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151) 5백 여인을 미혹하게 한 마라(마왕) 이야기>
<논산 관촉사 은진 미륵 부처님>
부처님께서 빤짜살라 마을에 계시던 어느 때,
마라(마왕)와 관련하여 게송 200번을 설법하셨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써
빤짜살라 마을의 처녀 오백 명이
수다원 과를 성취할 시기가 되었음을 아시고
그곳에 가시어 얼마 동안 머무르셨다.
어느 날 빤짜살라 마을의 오백 명 처녀들은
강가에 나가 목욕을 하고 마을로 돌아와,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좋은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한 다음 빤짜살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도 아침 탁발을 하시려고 빤짜살라 마을로 가셨다.
그런데 아무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은 이때 처녀들은 모두 마라(마왕)에게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얻지 못하신 채
계시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시었는데,
도중에 마라(마왕)가 나타나서
아침 탁발을 얼마라도 얻어 오시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마라(마왕)의 농간으로
아침 탁발을 얻지 못하시었다는 것을 아시고 계시었기 때문에
준엄하게 마라(마왕)를 꾸짖으셨다.
"너 사악한 마라여!
네가 마을 처녀들을 따돌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였도다.
그들은 네게 사로잡혀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지 않은 것이로다."
마라는 부처님의 이 같은 질책에는
대답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타마(부처님 이름)를 다시 마을로 유인해 탁발하게 하자.
나는 마을 사람들을 충동하여 고타마에게 욕설을 퍼붓게 하리라.
그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 되리라.'
마라는 부처님께 말했다.
"오, 붓다여!
왜 다시 마을로 가서 탁발하지 않으시오?
이 시간에는 틀림없이 공양을 받으실 수 있을 텐데 말이오."
그런데, 그동안에 오백 명의 마을 처녀들은 정신을 차려
부처님께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올린 다음 부처님 곁에 조용히 앉았다.
그 광경을 보고 마라는 처녀들이 보는 가운데 부처님을 조롱하려고
"오~ 붓다여! 오늘 아침은 조금도 탁발을 받지 못하여 몹시 배가 고프겠구려!"
하고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마라를 향해 침착하게 말씀하시었다.
"오, 사악한 마라여!
여래는 오늘 아침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러나 *아바싸라 브라흐마(광음천(光音天))가
선정 삼매의 지복감과 만족감으로 살아가듯,
여래 또한 선정의 기쁨과 진리의 환희 속에 만족하며 살아가느니라."
*아바싸라 브라흐마 : 천신의 하나. 항상 선정에 들어 있다고 함.
한역에서는 광음천(光音天)이라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음 게송을 읊으시었다.
우리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자.
아무런 근심 걱정 없고 소유도 없이
기쁨과 만족을 음식으로 삼고
저 아바싸라 브라흐마*처럼 행복하게 살아가자.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빤짜살라 마을에 사는
오백 명의 처녀들은 모두 수다원 과를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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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라(마왕)
초기 불교 경전에 보면 마라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마라들의 왕이 유명한 마왕 파순인데,
욕계에서 제일 높은 타화자재천의 왕이라고 합니다.
제석천이나 범천과 같은 천상 세계의 왕들은
부처님을 공경하고 외호하는 불법의 수호자로 나옵니다.
반면 마왕 파순은 부처님의 성도 장면에도 등장하듯
욕망과 집착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중생의 세계인 욕계(慾界)의 수호자입니다.
따라서, 마왕과 그 권속인 마라들은
수행자를 애착과 오욕락에 물들게 하거나,
수행자를 혼침케 하거나,
수행자들에게 온갖 패악을 부려 수행을 방해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열반경>을 보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 존자에게 석달 전에 열반에 드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아난 존자가 마라의 유혹으로 혼침해 있어서
부처님께 이 세상이 더 오래 머무시도록 권청하지 않았다는
경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수행자에게 빈 틈이 보일 때마다
마라는 항상 덤벼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의 길에 들어서 수행하는 존재에게
언제나 마라의 유혹과 패악은 뒤따릅니다.
그래서, 천수경 기도를 할 때
천룡과 신장들이 이러한 마라의 유혹과 패악으로부터
수행자를 보호하고 지켜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광음천의 행복
부처님께서 수다원 과를 성취할 인연이 되었다고 본
여인들도 재미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축제에 가서 재미있게 놀고
축제의 장에서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정신이 산란해져 있었습니다.
그 산란해진 빈 틈을 마라가 포착하고 들어와서
부처님이 오셨는데도 공양도 안 올리고
자기들 노는 준비에만 정신이 팔려서 부처님을 한 끼를 굶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수행자는 한끼 밖에 안 먹었으니
부처님은 하루를 굶으신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굶고 있는 부처님을 조롱한 마라는
부처님께 패악을 부리기 위해 다시 작전을 수립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처님의 외호로
여인들은 마라의 유혹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스승과 도반이 중요한 것은
수행의 향상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외부(마라)의 유혹으로부터 서로가 서로를 외호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안 계셨으면
마라의 유혹에 빠졌겠지만,
부처님의 외호로 마라의 유혹을 막고
정신을 바로 차리고 수다원 과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마라의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광음천의 행복과 즐거움을 비교하셨습니다.
광음천은 색계 2천의 존재들로서
입에서 나오는 빛으로 언어 소통을 하기 때문에
광음천(光音天)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욕계의 중생들과는 달리
욕망의 만족의 기쁨 대신 선정의 기쁨 속에서 머문다고 합니다.
오욕락과 애착의 즐거움과 행복에 머무는 마라!
선정의 기쁨과 다르마의 환희에서 오는 행복이 있는 광음천!
누가 진정으로 행복한 존재인지를 여인들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누가 진정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인지 여인들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특한 여인들은 부처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우리 진정 행복하게 살아가자.
아무런 근심 걱정 없고 소유도 없이
선정의 기쁨과 다르마의 만족을 음식으로 삼고
저 광음천처럼 행복하게 살아가자."
이 가르침으로 오욕락과 애착에 일희일비하고
세속적인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렇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 최악의 삶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자각으로 인해 조무래기 마라에게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선정의 기쁨과 다르마의 환희를 자주 많이 느끼는가?
조무래기 마라가 범접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는
자주 자주 명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