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vangelio de Hoy
En aquel tiempo, cuando Jesús y sus discípulos hubieron terminado la travesía, llegaron a tierra en Genesaret y atracaron. Apenas desembarcaron, le reconocieron en seguida, recorrieron toda aquella región y comenzaron a traer a los enfermos en camillas adonde oían que Él estaba. Y dondequiera que entraba, en pueblos, ciudades o aldeas, colocaban a los enfermos en las plazas y le pedían que les dejara tocar la orla de su manto; y cuantos la tocaron quedaban salvados.
«Cuantos la tocaron [la orla de su manto] quedaban salvados»
Fr. John GRIECO
(Chicago, Estados Unidos)
Hoy, en el Evangelio del día, vemos el magnífico "poder del contacto" con la persona de Nuestro Señor: «Colocaban a los enfermos en las plazas y le pedían que tocaran siquiera la orla de su manto; y cuantos la tocaron quedaban salvados» (Mc 6,56). El más mínimo contacto físico puede obrar milagros para aquellos que se acercan a Cristo con fe. Su poder de curar desborda desde su corazón amoroso y se extiende incluso a sus vestidos. Ambos, su capacidad y su deseo pleno de curar, son abundantes y de fácil acceso.
Este pasaje puede ayudarnos a meditar cómo estamos recibiendo a Nuestro Señor en la Sagrada Comunión. ¿Comulgamos con la fe de que este contacto con Cristo puede obrar milagros en nuestras vidas? Más que un simple tocar «la orla de su manto», nosotros recibimos realmente el Cuerpo de Cristo en nuestros cuerpos. Más que una simple curación de nuestras enfermedades físicas, la Comunión sana nuestras almas y les garantiza la participación en la propia vida de Dios. San Ignacio de Antioquía, así, consideraba a la Eucaristía como «la medicina de la inmortalidad y el antídoto para prevenirnos de la muerte, de modo que produce lo que eternamente nosotros debemos vivir en Jesucristo».
El aprovechamiento de esta "medicina de inmortalidad" consiste en ser curados de todo aquello que nos separa de Dios y de los demás. Ser curados por Cristo en la Eucaristía, por tanto, implica superar nuestro ensimismamiento. Tal como enseña Benedicto XVI, «Nutrirse de Cristo es el camino para no permanecer ajenos o indiferentes ante la suerte de los hermanos (…). Una espiritualidad eucarística, entonces, es un auténtico antídoto ante el individualismo y el egoísmo que a menudo caracterizan la vida cotidiana, lleva al redescubrimiento de la gratuidad, de la centralidad de las relaciones, a partir de la familia, con particular atención en aliviar las heridas de aquellas desintegradas».
Igual que aquellos que fueron curados de sus enfermedades tocando sus vestidos, nosotros también podemos ser curados de nuestro egoísmo y de nuestro aislamiento de los demás mediante la recepción de Nuestro Señor con fe.
«Apenas desembarcaron, le reconocieron»
Rev. D. Joaquim MONRÓS i Guitart
(Tarragona, España)
Hoy contemplamos la fe de los habitantes de aquella región a la que llegó Jesús para llevar la salvación de las almas. El Señor es dueño del alma y del cuerpo; por eso, no dudaban en llevarle a sus enfermos: «Cuantos la tocaron quedaban salvados» (Mc 6,56). Tenemos hoy, como siempre, enfermos del alma y del cuerpo. Conviene que pongamos todos los medios humanos y sobrenaturales para acercar a nuestros parientes, amigos y conocidos al Señor. Lo podemos hacer, en primer lugar, rezando por ellos, pidiendo su salud espiritual y corporal. Si hay una enfermedad del cuerpo, no dudamos en enterarnos de si existe un tratamiento adecuado, si hay personas que puedan cuidarlo, etc.
Cuando se trata de una “enfermedad” del alma (habitualmente, palpable externamente), como puede ser que un hijo, un hermano, un pariente no asista a Misa los domingos, aparte de rezar conviene hablarle del remedio, tal vez transmitiéndole de palabra algún pensamiento o alguna orientación motivadora que podamos nosotros mismos extraer del Magisterio (por ejemplo, de la Carta apostólica "El día del Señor" de Juan Pablo II, o de alguno de los puntos del Catecismo de la Iglesia).
Si el hermano “enfermo” es alguien constituido en pública autoridad que justifica o mantiene una ley injusta —como puede ser la despenalización del aborto—, no dudemos —además de orar— en buscar la oportunidad para transmitirle —de palabra o por escrito— nuestro testimonio acerca de la verdad.
