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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1.
2. 사람 사이에서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아닌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관계를 말할 때 주로 쓴다.
3. 불가근 불가원 (不可近 不可遠) 어원 설명
참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면 나무나 줄에 앉을 때 서로 어느 정도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다.
나중에 새가 날 때 서로 날개가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람들에게도 최적의 대인거리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너무 가까이 해도 안 되고 너무 멀리해도 안 되는 거리.
그것을 가리켜 서로의 존엄성을 위한 ‘배타적인 공간’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람이 많아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배타적인 공간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생활이나 교회생활에도 이런 공간은 필요한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의 대가족제도가 점점 붕괴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이런 ‘배타적 공간’이 지켜지지 않아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 가깝게 살면 좋을 것 같은데 막상 가깝게 살다 보면 서로 상처를 입고 미워하게 되고, 그렇다고 멀리 지내면 또 보고 싶은
것이 가족 관계이다.
또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흔히 교인들과 목회자는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처음에는 좋지만 나중에는 서로 상처를 입고 사이가 안 좋아진다는 것이 오랜 생활의 지혜라는 것이다.
한문에도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란 말이 있고, 또 인간(人間)이란 한자도 ‘사람’ 인(人)에 ‘사이’ 간(間)을 쓰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고슴도치가 서로 날카로운 털을 가졌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를 찔러 괴롭고 떨어져 있으면 춥고 쓸쓸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 날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모여 자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우리가 알고있는 고사성어중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이 있지요 이는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깝지도 않게"하라는 뜻이 숨어있어요. 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은 중국 춘추 전국시대때 일어났던 예화에서 인용된 것인데 마지막 승자가 된 월나라 왕 구천(句踐)에게는 두 명의 충직한 신하가 있었지요 그 신하의 이름은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었어요. 당시 월왕 구천(句踐)은 경솔하게 오나라를 침략했다가 대패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지요 그러나 월왕 구천(句踐)은 문종과 범려라는 인재를 얻어 힘을 비축한 끝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월나라를 구할수 있었어요. 월왕 구천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두 신하를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지혜를 모았지요 한마디로 월나라의 왕이었지만 두 스승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였어요 왕과 신하의 위계를 떠나 파격적으로 사제지간의 도리를 다하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월나라가 오나라를 이기고 강성해 졌을때 범려는 문종(文種)에게 이런말을 했어요 "무릇 월왕 구천(句踐)이라는 사람은 목이 길고 입이 튀어 나와 매의 눈초리에 이리의 걸음을 하는 상이오 이같은 상을 한 사람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어려움을 같이 할수는 있어도 즐거움을 함께 누릴수는 없는 것이지요 만일 그대가 그를 떠나지 않으면 그는 장차 그대를 죽이고 말것이오 그러니 어서 이 왕궁을 떠나 그대의 살길을 도모 하시오" 그러나 문종은 범려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범려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문종(文種)을 버려두고 혼자서만 월왕을 떠났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범려가 예언하듯 월왕 구천(句踐)은 문종(文種)에게 "그대가 내놓은 비밀스런 계책으로 오나라를 전복하고 전국을 취할수 있었소 그대가 말한 9가지의 계책중 지금까지 겨우 3가지만을 사용하였는데도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킬수 있었소 나머지 6가지는 아직 그대가 구사하지도 않고 있소. 남은 여섯가지 계책중에는 나를 토살하여 왕위를 찬탈하는 계책도 있을수 있으니 바라건대 나머지 계책은 나를 위해 죽어 지하에서 오나라를 도모하는데 써주기 바라오" 하면서 월왕 구천은 문종(文種)에게 자결하라는 명을 내렸지요 한마디로 문종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한 것이지요 그때서야 범려의 말을 듣지않은 문종(文種)은 때늦은 후회을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지요 그는 죽으며 이런말을 남겼어요 "남영 출신 재상이 오히려 월왕의 포로가 되었구나. 