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신학과 고정된 신학교육은 성경 해석을 병들게 한다**
임명락 목사 (통일성교회)
고정된 신학과 고정된 신학교육은 성경 해석을 병들게 한다. 이 한 문장이 오늘날 한국 교회와 신학계의 아픈 현실을 정확히 짚는다. 우리는 성경을 지식으로만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본래 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지식만으로 성경을 다루는 일은 성령의 역사를 막는 일이 된다. 이 시대에 성경을 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은 참으로 괴하다. 희귀하다.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바로 그 희귀함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질이다.
기독교 미래교육 연구와 준비와 교육은 아직도 1학년 수준에 고정되어 있다. 세상은 이미 AI와 AGI 시대로 빠른 변화를 향해 달리고 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인간의 사고를 넘어서고, 정보의 홍수는 교회의 전통적 교육 방식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구경만 하고 눈치만 본다. 성직자의 삶이 너무 부끄럽다. 평신도로 시작하여 선교사로, 전도사로, 강도사로, 목사로, 신학교수로 성장한 듯 생각되지만, 실은 소리만 요란하다. 난 빈 항아리뿐이요, 포도주도 만나도 떡도 없다. “포도주는 떨어졌고”(요 2:3)라는 가나 혼인 잔치의 탄식이 오늘의 교회 현실과 겹친다. 항아리는 가득 차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다. 만나를 기억하면서도 만나를 구하지 않고, 떡을 나누면서도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작은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 하나로 지금까지 선교형 삶으로 주님의 길을 바라보며 따라간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여도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믿음이 작아도 주님을 바라보면 길이 열린다. 이 작은 믿음이 바로 미래교육과 통일시대 준비의 출발점이다.
이 시대 미래교육의 핵심은 ‘고정’에서 ‘유동’으로, ‘지식’에서 ‘영’으로의 전환이다. 고정된 커리큘럼, 고정된 교리 체계, 고정된 해석 전통은 변화하는 시대를 감당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고 하셨다. AI와 AGI가 지식을 무한히 공급하는 시대에, 교회가 지식 전달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낡은 부대가 된다. 성령의 조명 아래 성경을 읽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시대를 분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 말씀은 지식의 도구가 아니라 영의 무기다.
통일시대 준비도 같은 영적 원리를 요구한다. 통일을 정치적·경제적 문제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부족하다. 통일은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허락하신 역사적 소명이며, 영적 회복의 기회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사 29:13). 분단의 아픔 속에서도 마음이 주님께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영으로 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북녘의 영혼들을 품고, 남녘의 세속화를 회개하며, 하나 된 민족이 주님 앞에 서는 꿈을 꾸어야 한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이 연합은 정치적 합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으로 하나 되는 교회가 먼저 세워져야 한다.
미래교육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다. 영적 분별력을 키우는 교육이다. AI가 답을 주는 시대에, 질문을 던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훈련이 절실하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성전이 된 성도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지식은 쌓여도 생명은 고갈된다. 신학교육이 1학년 수준에 머문다면, 우리는 영원히 초보에 머물 것이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장성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나는 빈 항아리다. 포도주도 만나도 떡도 없다. 그러나 주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시면 포도주가 된다. 주님이 만나를 내려주시면 광야에서도 산다. 주님이 떡을 떼시면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는다. 나의 공허함이 주님의 충만을 담는 그릇이 된다. “주께서 내 잔을 넘치게 하시나이다”(시 23:5). 이 고백이 미래교육과 통일시대 준비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성직자의 부끄러움은 변명이 아니다. 회개의 통로다. 구경만 하고 눈치만 보던 삶에서 벗어나, 작은 믿음으로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선교형 삶은 먼 나라로 가는 것만이 아니다. AI 시대의 일터와 가정과 교회, 그리고 통일의 현장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것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이 지상명령은 AI 시대에도, 통일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고정된 신학을 내려놓자. 고정된 교육의 틀을 깨자. 성경을 영으로 해석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자.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이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자. 빈 항아리 같은 우리가 주님의 포도주와 만나와 떡으로 채워질 때, 이 시대의 미래교육과 통일시대 준비가 비로소 시작된다. 주여, 우리의 빈 항아리를 채우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