«Nosotros no podemos dejar de anunciar lo que hemos visto y oído» (Hch 4,20). Todas las personas tienen necesidad del Salvador. Cuando no acuden a Él es porque todavía no le han reconocido, quizá porque nosotros todavía no hemos sabido anunciarle. El hecho es que, en cuanto le reconocían, «colocaban a los enfermos en las plazas y le pedían que les dejara tocar la orla de su manto» (Mc 6,56). Jesús curaba tanto más cuanto había algunos que «colocaban» (ponían al alcance del Señor) a los que más urgentemente necesitaban remedio.
♣ 행복을 찾고 행복 안에 머무는 길 ♣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바라는 구원은 주님 안에서의 행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은 거저 주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행복이란 잠자코 나에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만 딴 데 눈길을 돌려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지요. 오늘 복음은 어떻게 행복을 찾고 그 안에 머물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배에서 내리시는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에서 내리는 예수님을 ‘곧 알아봅니다.’(6,54).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것은 행복의 원천을 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추상적 지식을 습득한 것이 아니라 ‘알아본’ 것이지요. 그러나 알지 못한다면 당연히 알아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다가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찾아 나섰고’, 계속 따라다니며 '보고, 받아들이고 믿었기에' 알아본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머무르려고 시간을 내서 함께 했고, 가르치시고 병자를 치유하시며, 마귀를 쫓아내시는 그분께 집중함으로써 체험적 앎과 깨달음이 있었으니 알아본 것입니다. 행복은 그렇게 거저 주어지는 법이 없지요.
예수님을 알아본 그들은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합니다(6,55). 믿는 이들이 찾아가는 행복은 언제나 ‘함께하는 행복’이며, ‘함께 나누는 행복’이며, 하느님의 선(善) 안에서 서로를 이롭게 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해지는 보편적인 행복입니다. 멈춤 없이 주변으로 밀려난 형제자매들을 행복의 샘이신 예수님께 데려가는 것이 우리의 몸짓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께 다가가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 안에 머무르려면 한걸음 더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요한 15,12)이 마땅한 도리이겠지요.
예수님처럼 억울함과 절망과 고통과 온갖 아픔을 안고 다가오는 이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모두’를 사랑해야 합니다. 거짓과 불의, 차별과 불평등, 온갖 반생명적인 실재에 맞서 하느님의 정의를 세우는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마르 6,56). 자기중심성과 애착에서 벗어나 늘 마음과 영혼의 눈길이 다른 이들의 아픔에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항구한 사랑의 눈길과 연민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자유와 해방을 위해 투신해야 합니다. 조건 없이 서로의 아픔과 불의와 어둠을 받아들여 선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사랑과 의로움과 인간다운 삶을 갈망하는 이들의 갈증을 채워주기 위해 남김없이 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시간을 쓰고 공을 들여 예수님과 함께함으로써 그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나아가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더불어’ 그분께 다가가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행복, 영원한 생명을 향해 떠나는 가슴 벅찬 순간을 이어가길 희망합니다. 고정관념과 왜곡된 신념, 이기심을 치우고 하느님 친히 ‘보시기에 좋은’(창세 1장) 행복한 나라가 펼쳐지도록 준비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겐네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시다.>
“그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마르 6,53-55).”
여기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말은,
병을 잘 고치는 분이라고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예수님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보았다는 뜻입니다.
아직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것은 아닙니다.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는 말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바란 것은 ‘병의 치유’뿐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머리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4-5).”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0-11).”
예수님을 ‘병을 잘 고치는 의사’로만 생각하고,
궁극적인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라는 것을 안 믿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본 것이 아닙니다.
또 ‘육체의 치유’만 원하고, ‘영혼의 구원’을 원하지 않는다면,
즉 예수님께 병의 치료만 청하고 영혼의 구원은 청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청하지 않고, 덜 중요한 것만 청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를 가장 크게 괴롭히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청하는 것 자체가
잘못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에 몸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영혼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몸의 건강과 미용만 신경 쓰고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는 말은,
사람들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던 여자의 심정과 같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5,27-28).”
이 ‘간절한 심정’은 병고의 괴로움이 그만큼 크다는 것도 나타냅니다.
여기서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라는 말은,
“손을 댄 사람마다 병이 나았다.” 라는 뜻입니다.
(영혼의 구원을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을,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 병을 고쳤다는 말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 병을 고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고치셨습니다.
만일에 그것을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않는다면,
즉 예수님을 안 믿고 예수님의 옷자락 술만 믿는다면,
그 믿음은 미신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당신께 청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는 점입니다.
편애도 없고, 차별대우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또 병자의 믿음이나 과거나 영혼의 깨끗함이나 자격 같은 것을 보시지 않고,
그 사람의 딱한 처지만 보셨습니다.
(“너는 죄를 많이 지었으니까 안 된다.” 같은 거절을 하시지 않았다는 것.)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 사상에 물든 자들은 자격을 따져서 사람들을 분류합니다.