이후 멸망하는 나라의 충신들은 반드시 나를 들먹일 것이다." 범려(范蠡)가 살아남은 것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지요 월왕이 어려울때는 불가근(不可近)하고, 월왕이 뜻을 이루고 나서는 불가원(不可遠)한 것이지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는 말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 가운데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라는 것이 있어요 고슴도치들은 날이 추워지면 추위를 막기 위해 서로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 가지요.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래며 서로 멀리 떨어지지요. 그러면서도 그들은 곧 추위를 느끼고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만 이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픔을 피하려 다시금 떨어지고 말어요. 그들은 추위와 아픔 사이를 왕복하다가 마침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지요 결국 두 마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느낄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찾아내 가장 평안하면서도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해진다는 이야기지요 이 이야기에서는 고슴도치들은 결국 몇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서로간의 ‘적절한 거리’를 찾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고 있어요. 유대계 종교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인간의 본질은 ‘나와 너’의 만남 속의 ‘사이의 존재’라고 했어요. 개인주의적 인간학에 대항하는 부버는 ‘참된 인간은 나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 서로를 동등한 대화의 주체로 바라보는 사람’임을 강조한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사이가 좋다’는 말이 있어요 인간관계 일반에서 ‘관계가 좋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러면 ‘사이가 좋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사이’라는 것을 한자어로 말하면 "사이 간(間)"를 이름이지요 그러니까 ‘사이가 좋다’는 것은 서로가 빈틈 없이 딱 붙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적절한 거리 즉 간(間)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우리의 통상적 개념으로는 ‘찰떡궁합’과 같은 것을 이상적인 관계로 생각하고 있는데 추호의 빈틈이나 거리가 없이 딱 붙어 다니는 것을 ‘사이가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사이가 좋은 것이 아니라 사이가 없는 것이지요 아무리 치밀한 물질의 분자구조라 하더라도 반드시 틈새는 있어요. 이 세상에 딱 붙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우주의 별들도 그렇지요 붙어 있는 별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어요. 태양계의 경우 태양과 달과 지구가 각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태양계가 성립되는 것이지요. 만약 서로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지구와 달은 태양에 잡아먹히거나 아니면 우주 허공으로 각기 사라져 버리고 말지요 우주만물이 그럴진대 하물며 인간사는 어떠할까요? 사랑도 마찬가지 이지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적당한 인격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함께 어울리다 보면 친밀한 것 같은데 결국은 상처를 주고받게 되지요 그러므로 인간(人間)과도, 자연(自然)과도,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 불행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행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관계란 멀리 하면 서운한 감정을 가진채 소원해지고 너무 가까이 하다 보면 하루아침에 실망하여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게 오해든, 배신이든,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실망은 더 큰 법이지요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이치도 흔히 하는 말로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알맞은 상태가 바로 "적당함"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옛 선인들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즉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고 했지요 이 역시 적당함의 덕목과 상통하는 말이 아닐수 없어요 아름다운 관계의 비결은 바로 ‘사이’에 있어요. 이 점을 우리가 거듭 음미해야 하지요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를 항상 유지해야 하지요.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적당한 것이 가장 현명(賢明)한 것으로 보았지요. 