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이 예언에 대한 말씀의 경고(문은진)
계시록 22:10~12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시록은 처음에 시작할 때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의 말씀이라고 하신다. 이 두루마리 말씀을 제하여 버리지 말 것에 대해 경고 하신다. 이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는 계시록의 말씀은 생생하고 정확한 예언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언이라는 것은 한자 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다는 의미이다. 이 말씀을 맡은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나갈 수 없다. 약사가 약국에 꽂혀있는 약을 처방해 주 듯이.. 구약과 신약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는 신령한 약이다. 이러한 약을 맡은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맡았다는 의식이 확실해야 되고, 기도하면서 각 사람에게 어떤 약이 필요한지 잘 알고 처방해 주어야 한다.
성경에는 말씀을 어떤 때는 인봉하지 말라고 하고 어떤 때는 인봉하라고 하신다. 인봉해 놓은 것은 사람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무슨 뜻인지 깨달을 수가 없다. 계시록에서도 인봉하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굳이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성경주석을 썼다. 그러다가 계시록에 와서는 도무지 쓸 수가 없어서 더 진행하지 않았다. 확신을 가지고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다.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등 예수님의 오실 날을 기다린다고들 했지만 다 진실이 아니였다. 이러한 것(징조)들을 볼 때 예수님이 심히 가까이 왔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세상이 변동들이 있으며 재앙들이 다가오고 있다. 무신론 사상은 온 세계를 뒤덮고 믿음을 가진 자들도 흔들림을 당한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한다. 옛날에는 말씀이 인봉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다. 헬라어 히브리어 성경이 먼저 라틴어로 번역이 되었지만 문맹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쉬운 글이다. 지금은 성경이 각 나라 말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얼마든지 읽을수 있는 시대이다.
그렇다면 인봉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 같은 경우는 정교회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고이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가톨릭 같은 경우는 성경이 교회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고칠 수도 폐기할 수도 있다. 즉 절대적인 권위는 교회에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해석권은 교황에게만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마르틴루터가 개혁을 일으킨 것이다.
인봉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부지런히 말씀을 읽어야 하며 또한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경고한다. 이 예언의 말씀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며, 제해버리면 천국에 들어가는 이름에서 제해버리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빼버린다. 갈라디아서에는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고 말한다. 어떤 목사님들은 어렵거나 지키기 어렵거나 한 것들은 빼고 듣기 좋은 말씀만 전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수 있다.
또한 하나님 말씀 외에 자꾸 보태는 사람들이 있다. 꿈과 환상 등 자신을 굉장히 신령한척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읽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뜨겁게 사랑하여야 한다. 시편119편에서는 말씀을 몸이 피곤하도록 사모한다고 말한다. 말씀을 깨달으려면 성령 안에서 해야 한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16~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말씀이 성경전체의 마무리이다. 정말 예수님이 오시기를 고대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시기를 고대한다고 하지만 정작 조금 있다고 오시라고 한다. 인간들은 입술로는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하지만 마음으로는 거절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신다.
그럼 누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말하는가? 이러한 고백이 진실하게 나오지 않는다면 뭔가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 고백을 하기 원하시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숨은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나오지 않는다.
육신적인 고난가운데 있는 사람,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예수님이 나에게 와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복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육신적으로 그 어떤 고난이 없다는 것은 복된 것이라 볼 수 없다. 정말 복된 사람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육체의 고난이 없으면 주님 앞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육체에 고난이 있는 사람들은 주님을 간절히 찾는다.
둘째는 영의 곤고함을 깨닫는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곤고함을 깨닫는 동시에 자기의 모습이 보인다. 자기의 전적이 무능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분 앞에 무릎을 끓는다. 육신적인 곤고함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영적인 곤고함을 깨닫는 것이다. 진실한 성도들은 육신의 필요를 위해서 구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 영혼의 곤고함을 깨닫고 영혼의 구원의 문제를 구하는 것이다.
성경의 요한복음1장에 나다나엘을 예수님을 만나는 은총을 주신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영혼의 안타까움을 보신다. 그런 그에게 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미국선교사님들은 이 땅에 들어와서 병원과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이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이지만 한걸음 더 나가서 영혼의 깨달음을 알게 하고 주님께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육신적인 것만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습관적으로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 세계인류를 위해 그들의 구원을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 예수님은 어디에 오셔야 하는가? 우리가정에도 찾아 오셔야 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 마음에 찾아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록 3장20절에서 라오디교회에 말씀 하실 때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음성을 들어야 한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때 너는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너와 더불어 먹는다고 말씀 하신다. 이러한 상태를 임마누엘이라고 하신다. 임마누엘이 이루어지면 놀라운 평화가 온다. 천국이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음에 걱정이 생긴다면 내 믿음이 잘 못 된 것이다. 잘 정검해 보고 구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할 때 복음의 사람이 된다. 이럴 때 전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만 예수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들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심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수 있는가? 성경에서는 계속해서 부르짖으라고 하신다. 부르짖어야 그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응답을 내리신다. 간절하지 않으면 응답하지 않으신다. 기도할 때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즉 우리 중심에 얼마나 간절함이 있는가이다.
주님이 가까이 있을 때 은혜를 받을 만 할 때 힘써 부르짖어야 한다. 그러할 때 놀라운 복이 임한다. 요한복음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사람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신다. 즉 예수님은 말씀이다.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충만해야 한다. 요즘은 하나님말씀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아서 성경을 읽지 않는다.