각 개인의 처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전체를 위해서 무엇이 더 유리한지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시킬 때가 많은데,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또, 병을 고친다고 해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병자의 경우에는
치료를 안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하루밖에 못살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일은 이익을 따지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시작하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끝내시는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이 마음대로 판단해서 끝내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다음에
병자들이나 그 가족들에게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사랑’과 ‘자비’는 원래 무조건, 무제한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으라는 요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자의 고통만 보셨고, 병자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만 생각하셨습니다.
건강해진 다음에 그 병자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 자신에게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강조하신 때가 가끔 있었지만, 그것은 구원에 관해서이고,
병을 고쳐 주실 때에는 병자의 믿음과 상관없이 고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벳자타 못 가의 병자’의 경우가 좋은 예인데,
그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고,
그래서 예수님께 병을 고쳐 달라고 청하지도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딱한 처지만 보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요한 5,5-9).
또 병을 고쳐 주신 다음에도 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요한 5,14).
(만일에 신앙인들에게만, 또는 신앙인들끼리만 사랑과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자비도 아니고,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내 주변에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내어, 주님 앞으로 데려갑시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넘어 온 스콧 한이라는 미국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십대시절에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약도 하고, 소년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근신처분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복음주의 단체의 지도자인 잭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잭이 소개하는 단체에 초대를 받습니다.
처음에는 안 간다고 하다가, 그 모임에 스콧 한이 관심 있어 하는 소녀가 나온다고 하자
마지못해 가는 척 합니다.
그리고 그 모임에 나가면서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봉사를 하기도 하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전에 어울리던 나쁜 친구들과는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스콧은 예전에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의 집 앞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 친구의 방에 불이 켜 있는 걸 보고,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집의 초인종을 누릅니다. 그 날에 일을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데이브의 어머니가 나와서, 들어오라고 했다. ...
집으로 들어가는데, 데이브가 코트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그 자리에 딱 멈춰 섰다.
그리고 그는 이층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끊임없이 얘기를 주고 받았다.
우리는 옛날과 다름없이 함께 웃으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15분쯤 얘기를 한 것 같았는데, 두 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때 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너 아까 코트 입고 있었잖아. 네가 다른 일도 못하게 너를 붙잡아 둔 것 같아. 미안해!”
그러자 별안간 그의 안색이 바뀌었다.
“오늘 밤 왜 여기 왔니?”
“작별인사도 하고 멋지게 살라는 말을 하러 왔어."
“그런데 왜 하필 오늘 밤에 왔니?”
“나도 몰라... 데이브, 내가 무슨 중요한 일을 방해한 건 아니니?”
나는 운동도 잘하고 재미있고 인기 있는 덩치 큰 녀석을 보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왔을 때,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
그는 큰 가방에 손을 넣더니 한쪽 끝에 올가미가 있는 2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밧줄을 꺼냈다.
“오후에 오래된 사과밭으로 가서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었지.
마침 어린 소녀 두 명이 지나가는 거야.
그때 문득 내 인생을 망쳐버렸는데,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의 인생까지 망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하려고 막 나가는 길이었는데, 네가 찾아 온 거야.”
그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를 감싸 안으며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의 집에서 나오는 길에 현관에 걸려 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그가 얼마나 불쌍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하느님께 말씀드렸다.
“주님, 저는 데이브가 무슨 무엇을 하려 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알고 계셨습니다.
당신께서 데이브를 도우라고 하신다면, 기꺼이 그를 돕겠습니다.”】
(‘당신 사랑 영원토록 노래하리다.’ 참조)
데이브처럼 주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관심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을 한 번 보십시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사람들은 자기들만 치유를 받고 구원받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자기 고장의 병자들, 괴로워 하는 사람들,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내어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손을 댄 이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주변을 한 번 돌아봅시다.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봅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주님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인천교구 밤송이(김기현 요한) 신부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을 보여준 사람들
오늘은 일본인 순교자 성 바오로 미키와 25명의 동료 순교자들의 기념일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를 도와 예수회를 창립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지 450년 이상 되었지만
수백 년의 모진 박해 때문인지 신자 수는 50만 명 정도에 불과한 실정입니다(2001년).
일본에는 우리나라보다 235년 이상 먼저 천주교회가 전래되었지요.
일본 천주교회의 시작은 1549년 8월 15일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께서
말라카에서 만나 고아에서 세례 받은 '안지로'의 안내를 받아 가고시마에 입국한 때부터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를 믿는 신자는 물론 교회에 관한 모든 것을
포르투갈어의 발음에 따라 '기리시 땅'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일본에 2년 반(1549-1551)정도 머무르면서 선교에 힘썼습니다.