그래서 용기(勇氣)란 무모하지도 않고 겁을 먹지도 않는 상태라 했고 절제(節制)란 방종도 아니요 무감각하지도 않은 상태라 했어요 그리고 관대(寬大)함이란 낭비도 인색도 아닌 상태이며 긍지(矜指)란 오만하지도 않고 비굴하지도 않은 것이라고 했지요 또 티베트의 존경 받는 수도승(修道僧)‘아나가리카 고빈다’는 "산(山)의 위대함은 거리를 두어야 보인다. 산(山)의 모습은 직접 돌아보아야 알수 있다"고 말하였지요 이는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직접 보면 실망을 주거나 마음을 아프게 할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풍경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도 그렇고, 감동의 마음을 품었던 일 또한 가까이 가서 두루 헤아려 보면 멀리서 볼때와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사회학자 "에드워드 홀"은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를 네가지 영역으로 분류했어요 에드워드 홀의 친밀거리는 30Cm 첫번째는 45㎝ 이내의 아주 가까운 ‘밀접 거리' 이지요 부모와 자식간이나 연인사이처럼 서로 사랑하고 밀착된 그런 마음의 거리를 말하고 있어요 두번째는 ‘개인 거리'이지요 45㎝-120㎝ 정도의 손을 뻗으면 닿을수 있는 정도의 거리이지요 소위 말하는 ‘사적인 공간’의 범주이지요 이는 친구나 가깝게 아는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유지하는 거리라 하네요 세번째는 120-360㎝ 정도의 ‘사교 거리'이지요 이는 사회적인 영역이지요 인터뷰 등 공식적인 상호작용을 할때 필요한 간격이라 하네요 네 번째는 360㎝를 넘어서는 ‘공중(公衆)의 거리'이지요 무대 위의 공연자와 관객처럼 떨어져 앉아 있는, 그래서 서로 알지 못하는 거리이지요 그래서 ‘사이(거리)’는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사이’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살고 있지요 적절한 ‘사이’를 유지한다는 것을보고 두 사람 사이에 묶여 있는 고무줄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두 사람 사이의 고무줄은 어느 정도 팽팽함을 유지하고 있을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최적의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만약 어느 한 쪽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고무줄은 느슨해지고 관계에 빨간불이 켜지지요 그때는 다른 쪽이 약간 더 멀어지면서 팽팽함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지요 반대로 한 쪽이 너무 멀리 간다면 고무줄은 끊어질 정도로 팽팽해 지지요 이 또한 관계의 적신호가 들어오게 되고 다른 쪽은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관계를 정상으로 만들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좋은 인간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고 너무 멀리도 하지 말라’는 원칙을 행할때 비로소 좋은 관계를 유지 할수 있다는 것이지요 산(山)의 위대함은 거리를 두고 보아야 제대로 보이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또 경이원지(敬而遠之)란 말도 있어요 이는 상대방을 공경하되 일정한 거리를 두라는 의미 이지요 <논어>에서 이르기를 공자의 수레를 모는 마부이자 제자였던 번지(樊遲)라는 사람이 어느날 공자에게 물었어요 "지혜로운 지도자란 어떤 사람인가요?" 그러자 공자는 말하기를 "경이원지(敬而遠之) 즉 백성들이 원하는 정치를하고, 백성들이 믿는 귀신을 공경하되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진정한 지혜로운 지도자의 모습이다"라고 대답했지요 그래서 경이원지(敬而遠之)는 지혜로운 지도자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교훈이 아닐수 없어요 그래요 가까우면서도 먼사람, 멀면서도 가까운 사람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며 경이원지(敬而遠之)가 아닐런지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대하라는 어느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 4. 사자성어 고사성어 곱씹어보기-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不可近不可遠(불가근불가원) 不(아니 불) 可(가할 가) 近(가까울 근) 不(아니 불) 可(가할 가) 遠(멀 원)
가까이하기도 어렵고 멀리하기도 어렵다는 말로, 사람 사이에서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아닌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관계를 말할 때 주로 쓴다. 혹은 사람은 좋아서 가까이 하고 싶은데 멀리 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거나, 사람은 싫어서 멀리 하고 싶은데 가까이 해야만 하는 사정이 경우에도 많이 쓴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때와 같이 해가 떴다. 매일같이 뜨고 지는 해와 달이라 별 대수롭지 않게 볼 수도 있겠지만, 해와 달과 지구가 생긴 이래로 계속 같은 시간에 이렇게 뜨고 진다고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게 볼 수만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지구의 나이는 얼마일까? 여러 학설이 있겠지만, 대략 46억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태양과 달의 나이도 비슷하다고 한다.
길어야 백년 남짓 살 수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긴 시간을 하루같이, 지구는 태양주위를, 달은 지구주위를 움직이고 있다. 아무리 정밀한 기계라도 실수가 있기 마련인데, 어떻게 그 오랜 세월동안 충돌하거나 쉬지도 않고 한결같이 움직이고 있을까?
