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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6-1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눈이 내렸는데, 지난 한 주간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면서 사셨습니까? 아니면, 원망과 불평 속에, 근심과 한숨 속에 보내셨습니까?
“범사에 감사할 일이 어디 있으며, 항상 기뻐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 형편에 놓여 있든지간에,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지 않기를 바랬지만,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우리 곁에 오고야 말았습니다.
흘러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도 가져야 하고,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도 가져야 하는 아주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일들에 대한 계획을 통하여, 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라는 말은 “끊임없이”, “늘”, “계속해서”라는 말입니다.
“쉬지 말라”라는 말은 “멈추지 말고 지속적으로 하라”라는 말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제사장을 통하여, 죄를 고백하고, 제사장을 통하여, 그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고, 제사장 제도가 확립되면서부터,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지 못하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지 못하고, 오직 제사장을 통하여, 해야 하는 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14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선물이요, 은혜요, 축복이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축복을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에 항상 힘쓰라.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롬 12:12, 골 4:2)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억울하게,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 신세를 한탄한 것이 아니라, 한밤 중에, 실라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에,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 “항상 힘쓴다”라고 하는 것은 끈질기게 매달린다는 것이요, 지속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 태어났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그에게 휘몰아쳐오는 모든 고통과 아픔들을 극복하고, 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베스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는 환난과 근심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환난과 근심이 그의 삶을 졸여왔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에게 도움을 줄만한 사람도 없었고, 그에게 힘을 실어줄 배경도 없었습니다. 내놓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는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응답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구한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기도는 응답받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숨쉬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기도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숨을 쉬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숨이 쉬어지는 것처럼, 매순간, 기도가 저절로 되어져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 무릎 꿇지 않아도, 매순간이, 기도의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저의 가는 길을 인도해 주세요. 지금 이 순간을 타개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좋은 사람 만나게 해 주세요. 날씨를 주장해 주세요. 안전케 하시고 평안을 누리게 해 주세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남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는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곧 죽을 것이다.”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히스기야 왕은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사 38: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어하십니다. 우리의 눈물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네가 기도한 모든 기도의 제목들을 다 허락하노라”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편 84:6-7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 시온에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힘들게, 눈물 골짜기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만 합니까?
그 다음 구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까? 기도하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삶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기도는 나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몸부림이요,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입니다. 그러므로,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없이,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이 식어서는 안됩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매사에,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전쟁과 같은 중대한 일에도,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삼하 5:19)
다윗은 무슨 일이든, 기도로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칠 때에도, 블레셋의 골리앗 앞에서도,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에도, 왕이 되었을 때에도,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시편 116:1-2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 내가 평생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 기도했을까요? 그는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라고 말했습니다.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4절)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8절)
하나님은 그를 사망에서, 눈물에서, 넘어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12절)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사는 것,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 하나님은 바로 그런 기도의 모습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라고 말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바울과 실라가 한밤 중에도, 신세 한탄 대신에, 하나님께 기도한 것처럼, 환난과 슬픔을 만난 시편 기자가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의 모든 사정을 아뢰었던 것처럼, 환난과 근심이 가득한 환경 속에 태어난 야베스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를 쉬지 않겠다.”라고 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존 베일리”라는 사람이 쓴 “매일 기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60편을 모아놓은 기도문인데, 첫 번째 날, 아침 기도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영혼의 영원한 아버지시여, 오늘 나의 첫 번째 생각이 당신이게 하시며, 나의 첫 번째 열망이 당신을 예배하는 것이게 하시며, 나의 첫 번째 말이 당신의 이름이게 하시고, 나의 첫 번째 행동이 당신 앞에 기도로 무릎 꿇는 것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하루는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진행되고, 하나님으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하나님을 생각하고, 매순간마다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누군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와 사역에 그의 축복과 능력을 쏟아 부어 주시기 위해, 기도보다 더 위대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으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은혜의 통로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기도는 하늘의 보물 창고문을 활짝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향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0:7-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고, 속죄소에 피울 향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향은 성소에서 분향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향은 한 순간도 중단되어서는 안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향은 피워져야 했습니다, 멈추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성소의 향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하늘로 올리워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멈춤이 없이,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세력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 완전무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튼튼한 탱크라 할지라도, 길가에 방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전무장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기도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라고, 성도들이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항상”이라는 말은 “무시로”, “늘”, “언제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무시로, 늘,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큰 마트들도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편리하고 유익한 곳은 편의점입니다. 우리 가장 가까운 곳에, 24시간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24시간,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을 수 있고, 응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렘 29:12-13,사 58: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여러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가능한 일입니까? 사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 감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기뻐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그런 상황에서는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감사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감사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가능한 일인가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그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집니다.
기도는 항상 기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게 하고, 무슨 일이나, 범사에 감사할 수 없는 것을 감사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기도는 기쁨과 감사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욱더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가운데 가장 귀한 선물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 기쁨이 충만해지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하기 벅찬 문제들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많습니다. 기도는 그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요, 우리에게 힘을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요, 우리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로 시작하셨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고,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사역을 하시는 동안, 때로는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고, 때로는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시작하셨고 기도로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그대로,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졸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 26: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깨어 있지 못하고 졸았던 베드로가 훗날 성도들에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순간, 베드로는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고, 졸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른다”라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근신하여 깨어 있지 못함으로, 대적 마귀의 삼킨 바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실패를 통하여, 기도의 능력을 깨달은 바, 성도들에게, 자신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 어둠과 불법, 탈법, 편법이 난무한 시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근심거리가 가득할 때, 누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정말로, 도움이 필요할 때,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편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는 표제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4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6절)
모든 두려움, 모든 환난 속에 처하게 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다윗이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0절)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 둘, 채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두려움과 환난을 극복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아, 이 땅에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주님,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
주님 앞에 나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뢸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맡기오니, 책임져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를 맡기오니,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