교회에는 나오지만 설교시간 졸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지 못하신다. 들을 것 볼 것이 많지만 좋은 책을 주시기를 기도하며 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많이 읽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시며 분별력을 주실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말씀 가운데서 나 자신을 돌이켜 생명으로 가는 길을 잘 달려가야 한다. 또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깨우쳐서 주님 앞에 나아오도록 해야 한다.
미국독립의 의의
시편33:1,11,12
미국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말씀을 기초로 하여 나라를 세웠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백성 이 백성들이 미국인들이다. 이러한 큰 꿈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약 250년 되어간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했지만 힘겨운 싸움을 했어야 했다. 영국은 본토가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큰 나라였지만 18세기 말 세계 최강의 나라였다. 이러한 강한 나라와 싸워 이긴다는 것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미국건국의 아버지들은 기도를 하면서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면서 전쟁을 일으켰다. 신생국가인 미국이 이기기 어려웠지만 뜻밖에 프랑스가 도와주면서 8년 만에 기적적으로 전쟁에 승리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지만 많은 희생을 하면서 이루어낸 것이다. 6.25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분단되었다. 희생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사탄과의 싸움도 희생을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미국의 독립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7.4) 요즘은 어떠한 희생과 정신위에 나라가 세워졌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은 슬픈 일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특징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성경위에 세워진 나라이다. 지금껏 세상에 이러한 나라가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성경책에 손을 얹고 하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다. 대통령은 성경말씀에 기초하여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독립선언문의 기본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천부인권설’ 즉 인권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이다. 흑인들의 인권을 세워주려고 했던 전쟁은 남북전쟁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의 흑 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동생애도 인권문제로 접근하려고 하지만 이 문제는 인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나라를 망쳐 먹는 행동이다.
미국은 어떤 정치제도를 택했는가? 공화정책이다. 대통령을 뽑아 8년까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게 한다. 세습하지 못하는 나라이다. 또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정치와 종교의 두 개의 수례바퀴를 가지고 가는 것이다. 왕주주의 국가가 아닌, 민주주의국가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것이 성경에서 사사시대와 비슷하다. 한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이 있는 것이다.
이 자유민주주의 제도는 기독교국가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독재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식하여 잠깐 청지기로 세워졌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중국은 법을 고쳐서 세 번 째 임기에 들어갔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임기가 다 끝났지만 법을 고쳐 죽을 때 까지 하도록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은 공립학교들에게 성경공부를 시켰다. 그러다가 케니디대통령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았다. 이것을 타락이다. 솔로몬은 엄청난 지혜를 받았는데 왜 타락했는가? 이방여인들을 끌여들어 그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다. 미국도 이민을 받으면서 로마카톨릭, 유대인의 소리가 높여가자 기도 하던 것들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이슬람이 들어온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미국이 권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 중에 제일 보람을 느끼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나라가 부강한 것은 불론 교회가 왕성해 진 것이다. 미국선교사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한국을 축복해 주셨다. 이러한 때 한국 백성들이 깊이 깨닫고 미국을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미국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셨는데 선교사들을 통해 세계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현재는 한국이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 아프리가, 아랍, 많은 나라들이 한국과 잘 지내보려고 하는 시대이다. 이러할 때 한국은 하나님의 역사를 잘 감당해야 한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마태복음 11:7-9
예수님이 이 말씀으로 질문을 하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광야이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세상에 태어났더냐 라고 바꿔볼 수 있다. 우리생의 목표를 확실하게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부드러운 옷 입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일이다. 선지자를 보려느냐고 물으신다.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말씀 하신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라도 천국에서는 지극히 크다고 말씀하신다. 선지자가 아닌 메시야를 보려고 나왔다고 해야 된다. 선지자를 보는 사람, 메시야를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왕에게 기름을 붙고,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용하신다. 구약성경에는 이 세 가지를 다 겸한 사람들이 있다. (모세, 사무엘, 다윗)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직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본문에서는 선지자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선지서는 이사야부터 시작한다. 이사야선지자가 시작되는 말씀은 무엇인가? 백성들이 주인을 모르는 것에 슬픈 탄식을 하면서 시작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전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셔서 왔고 그 분 앞에 돌아간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나를 보내주신 분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도록 선지자를 보낸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생각에 좋을 대로 산다. 즉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인 것이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입에 말씀을 주셔서 백성들을 깨우게 하신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선지자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많이 보내신다. 엘리야가 탄식할 때 바알에게 무릎 끓지 않은 사람 칠천명이남아 있다고 말씀 하신다. 바울에게도 말씀하신다.
우리인생에 잠깐 살면서 해야 되는 과업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은 내(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 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내가 얼마나 악한 자인가)을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이 일을 일으켜줘야 한다. 셋째로 선지자는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야 한다. 아무런 목적이 없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목적 그것을 행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다 이루었는가 물으실 것이다.
넷째로 선지자는 잠을 깨우는 사람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심판의 날에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준비하여 지혜 있는 자가 되라고도 하신다. 관심 없이 살아가며 깨어있지 못하는 것은 악한 어둠의 상태이다. 다섯째로 선지자는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는 사람이다.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성경에서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속에) 이 선지자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참선지자들은 고난과 어려움을 당했지만 거짓선지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참선지자는 세상에 많이 있는데 하나님이 숨겨놓으셔서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주신다. 성경에는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신다. 선지자들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한다. 우리는 볼품없는 사람들을 무시하지만 주님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