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소 : 무등산 약사암
일 시 : 2023.12.28(목)
참 가 : 강공수 김상문 김영부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장휘부 정원길 등 11명
불 참 : 김재일(개인 겨울방학) 1명
회 비 : 100,000원(나종만은 점심 먹지 않고 감)
식 대 : 76,000원(애호박찌개 4, 김치찌개 2, 굴떡국 2 등, 막걸리 2병 값 감액)
금일 잔액 : 24,000원
이월 잔액 : 607,000원
총 잔 액 : 631,000원
<부곡정>에는 나종만과 윤정남이 먼저 와 있었다. 이어서 회원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오늘은 개인 겨울 방학을 한 김재일만 불참하고, 점심시간까지는 모두 다 오기로 하였다. 우선 8명(강공수 김영부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등)이 산행을 시작하였다.
탁구 이야기가 나왔다. 윤상윤이 현역시절 어떤 젊은 교사와 탁구 시합을 하였는데, 그 젊은 교사는 각종 탁구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맞대결은 할 수 없고, 윤상윤에게 15점을 잡아주고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윤상윤이 15점을 딴 것으로 생각하고, 15:0부터 시작하였는데, 결국은 18:21로 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바둑에서도 고수와 하수가 대국할 때, 하수가 몇 점을 놓고 시작하더라도 결국은 고수가 이기게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퇴직한 이후로 한 5년 동안 탁구를 열심히 한 경험이 있다. 각종 기술을 레슨을 받아가면서 배워보았으나 늦은 나이에 배우게 되니까 습득하기가 어려움을 경험한 적이 있다. 우선 서비스부터 회전을 어떻게 거느냐에 따라 받는 사람이 그에 맞게 대처하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공이 튀어 나가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회전 서비스, 우회전 서비스, 좌회전 서비스, 무 회전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 볼을 바르게 대처해야 하고, 경기 도중에도 각종 방향으로 회전을 걸어 공격을 하면, 상대방은 거기에 맞는 기술로 방어해야 경기가 계속 진행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80년대에 우리 고향의 <득량서국민학교>에서 <광주고> 탁구선수 출신인 안경(해남출신)이라는 교사와 근무할 때, 가끔 탁구경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은 뛰어난 탁구기술을 구사하여 경기를 하면 천하무적이었다. 그 선생님이 아들을 탁구선수로 키워 <보성군> 대표가 되었는데, <광주시교육청>에서 스타웃을 제의하였지만 서로 제시하는 조건이 맞지 않던 차에, <부산시교육청>에서 그 안경선생과 탁구 선수였던 그의 아들을 함께 부산으로 발탁하여 데려가 버렸다. 그리고 <전남> 출신이었던 그 부자는 <부산>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아들은 성장하여 탁구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고, 중국 국가대표 여자 탁구선수 자오지민과 세기적 연애를 하다가 여러 가지 역경을 딛고 끝내 결혼까지 하게 된 안재형(아버지의 근무지인 고흥에서 출생) 선수였다. 안재형은 그 당시 미취학 아동(5세쯤)이었고, 그의 누나를 내가 담임으로 가르친 기억이 있다. 이제 그의 나이도 60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오늘 탁구이야기가 1970년 내가 미혼 청년이었을 때의 추억을 소환해 주었다.
그저께(12월 26일, 화)는 혼자서 깃대봉을 올라갔다. 팔각정 밑에 있는 철탑 쉼터에 까지 가서 벤치프레스(벤치에 누워 역기 들기)를 하고 내려왔다.
마트에 들러서 아내에게 줄 가스 활명수를 사려다가 지갑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주머니에 있었던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내 추측으로는 벤치프레스를 하려면 누워서 하여야 하였으므로 그 때 지갑이 빠졌던 것일까? 거기까지 다시 가려면 1시간이 걸린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내 발걸음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지갑 속에는 내 신분증과 각종 카드, 그리고 현금 등 소중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서둘러 되짚어 가다가, <조선대> 학군단 숙소 옆을 지나는데, 내가 내려올 때 그는 올라가다가 나와 마주쳤던 사람이 지나갔다. 혹시 지갑을 보았는가 물었더니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잠시 후에 또 내가 내려올 때, 그는 올라가다가 나와 마주쳤던 또 한 사람을 만났다. 혹시 검은 지갑을 보았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의 대답은 “아! 이 지갑이요?” 나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다. 내 이름을 말하니까, “맞네!”하면서 지갑을 건네주었다.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그가 벤치 옆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서, 지갑 속을 살펴보았더니, 내 전화번호가 나왔지만 오늘따라 그가 헨드폰을 집에 두고 와서 나에게 전화를 하지 못하고, 집에 가서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고 하였다. 지갑 속에서 내가 <보성> <득량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자기도 같은 <보성> 사람이어서 반가웠다고 하였다. 보성 어디에 사는지 물었더니 <문덕면> <가네> 마을이 고향이라고 하였다. 그 마을은 내 외가댁인 성주이씨 집안이었다. 그가 상(相)자 항렬이니 내 아우뻘이었다.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주었더니 극구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따고 헤어졌다.
저녁때 고기 집에 가서 소고기 5만원어치를 떠다가 그와 통화 하여 고마운 마음을 표하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각박하지만은 않고 아직도 더불어 살만한 사회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약사암>의 수도는 아직도 꽁꽁 얼어붙어 있어서 음양탕을 만들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물을 마시지 못하였다.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의 물은 나오고 있었지만 냄새는 없어지지 않고 있었다.
식당에 다시 모인 회원은, 오늘 출석한 11명 중에 나종만 만이 문중 일 때문에 먼저 내려가고 10명이 같이 점심을 먹었다. 겨울 방학을 하자는 의견이 나와 가부를 물었더니, 방학을 하자는 쪽이 더 많아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갑인(甲寅)년 설을 쇤 다음에 다시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아마 2월 15일(목)이 될 것이다.
첫댓글 계묘년 한 해 동안 우리 목요산우회 이끌어 가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아석의 희생으로 매주 1회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포도 풀고 세상사 이야기 할 기회를 가져 너무 감사드립니다.
목요산우회 출생일은 2004년 4월 10일 인듯합니다.
금년 마지막 산행이 632차라니 우리는 이제 동창보다는 친구. 친구보다는 형제애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덕택에 스트레스를 풀고 약사암까지 걷는 시간을 갖다 보니 아직도 아름답고 멋진 이 세상에서 건강한 노년을 지내나 봅니다.
그런데 물건을 잃은 것 중에서 제일 걱정되는 물건이 지갑인데 쉽게 찾고 고향 친구까지 얻어 다행입니다.
또한 안재형이 전라도 출신인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목요회 친구들!
갑진년 새 해에도 더욱 건강하기를 기원하며 이번 '겨울산행휴식기간' 에도 건강관리 잘 하여 2024.2.15.에는 결석한 친구가 없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