처음 일본인들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일행을 인도에서 온 스님들로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일본인들을 위해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교리를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이 신앙과 함께 가져온 서양 문물은 전란에 시달리는 일본 사회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고 차차 영주를 포함하여 무사들과 백성이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일본인 심성에 맞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의 선교는 꽃을 피워갔지만
중국 선교를 위해 일본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를 이어 예수회 장상인 톨레스(Torres)가 입국 선교하면서 유력한 영주인
오오무라, 다까야나, 고니시(小西行長), 아리마 등이 개종합니다.
전란이 진정되면서 일본의 집권자인 오다 노부나가의 보호 아래 교세는 거듭 발전하여
1580년에는 신자수가 10만 명에 달하기도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불교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기리시 땅'을
지원하기로 하였고 그 결과 급격한 성장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1579년 예수회의 동양 순찰사 발리냐(Valignano)의 입국은
일본 선교의 새로운 계기를 가져옵니다.
그는 1580년 영주로부터 나가사키를 이양 받아 예수회의 근거지로 만들고
교세를 크게 성장시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얼마 동안 무역의 이득을 위해
기리시 땅의 보호책을 썼으나 1587년부터는 태도를 돌변하여 선교사 추방령을 내립니다.
규우슈우 정벌을 위해 출병하였을 때 보게 된
나가사키의 교회 땅과 많은 기리시 땅 영주, 또 많은 천주교 신자에 놀라
장차 그들이 큰 세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박해의 돌풍이 전국을 휘돌았는데 1858년 일본이 프랑스와 우호통상조약을 맺을 때까지
신앙을 뿌리 채 뽑으려는 박해는 수백 년 간 지속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2월 5일 프란치스코회 수사 6명을 비롯하여
세 명의 예수회 수사와 바오로 미키 등 일본인 17명을 나가사키의 니시까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합니다.
이들이 1862년 성인 반열에 오른 '일본 26성인'입니다.
오늘 기념일로 지내는 이들은 일본인 최초의 그리스도교 순교 성인들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기리시땅에 대한 박해는 간헐적으로 이어지다가
농민폭동과 함께 더욱 지속적으로 일어납니다.
1637년 시마바라 등지에서 기리시땅과 연계된 농민폭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영주의 폭정에 대한 반항이었으나 폭정에 대항한 사람의 대부분이 기리시땅이었으므로
이 난을 진압한 도꾸가와 정권은 기리시땅을 국적(國敵)4호로 삼고,
불교 정책으로 전환합니다.
도꾸가와 정권은 기리시땅을 뿌리뽑기 위해 모든 사람을 절에 소속되도록 의무화시켜
일종의 불교국가를 형성합니다.
전국적으로 다섯 가구를 한 단위로 편성하여 서로 감시케하고 서로 밀고를 장려하였습니다.
기리시땅을 색출하는 방법으로 성모 마리아 화상을 밟고 가게 하여
주민의 표정으로 신자를 가려내는 후미에(踏繪)라는 악랄한 수법까지 사용하여
17세기 후반까지 일본 천주교회는 공적 활동이 불가능해 졌습니다.
이렇게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메이지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250년 이상을
숨어서 신앙생활을 한 기리시땅 신자들이 알려져
전 세계 교회를 경탄케 하였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바오로 미키는 1564년 일본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후 1580년에 예수회원이 되었는데,
특히 설교에 능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치하에 25명의 다른 신자와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은 후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으며 죽으면서 까지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박해시대 때 어느 저자가 쓴 순교사기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974, 977 참고)
『그들이 못 박혀 있던 십자가들이 땅위에 세워졌을 때 놀라웁게도 모든 이들은
파시오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가 준 격려의 말에 응하여 견고한 자세를 취했다.
원장 신부는 거의 부동 자세로 시선을 하늘에다 못박아 놓고 있었다.
마르티노 수사는 시편을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주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라는 시편을 외웠다.
프란치스코 블랑코 수사도 낭랑한 목소리로 하느님께 감사 드렸고
한편 곤살보 수사는 목소리를 높여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낭송했다.
우리 형제인 바오로 미키는
자신이 이제까지 서 보았던 강단 중에서 가장 영예로운 강론대 위에 서 있다고 느끼고서
우선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자기는 일본인이자 예수회원이라고 밝히고,
자기는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죽는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자신이 받은 그 위대한 특전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강론을 마쳤다.
'이제 이 순간을 맞아 내가 진리를 배반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여러분 중에 아무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의 길 외에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이 길이 나의 원수들과 내게 폭력을 가한 모든 이들을 용서하라고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국왕을 용서하고 나에게 사형을 집행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라고 간청하는 바입니다.'』
오늘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을 지내며 바오로 사도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로마5,3-4)
복음을 삶으로 살아낸 이런 초기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일본에서의 천주교 신앙은
모진 박해와 전통 종교의 반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생명의 열매를 간직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