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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인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後) † 使徒바울 ☆ (敎理書信)
고후10:1-18절) 견고(堅固)한 진(陣)을 무너뜨리는 능력(能力)
Ⅱ.인간(人間)을 높이는 사상(思想)의 함정(檻穽)(중)
인류(人類) 역사(歷史)는 크게 두 개의 흐름으로 이루어집니다.
①인간을 최고로 높이는 그리스 사상(思想), 즉 사람들이 헬라 사상(思想)이라고 부르는 흐름이 있습니다.
인간(人間)은 권력(權力)을 가진 자가 최고이고, 모든 것을 차지하며, 다른 사람을 자기(自己) 종이나 노예(奴隸)로 삼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人間)은 언제나 그런 독재자(獨裁者)에 반감(反感)을 가지고 대항(對抗)하려고 했으며, 그들의 억압(抑壓)으로부터 자유(自由)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인들은 많은 노예(奴隸)를 부리기는 했지만, 아주 정교(精巧)한 민주주의(民主主義) 사회(社會)를 만들어 정신적(精神的) 우월감(優越感)을 누렸습니다. 그리스 인들은 아테네를 중심(中心)으로 단결(斷結)해 그리스를 차지하기 위해 공격(攻擊)해 오는
*페르시아 제국(帝國)을 두 번이나 물리쳤고, 당시 아테네와 그리스 민주정치(民主政治)는 절정(絶頂)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후 그리스는 부패(腐敗)했고, 자기(自己)들끼리 치열하게 싸우다가 결국 망(亡)하고 말았습니다. 후일 사람들은 뛰어난 정신문화(精神文化)를 가지고도 그리스가 왜 망(亡)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리스가 망(亡)한 것은 인간(人間)을 지극히 높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것이 인간(人間)을 오만(傲慢)하게 만들고, 자기(自己) 주권사상(主權思想)의 노예(奴隸)가 되게 하는 마귀(魔鬼)의 술책(術策)이있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革命)도 마찬가지이고, 19세기 유럽의 계몽주의(啓蒙主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공산주의(共産主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랑스 혁명(革命)도 왕의 독재(獨裁)에 맞서 일어났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나폴레옹이 등장(登場)해 전(全)유럽은 전쟁(戰爭)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人間)은 진화론(進化論)과 인간(人間)의 위대함을 믿었지만, 결국 식민지(植民地)전쟁으로 1차 세계대전(世界大戰)과 2차 세계대전(世界大戰)이 터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②또 다른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신앙(信仰)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創造)하셨고, 하나님이 가장 높으시고, 하나님은 영광(榮光)을 받으셔야 한다는 사상思想)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선지자(先知者)들의 사상(思想)이었고, 나중에는 예수님의 복음(福音)으로 완성(完成)됩니다.
사도 바울 때, 인간(人間) 중심(中心)의 아주 정교(精巧)한 그리스 사상(思想)과 하나님 중심(中心)의 사도 바울의 복음(福音)이 고린도에서 충돌(衝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社會)는 인간(人間)이 중심(中心)이 되고, 가장 소중(所重)하다는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보편화(普遍化)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榮光)을 돌려야 한다는 기독교(基督敎)사상(思想)과 충돌(衝突)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敎會)와 기독교(基督敎)가 오해(誤解)를 받고 있는데, 그 오해(誤解)는 이미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가졌고, 부(富)와 지위(地位)를 가졌기 때문에 가진 자를 대표(代表)하는 사상(思想)으로 생각(生角)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등지에서 헌금(獻金)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逮捕)되었을 때, 로마 총독(總督)은 *사도 바울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소문(所聞)을 듣고, 그를 쉽게 풀어주지 않고, 계속해서 불러 심문(審問)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고도 끝까지 뇌물(賂物)을 주지 않고, 2년간 감옥(監獄)에 갇혀 있다가 결국 로마로 압송(押送)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뒤, 고린도에 있던 그리스 철학자(哲學者)들과 변론가(辯論家)들은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自身)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能力)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그리스 식으로 세련(洗練)되게 변론(辯論)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변론(辯論)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바보로 취급(取扱)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그리스 인에게 가장 적대적(敵對的)인 민족(民族)이었습니다. 로마 안에서 가장 잘 싸우는 민족(民族)이 유대인과 그리스 인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사도 바울은 가장 정통(正統)이라고 알려진 예루살렘 사도(使徒)나 교인(敎人)들의 인정(認定)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중요한 것은 말이지 글이 아니었는데, 그들은 사도 바울이 *글을 조금 쓸 줄은 알아도 말은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非難)하며 업신여겼습니다.
