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앙TV 화면 공개 "우상화·권력세습 가속"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거론돼온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 움직임이 빨라지는 정황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김정일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조기 세습체제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24일 "김정일의 지난주 평안북도 현지지도에 김정은이 동행했다는 첩보가 있다"며 "김정일이 방문한 공장에 김정은 찬양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조선중앙TV는 지난 19일 김정일의 락원기계연합기업소(신의주 소재) 시찰 소식을 전하며 '위대한 장군님의 ○○○ CNC 헌신의 시간에 발걸음을 맞추자!'란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는 화면을 내보냈다. 이 당국자는 "김정은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작년 이후 북한에서 '발걸음'은 김정은을 지칭할 때만 쓴다"고 말했다.
'발걸음'은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김정일이 작년 4월부터 보급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 노래 가사 중엔 김정은을 지칭하는 '김 대장'이란 표현이 매절(총 3절)마다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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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이 현지지도한 신의주 락원기계연합기업소에 '위대한 장군님의 ○○○ CNC 헌신의 시간에 발걸음을 맞추자!'란 포스터가 걸려 있다. '발걸음'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 찬양노래 제목이자 그를 지칭하는 표현이고, 'CNC'도 김정은을 상징한다. /조선중앙TV
김정일이 지난 2월 자신의 생일 경축 음악회 때 '발걸음' 공연을 감상한 사실이 최근 공개된 기록영화 '민족 최대의 명절 2·16'을 통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CNC(컴퓨터 수치제어)' 역시 김정은을 상징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뭔가 새롭고 젊다는 의미를 전달할 때 'CNC'란 말을 쓰는데,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의 부상을 암시한다"고 했다. 실제 북한은 요즘 첨단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전 산업의 CNC화(化)'란 표현을 습관적으로 쓴다. 최근 김정일의 현지지도도 CNC화(자동화)가 이뤄진 공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당국자는 "이 같은 현상이 본격화한 건 김정은 후계설이 나온 작년부터"라며 "북한이 꺼리는 외래어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것도 특이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24일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은 우상화 활동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의 김정은 청년 대장동지' 등의 찬양 시·노래 보급, 암송 경연대회 등도 열린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김정일의 현장 방문시 수시로 수행하면서 정책 관여의 폭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김정은은 국방위에 근무하면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신진 간부 기용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세습 가속화는 작년과는 다른 분위기다. 작년 중반 이후 김정은에 대한 일부 간부의 과잉 충성 등 부작용이 일자 김정일이 '속도 조절'을 지시하며 발걸음 공연까지 금지했었다고 한다. 한동안 북한은 김정은 관련 소식을 직접 다루는 것을 피했는데 "자칫 김정일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김용현 동국대 교수)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 기류가 바뀐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한다. 김정일이 생일날 아들 찬양 가요를 관람하고, 현지지도 현장에 아들 찬양 포스터가 버젓이 등장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후계 구축작업이 빨라진 배경으로 원세훈 원장은 "김정일의 건강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뇌졸중 후유증이 여전해 왼쪽 다리를 절고, 왼쪽 팔도 부자연스럽다. (끊었던) 음주와 흡연을 다시 해 건강이 더 악화됐다는 설이 있다"는 것이다. 안보 부서 당국자는 "권력 세습작업이 순항을 넘어 가속화되면서 김정일·김정은 공동 권력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