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사장, 장사는 잘되죠. 어머님도 잘 지내시고?"(김광렬 희망도레미 이사)
"어이쿠, 위원님. 어서 오세요."(떡집 사장)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재래시장인 경창시장에 들어서면 빨간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성심떡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음료회사 영업사원을 하다 3년 전 창업한 강재규(29) 사장과 그의 어머니 이지우(56)씨가 운영하는 시장통 43㎡(13평)짜리 떡집에 김광렬(63)씨가 들어섰다. 조흥은행 지점장과 중견 유통업체 임원 출신인 김 이사는 1년 넘게 매달 한두 차례 이 떡집에 찾아와 자금 대출과 각종 경영 조언을 해준다.
강 사장 모자(母子)와 김 이사가 만난 건 지난해 10월. 강 사장이 노후화된 떡 뽑는 기계와 보일러 등을 교체하려고 '소액금융대출' 신청을 하면서다. 서울시와 제휴해 대출 상담을 해주는 희망도레미 김 이사가 이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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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가에서 만난 전문직 시니어 컨설팅 그룹‘희망도레미’회원들은 화려했던 제1 전성기를 뒤로하고, 남을 돕는 희망찬 제2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은행 지점장, 정유회사 공장장, 제약회사 이사, 지하철 역장, 학원 대표 출신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회원 30여명은 4년째 동네 세탁소, 빵집, 방앗간, 꽃집 등 700여곳에 8000회가 넘게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서 이들은 미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오종찬 기자
김 이사의 대출·경영 조언은 영세업자들에게는 절실하고 소중한 것들이다. "아무리 이자(연 3%)가 낮아도 빌린 돈은 반드시 이자가 나가니 꼭 필요한 만큼만 대출받아라." 2000만원을 빌리려던 강 사장에게 그는 1750만원만 대출받게 했다. 판로도 조언했다. "시장을 찾는 고객만 기다리지 말고 인근 경찰서와 구청을 찾아가라. 승진자와 돌잔치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떡 수요가 있을 것이다." 김 이사는 성심떡집 외에 서울 등촌동의 족발집, 신월동의 야채 가게, 화곡동 식당, 경기도 성남시의 이삿짐센터 등 15군데 영세업자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준다.
희망도레미는 김 이사 외에 IBK기업은행·메리츠증권·KDB생명 등 금융기관의 지점장과 임원 출신들, LG전자·GS칼텍스·SK텔레콤·동아제약 등 대기업체의 공장장·임원·부장 출신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간부(1급), 학원 대표, 지하철 역장, 교사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20여명의 신중년들이 '소액금융대출'을 받은 동네 세탁소, 떡집, 꽃집, 청소대행업체 등에 경영 컨설팅을 해주고 소액의 수수료를 받는 사단법인이다. 지금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동네 점포 180여 곳을 도와주고 있다. 매달 평균 200여 회, 그동안 8000여 차례 '현장 출동'을 했다. 그동안 상담해준 업체만 700여 곳이다.
희망도레미 박용기 대표(동아제약 이사 출신)의 얘기다. "인생 제2 전성기란 게 이런 것 아니겠어요. 돈은 조금 덜 벌더라도 나의 경험을 아직 세상이 필요로 하는 곳에 쓸 수 있지요. 그 결실이 하나씩 맺혀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데요."
우리 주변에 6075 시기를 제2의 전성기로 만들려는 신중년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사회의 어려운 계층에 전하는 일은 물론 직접 창업을 통해 젊은 시절 못잖은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서울대 이석원 교수는 "고령화 시대에 새롭게 주어지는 6075 시기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창업이나 자원봉사 등 다양한 시도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