으로 정면성을 주기 위하여 합각(合閣)을 양 측면, 전면 3곳에 마련한 것이 이채롭다. 조선 중기 불당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 연구 및 목조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받고 있으며, 보물 제144호이다. 사방을 둘러 가며 각각 다른 현판을 걸어 놓았다.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남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중에서 정면에 있는 금당계단(金剛戒壇)이란 글씨는 일주문과 마찬가지로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썼다. 통도사의 대웅전은 내부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불상 대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대웅전 북쪽의 금강계단에 봉안했기 때문에 대웅전은 불상이 없으며 예배를 올리는 배전(拜殿)의 기능만을 갖고 있다. 불당 내부에는 북쪽에 동서로 길게 불단만이 있으며, 그 앞쪽 중앙에 설법상이 있다.

[대웅전 석계단의 아름다움...]

[대웅전 오르는 계단옆의 돌문양...]

[너무예쁜 구룡지와 다리...]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얽힌 연못이다. 자장 스님이 처음 절을 세우려고 할 때 이 곳에는 큰 연못이 있었고, 아홉 마리의 용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연못을 메워 절을 짓고자, 용들을 구제한 뒤, 한 마리 용만을 이 곳에 남겨 사찰을 수호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현재 금강계단 옆에 있는 이 곳을 구룡지(九龍地)라고 한다.

[통도사 삼성각옆의 산영각...]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씩의 맞배지붕 건물로 초창은 1761년(영조 37)이지만 현재의 건물은 1986년 소실된 뒤에 곧바로 다시 지은 것이다. 산령각은 산신을 모신 곳으로 내부에는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산악신앙(山岳信仰)과 관련하여 통도사는 일종의 호랑이 혈맥(血脈)인 호혈(虎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 내 두 곳에 이를 진압한 호혈석(虎血石)을 두고 있는데 그곳은 응진전 옆 남쪽과 극락전 옆이다. 이 돌의 크기는 길이 약 1.5m, 폭이 80cm 정도의 널찍한 반석이다.

[통도사 명부전...]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긴 장방형 평면으로 다포식 팔작집이다. 낮은 기단에 위에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조선 말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세부(細部)가 많이 생략된 절충식 수법으로 짜여져 있다. 통도사내의 여러 건물 중 조선 말기인 고종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그 당시 건축 양식의 시대적 변모를 엿볼 수 있다.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5호이다. 명부전(冥府殿)의 ‘명부’란 저승이나 지옥 세계를 의미한다. 명부의 주존(主尊)이 지장(地藏) 보살이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중앙의 여섯 칸에는 저승의 염라 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하였고, 시왕의 탱화를 봉안했으나, 탱화는 경내에 있는 성보 박물관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

[오래된 벽에 자생하는...]

이제 경내를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고 다시 입구쪽으로 나오는도중에 귀여운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어찌나 인상적인지 몇장을 찍어보았다. 항상 건강해야해...예진아...

[통도사에서 만난 예진이?...이름이 맞는지...참나원...]

[통도사 대웅전밑의 멋진 나무 .....뻥 뚫린 공허의 뜻은?...]

경내에서 다시 빠져 나오면 개울이 이어지는데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승천교같은 모양의 돌다리가 있다. 그리고 그 위로 조금더 올라가면 종무소같은 건물들이 있는데 앞 쪽에 고목이 인상적이라 한 장 찍었다.

[통도사 승천교...]

[통도사 승천교...]

[통도사 승천교옆의 고목...]

[통도사 승천교...]

[통도사 불교 성보박물관...]

[통도사 주차장의 약수터...]

짧은 시간동안에 넓은 통도사를 다 볼 수는 없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돌아다닌 탓에 빠진곳도 있겠지만 그래도 거의 다 카메라에 담아왔다해야 맞을 정도이다. 주차장에 내려와 잠깐으 휴식을 취하는데 커다란 음수대가 있는데 지금은 물은 안나오고 휴지조각들과 빈병들만... 몇 개안되는 것이기에 휴지들을 줏어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마음까지 깨끗해진 기분이다. 이기분으로 출발을해 울산으로 달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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