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그 이름- 한옥순
서울 사람이고 싶었다. 간절하게
새벽 기차를 타고서라도 도망치고 싶었던 적 많았다
기찻길 옆 드난살이처럼 살아가는 오막살이들이 징글맞게 싫었고
벙어리가 빠져죽었다는 골목 가운뎃집 앞마당 우물과 신영극장 담
벼락에 그려진 읽을 수도 없는 빨강색 글씨가 소름끼치게 무서웠고,
기브 미 초콜렛, 하며 미군 트럭 뒤를 필사적으로 따라 가던 넝마
같은 아이들이 미웠고 새벽 신작로를 달리던 타향살이 아버지들의
자전거 행렬은 알 수 없는 슬픔이었고 언 개울을 깨어가며 삯빨래를
두드리던 손등 터진 엄마들이 가엾고 또 가여웠고,
서울로 서울로 달려가는 경원선의 목쉰 기적소리와 봄꽃잎처럼 흩
어져 날리던 천 원짜리 같은 삐라와 찬장 속에 묻어 둔 스뎅 밥주
발과 해질녘이면 파랑색 나무 대문 밖으로 나서게 하던 끝이 없을
가난 같던 논마지기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눈 내리는 건널목에 서서 남몰래 불러봤다 폐역 같은 이름을
눈시울이 뜨거웠다
문 닫힌 극장 뒷담벼락에 혼자 숨어 품어봤다
상처투성이 소문이 무성하던 어릴 적 살던 골목 풍경을
1957년생인 나의 태생지 내 동네 내 고향, 동두천
그 이름만으로도 왜 아무데서나 눔물이 나는 건지
옛날 양키시장이 섰던 우체국에 들어가 편지 봉투 하나를 샀다
겉봉에 동두천이라 쓰고 고향이라고 괄호 안에 적었다
미안하다, 부끄러워해서
내가 사는 고향은 삐라꽃 떨어져 내리던 동두천이다.
한옥순 시인
2000년 「문학세계』등단
-시집
『황금빛 주단』(원애드, 2011)
-시원문학. 소요문학.우리시
첫댓글
단편의 드라마 같은
글에 머물어 봅니다
한 살 차이의 생활이 많이 다르네요
삐라 라고 하는 단어가 머뭇거리내요
남학생들은 삐라 주워서
경찰서에 신고하던 시절 이야기네요..
최경선 이사님
오랜만에 글을 올려 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늘 선생님들이 올려주시는 좋은 시편들 감사히 읽어봅니다. 한주시작 행복하게 하시길요
이 시를 읽으니ᆢ 대학시절(23세) 봉사대 일원으로 갔었던 동두천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그때 죽을 뻔 했던,
아니 순교했을 뻔한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좋은시] 방을 밝혀주시니 좋습니다.
즐감합니다.
최경선 이사님, 감사합니다.
동두천 어둠 거리 미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그곳의 슬픈 사연들
스토리가 슬프네요.
그곳을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으면 글로 표현 했을까
시인의 마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