뉴튼의 사과로 유명한 만유인력(萬有引力)의 법칙, 태양과 지구사이에도 예외 없이 인력(引力)이 작용한다. 그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힘으로 태양과 지구는 서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지구가 태양으로 끌려가지 않는 이유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회전하면서 발생하는 원심력(遠心力) 때문이다. 그 원심력이 없다면 사과가 땅에 떨어지듯이 지구는 태양으로 떨어질 것이다.
인력(引力)과 원심력(遠心力)이 균형(均衡)을 이루는 그 정확한 거리(距離)의 지점으로 이루어진 궤도(軌道)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구는 끝없이 돌고 있다. 태양주위의 궤도를 지구가 돌고, 지구주위의 궤도를 달이 돈다.
그 일정한 궤도에서 조금 만 벗어나도 저 멀리 날아가 버리거나 서로 충돌하여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가 태양으로 빨려들어 가거나, 달이 우리 머리위로 떨어진다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끝없이 돌면서도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 건 가깝지도 않고(不近) 멀지도 않게(不遠) 균형이 잘 잡힌 궤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달과 지구도 마찬가지이다.
태양과 지구의 존재(存在)자체를 위해서, 달과 지구의 존재자체를 위해서 더 가까워져도 곤란하고 더 멀어져도 곤란하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지구와 달과 태양뿐만 아니라, 사람사이에도 거리(距離)가 있다. 물리적 거리이건 심리적 거리이건, 어떤 거리가 있다.
사람사이의 그 거리(距離)중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가 있다.
사람사이의 좋은 관계(關係)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다.
서로의 일에 너무 관심이 없어도 서운하지만 너무 사사건건(事事件件) 나서도 곤란하다. 적당한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서로 좋다. 너무 관심이 없으면 관계(關係)자체가 의미 없게 되고, 관심을 가지는 정도를 넘어서서 심하게 간섭을 해도 서로 피곤해져서 오래 유지될 수가 없다. 오랫동안 좋은 관계로 잘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적당한 거리 둘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거리의 적당한 정도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다르고 지구와 달의 거리가 다르듯이, 한사람이 느끼는 편안함의 거리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은 좀 더 가까이 있는 것이 편안 할 것이고, 낯선 사람은 조금 먼 거리에 있는 것이 편안 할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 가족, 친구, 연인, 선후배, 동료 등 수많은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을 한다.
어떤 상대와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다면, 우선 그 사람과 나의 적당한 거리를 잘 파악해야한다. 그리고 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 거리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다가서도 너무 멀어져도 안 되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은 어떤 특정한 관계에서만 필요한 말이 아니라, 모든 관계의 철칙이다. /////////////////////////////////////////////////////////// 5. 미생의 불가근 불가원
▲ 7수, (1권 136-137면) 장그래의 직속상관 김대리의 충고와 함께 인턴들의 PT 테스트 총성이 울렸다. 김대리가 건넨 화두는 '불가근 불가원'이다. 폭탄과 함께 팀을 만들면 돋보이기 때문에 누구나 폭탄을 원한다는 게 요점이다.
김대리의 충고 이후로 많은 인턴들이 장그래에게 접근했다. 불가근이 필요한 시간이다.
▲ 12수, (1권 225면) 불가원은 어디 있을까? 장그래의 인턴 동료이자 신비로운 전략가 안영이는 불가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장그래가 선택한 팀원 한석률은 문화에서 무척 논쟁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인턴들은 이미 폭탄으로 지목해 놓았다. 안영이는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한석률에 대한 정확한 평론을 한다. 사람들이 쉽게 말하듯 폭탄은 아니라는 거다. 장그래의 진가를 알아본 것도 안영이다. ▲ 12수, (1권 229면) 장그래 역시 만만치 않다. [미생]의 스토리를 보면 장그래는 안영이를 쉽게 선택할 것 같지만, 안영이를 택하지 않는다. 안영이의 팀원으로서 자신이 부족해서 부적절한 팀웍이 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불가근 불가원의 또다른 세계다. [미생]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양파와 같다. 그런데 안은 비어 있다. 인물과 말, 사실과 진실이 갖가지 층위를 이루며 그려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모습이다.
