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수상작(고학년) "실수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비밀이 숨어 있는 동화
[기호 3번 안석뽕] [괭이부리말 아이들] [엄마 사용법] 등 주옥같은 창작동화와 숱한 화제작들을 발굴해 온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의 제18회 고학년 부문 수상작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이 출간되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저마다 문제를 안고 있는 열세 살 소녀 마니네 가족이 앵무새를 둘러싼 사건을 겪으면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톡톡 튀는 유머도 작품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화려한 성공만을 좇고 멘토가 넘치는 요즘 같은 때, 성공이 아닌 행복을, 멘토가 아닌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건강한 어린 주인공의 등장이 믿음직하다.
"입담 좋은 문장, 리듬을 타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의 도입부도, 선머슴 같지만 속은 여린 주인공도,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유머러스함도 매력적이다." - 심사평(김남중 박숙경 이현)
맙소사, 앵무새라니! 씩씩한 열세 살 소녀 정마니의 좌충우돌 성장기
이야기는 캠프에 갔다 집에 돌아온 마니가 난데없이 앵무새와 맞닥뜨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앵무새'라는 낯설고 흥미로운 존재가 갑작스레 일상에 끼어드는 첫 장면은 도입부터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소아우울증에 걸린 동생이 아빠의 사장님 댁에서 실수로 몰래 앵무새를 데려오는 바람에 곤경에 처한 가족을 위해 마니는 동생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분투한다. 그러한 분투와 과정에서 마니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주위 사람들의 민낯을 목격하기도 하고, 진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정면으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탐구하며 열세 살 소녀는 그렇게 성장의 첫 열쇠를 손에 쥔다.
이야기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는 입체적인 캐릭터
어두운 방 안이 온통 회색이다. 분홍색 벽지도 회색으로 보였다. 엄마는 내가 분홍색으로 꾸미지 않으면 딸로 안 보일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말도 안 된다. 여자는 분홍색 말고도 여러 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를테면....... 머릿속에 일곱 빛깔 무지개가 찬찬히 떠오르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솔직히 내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 p.23)
한편, 이 각별한 성장담에는 앵무새만큼이나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선머슴처럼 털털하지만 마음은 여린 주인공 마니가 사내아이로 비치는 겉모습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심하다 아직은 자신을 무슨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장면은 오히려 진실되게 다가온다. 이기적으로만 보여도 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던 엄마에게선 뭉클함이, 늘 짓궂은 장난으로 마니를 괴롭히지만 얼핏얼핏 마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친구 경지에게선 풋풋한 두근거림마저 느껴진다. 이렇듯 각각의 속사정과 숨은 얼굴을 갖고 있는 등장인물들은 작품에 오밀조밀한 요철을 새겨 넣으면서 서사를 한결 생기 있게 만든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 앵무새가 가르쳐 준 진짜 행복의 비밀
한비가 추운 베란다에 있던 때가 떠올랐다. 작은 분홍색 새장에서 떨고 있는 한비가 꼭 나 같다고 생각했었다. 수혁이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알 듯했다. "너 참 힘들었겠다......." "털을 뽑는 한비를 보며 더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 (/ p.146)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실수로 데려온 앵무새 한비를 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 이상 어른들의 '앵무새'가 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부하며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용기 있게 첫걸음을 내딛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꿈은 무엇인지 아직은 단번에 대답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제힘으로 인생을 꾸려 가겠다는 이 아이들의 바람이자 다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네가 꿈이 없다는 게 나한테 야단맞을 일은 아니지. 그래도 생각은 해 봐. 네 인생이잖아."(109면)라고 한발 물러나 지켜봐 주는 어른의 등장도 미덥다. 멘토나 손쉬운 위로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믿고 스스로를 인생의 조언자로 세운 마지막 문장은 우리 아동문학에서 인상적인 한 구절로 기억할 만하다.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의 전후로 마니에게 극적인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을는지 모르나 마니는 작전의 성공보다 더 값진 것을 얻는다. 그것은 세상에는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이제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작은 깨달음이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라는 헬렌 켈러의 명언을 "세상은 기쁨으로 가득하고, 그걸 즐기는 나로 가득하다."로 바꾼 마니의 변화가 새삼 반가운 까닭이다.
작품 줄거리 선머슴 같지만 정 많은 열세 살 소녀 정마니의 인생에 어느 날 날벼락처럼 앵무새가 나타났다! 같은 동네로 이사 온 아빠의 사장님네 앵무새를 마니의 어린 동생이 실수로 데려온 것. 아빠의 승진을 위해 사실을 밝힐 수 없다는 엄마 때문에 마니는 앵무새를 남몰래 사장님 댁에 돌려보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반에 전학 온 사장님 아들 문수혁과는 친해질 듯 말 듯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마니가 앵무새를 돌려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할수록 일은 점점 꼬여만 가는데....... 과연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
*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는 좋은 어린이책을 쓰고 출판하는 풍토를 가꾸고 어린이책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1997년 마련되었다. 첫 수상작인 채인선의 [전봇대 아이들]을 시작으로 박기범의 [문제아],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현의 [짜장면 불어요!]와 배유안의 [초정리 편지], 김성진의 [엄마 사용법], 진형민의 [기호 3번 안석뽕] 등 굵직한 화제작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우리 아동문학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