10:1-2절)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를 육신(肉身)에 따라 행(行)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을 영적(靈的)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오직 세상적(世上的)인 눈만 가지고 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영적(靈的)인 눈으로 사도 바울을 보면, 그는 고린도 교인(敎人)에게 적대적(敵對的)인 유대인이 아니라, 복음(福音)을 위하여 보냄을 받은 전도자(前導者)였고, 그들의 영적(靈的)아버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 철학(哲學)이나 변론술(辯論術)을 알지만, 고린도 교인(敎人)을 위하여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을 전(傳)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自己)는 *유대인이나, 그리스 인이나 야만인(野蠻人) 모두에게 빚진 자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한 형제(兄弟)'라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敎人)에게 *그들을 젖으로 먹이고, 양육(養育)한 유모(乳母)와 같다'고 했는데, 옛날 어린 아이들에게 유모(乳母)는 친(親)부모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적(人間的)으로 보면, 이야기는 완전(完全)히 달라집니다. 즉 인간적(人間的)으로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敎人)에게는 경쟁상대(競爭相對)인 유대인이었고, 그리스 철학(哲學)이나 변론술(辯論術)에 무지(無知)했고, 예루살렘 사도들이 보내지 않은 무자격자(無資格者)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기(自己) 자신(自身)이나. 다른 사람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 하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높이느냐? 인간(人間)을 높이느냐? 입니다.
10:5절)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결국 복음(福音)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반대(反對)로 세상(世上)의 사상(思想)은 인간(人間)을 최고(最高)로 높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탄(詐誕)의 무서운 속임수가 있습니다. 즉 사탄(詐誕)은 *인간(人間)을 최고(最高)'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깎아내리고, 인간(人間)을 마귀(魔鬼) 자신(自身)의 종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自身)이 최고로 높아지고 최고(最高)가 되었다'고 좋아하지만. 실제(實際)로는 마귀(魔鬼)에게 속고 있는 것이며, 마귀(魔鬼)의 종이 되고, 폭력(暴力)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히브리 종교(宗敎)와 기독교는 독재(獨裁)에 맞서 싸우거나, 인권(人權)을 위하여 처음부터 투쟁(鬪爭)하거나. 그런 운동(運動)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基督敎)와 여호와의 종교(宗敎)가 인간(人間)의 권리(權利)나 자유(自由)에 대(對)해 소극적(消極的)이었다고 비난(非難)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이들은 *기독교(基督敎)가 사람을 종교(宗敎)의 노예(奴隸)로 만들었다'고 비난(非難)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높여드릴 때, 우리 인간(人間)의 가치(價値)가 회복(回復)되고, 자유(自由)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人類) 역사상(歷史上) 가장 많은 노예(奴隸)가 압제자(壓制者)로부터 탈출(脫出)에 성공(成功)한 것은 출애굽 때였습니다. 전세계(全世界) 인구(人口)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농노(農奴)라고 해서 노예(奴隸)에 가까운 신분(身分)이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인(自由人)이었고, 자기(自己)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帝國)때도 많은 노예(奴隸)가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들이 곧바로 자유민(自由民)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노예(奴隸) 신분(身分)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간(身分)의 가치(價値)를 깨달았고, 자신(自身)의 존엄성(尊嚴性)을 알았습니다.
복음(福音)이 퍼져 나가면서 여성(女性)의 인권(人權)이 중요시 되고, 어린 아이의 인격(人格)을 존중(尊重)하게 되고, 억압 받던 사람이 자유(自由)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때 기독교(基督敎)가 축복(祝福)이나. 부흥(復興) 성장(成長)에 욕심(慾心)을 낸다면, 부자(富者)를 좋아하고, 지식인(知識人)을 좋아하며, 기득권(旣得權)을 축복(祝福)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基督敎)가 세상(世上) 함정(檻穽)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基督敎)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親舊)이지, 반드시 물질적 복(福)받은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만 친구(親舊)가 아닙니다.아-멘
복음송 1588장 *약한 나를 강하게*
☆...교만(驕慢)이 오면, 욕(辱)도 오거니와. 겸손(謙遜)한 자에게는 지혜(智惠)가 있느니라"(잠언11:2절)
매일 새벽(冬)4-5시 ✫ 주님께 도움의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회개와 범사에 감사하는 삶(살전517)
💖진리의 복음💖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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