뚜렷이 옳다고 하기도 어렵고 틀리다고 하기 어렵고,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버리는 순간 양파의 겉껍질처럼 벗겨져나간다. 그만큼 즐길 수 있는 층위도 여러 가지라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생] 자체만은 불가근 불가원하기가 참 어렵다.
양자택일은 피할 수 있다 인생은 선택이지만 현실은 디테일이다. 잘 관찰하고 머리를 굴리면 좋은 수가 보인다. 가장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은 양자택일에 빠졌을 때다. 양자택일은 내가 게을렀다는 증거니까.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자아실현을 한 건강한 사람들은 이분법에서 자유롭다. 그들의 눈에는 이분법적 판단들이 없어지고, 반대되는 것들이 동일한 것으로 보이며, 이분법적 사고방식 전체가 미성숙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동성연애자의 결혼이 정당한가 논쟁하는 미국 사회, 학생인권조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싸우는 우리 사회는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생각이 조금만 달라도 비난이 끊이지 않는 것은 미성숙을 보여주는 증거다. 건강한 사회적 여건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이익이 대립하지 않고 상승효과를 낸다. 열악한 개인적ㆍ사회적 여건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이익이 실제로 대립하기 때문에 그릇된 이분법이 존속한다. 이분법에 허우덕거리는 미성숙한 개인과 사회는 한마디로 성찰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정합성과 '휴리스틱'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휴리스틱(Heuristic) 은 그리스어 "heutiskein" 가 어원이며 "to discover" 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이미 정립된 공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보가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력을 통해서 시행착오 (trial and error) 를 거처, 또는 경험을 통해서 주먹구구식의 규칙 (Rule of Thumb) 을 통해 지식을 알게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합성은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참기 힘들어 어떻게든 판단을 내리는 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을 창시한 대니얼 카너먼의 용어를 사용하면 빠른 직관과 관성이 작동하는 시스템1이 정합성과 휴리스틱의 원천이다. 반면 느린 이성과 검증의 사고는 시스템2로 불린다. 즉 건강한 개인과 사회는 시스템2가 시스템1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상태다.
덜 규칙적이거나 타당성이 낮은 환경에서라면 판단의 휴리스틱이 작동한다. 시스템1은 대체에 의해서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빠른 대답을 제공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정합성을 만들 수 있다 [미생]의 1,2권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인턴들의 PT 시험이다.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 직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장그래를 포함해서 모든 인턴들이 시험에 목숨을 걸고 있다. [미생] 역시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성찰적인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나오는데, 성찰적이지 않은 캐릭터는 주로 이분법을 만들어낸다.
#불가근 불가원
무릇 장사에는 반드시 권세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작은 장사에는 작은 권력이 필요하지만 큰 장사에는 큰 권력의 힘이 필요합니다. 장사란 무릇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익을 추구하는 장사와 힘을 추구하는 권력이 합쳐지면 거기에서 이권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지나치게 권세에 의지하면 그로인해 멸망하게 되지만 또한 권세를 지나치게 멀리하면
그로 인해 멸망하게 되지만 또한 권세를 지나치게 멀리하면 그로 인해 흥하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장사와 권세의 관계는 입슬과 치아와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입술과 치아는 함께 있지만 서로 떨어져 서로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 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순망치한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서로 의지하는 가까운 사이에 놓여 있어서 한쪽이 망하면 또 다른 편도 온전하기
어려운 관계임을 뜻하는 비유입니다.
권력과 사업은 서로 입술과 이빨과 같은 관계인 것입니다.
서로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고 지나치게 멀지도 않습니다.
이를 '불가근 불가원'이라고 합니다.
권력은 힘이 있지만 돈이 없고, 상업은 돈이 있지만 힘이 없습니다.
+@ 개미와 꿀
개미는 권력과 같습니다. 구슬을 스스로 꿰기 위해서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미 허리에 실을 매달듯 권력의 힘에 잠시만 매달리면 됩니다.
나머지는 개미가 알아서 구멍을 뚫고 나갈 것입니다.
다만 그 개미를 유혹할 강력한 미끼가 필요한데 그것이야말로 꿀인 것입니다.
개미를 유혹하는 꿀이야말로 돈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