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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勿忘草(이화구)
주천리 60년 경자생(쥐띠)들의 "우리들의 이야기"
어제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서울도 아침부터 비 내리는 일요일을 맞게 되었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러 고향 가는 길에 내리는 비가 달갑지 않지만 요즘같이 오랜 가뭄으로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시기에 내리는 비는 가뭄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논밭을 촉촉이 적혀주는 단비이기에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내린 비는 분명히 가뭄에 시름하는 농민들에 대지를 촉촉이 적혀주는 해갈의 단비이기에 사랑처럼 우리 고향 친구들의 마음도 적셔주었고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우리들에게 만들어 주었다.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그리워 달려와 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어제 담은 나의 소중한 인연, 주천리 친구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올려본다.
【아래 그림】나는 학창시절 전주로 열차 통학하던 통학생 출신답게 전주로 가는 고향열차를 타기 위하여 용산역으로 달려갔다. 열차통학생 출신이라 그런지 나는 아직도 열차만 보면 가슴이 설렌다.
【아래 그림】열차가 서대전 역에 섰을 때 잠시 Platform에 내려 내가 타고 가는 열차와 두 갈래로 뻗어있는 철길을 바라보니 고등학교 3학년 때 은사님께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시라면서 해설해 주신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생각났다.
1979년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인지 그 이후 이 시는 나의 애송시가 되었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6-1963)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And be one traveller, long I stood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uth;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아래 그림】나를 실은 열차는 익산역을 경유하여 전주역으로 향하여 달린다.
익산에서 전주 구간은 예전 고등학교시절에 내가 통학하던 노선이다. 이 구간을 달리는데 비 내리는 차창 밖으로 예전에 내가 열학통학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살던 마을이 보이길래 애뜻한 마음에 카메라 줌렌즈로 당겨보았다. 흘러버린 세월도 당길 수만 있다면 그 옛날로 한 번 당겨보고 싶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 ♪♬
【아래 그림】드디어 나를 실은 열차는 전주역에 도착하였다.
【아래 그림】전주역으로 나를 태우러 마중 나온 친구
【아래 그림】우리는 모임장소인 전주시내에 소재한 버섯전골집으로 갔다
【아래 그림】따뜻한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하는 주천리 친구들
【아래 그림】전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우리 친구들 중 생일을 맞이한 친구가 있어 축하 케이크까지 준비했다.
【아래 그림】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욱 예뻐지는 친구들
【아래 그림】함께하기로 했던 친구들 중 바쁜 일상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 지난 날 시냇가에 같이 놀던 친구는 ~ 냇물처럼 구름처럼 멀리 가고 없는데 ~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옛~친구 ~ ♪♬
【아래 그림】친구들의 건강을 위해 건배도 하고
♬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
【아래 그림】나도 멋진 친구와 함께 인증삿을 남기고
【아래 그림】예쁜 주천리 여자친구들과도 인증삿을 남기고
【아래 그림】언제나 내 마음 속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 고향 친구들
【아래 그림】사선대 운서정에서 바라본 관촌읍내
【아래 그림】사선대 운서정에서 바라본 우리들의 고향마을 주천리
주천리는 우리들에게 단순히 태어나고 자라난 곳을 떠나 우리를 현재의 자리까지 오게 한 정신적 지주였다.
【아래 그림】고향마을 주천리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 친구들 이런 게 수구초심(首丘初心)이고 모천회귀(母川回歸)다.
주천리(舟川)의 옛 이름은 “배 나들이”였다. 지금은 토사가 매립되어 물길이 낮아지고 교량을 가설하여 통행에 불편이 없으나 옛날에는 배로 강을 건너야 소재지를 왕래할 수 있어 “배 나들이”라 하였다.
【아래 그림】우리 사람들은 나이와 함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그래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여우도 죽을 때면 저 태어난 언덕 쪽으로 머리를 향한다 하지 않는가.
【아래 그림】네 명의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사람의 학발 신선들을 호위하여 사라졌다하여 이곳을 사선대라 하고 까마귀가 놀던 강을 오원강이라 불렀다 한다.
【아래 그림】주천리 출신의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사선대에 모였다.
주천리는 크게 웃뜸(윗마을)과 아랫뜸(아랫마을)으로 나뉘고, 아랫뜸은 다시 원당골, 뒷고샅, 앞고샅으로 나뉜다.
고개로는 원당골에서 횡산마을로 넘어가는 큰재와 원당골에서 농원마을로 넘어가는 작은재, 뒷고샅에서 농원방향으로 넘어가는 반재, 그리고 앞고샅에서 덕곡방향으로 넘어가는 무너미재가 있다. 큰재, 작은재, 반재, 무너미재 등 고개이름도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아래 그림】언제 우리가 이렇게 고향친구들과 함께 사선대에 올라와 볼 수 있겠는가.
우리네 인생살이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보니 많이 가진 친구나 많이 배운 친구나 출세를 많이 한 친구나 다 같지 않은가 싶다. 더 가지고, 더 배우고, 더 출세했다고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아래 그림】오늘은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세차게 불다보니 우리 친구들이 아침에 예쁘게 꽃단장한 머리가 바람이 흩날려서 어쩐다냐.
【아래 그림】나도 사선대에서 멋진 인증삿을 남기고
【아래 그림】스치고 지나가면 남이고, 마주치면 인연이 된다 했던가? 우리는 친구들과 마주쳐서 좋은 인연 아름다운 만남이 되었다.
【아래 그림】인연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있는 것 같다.
【아래 그림】우리 나이도 어느덧 인간사 세월의 연륜이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耳順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래 그림】세상사 아무리 고달파도 만나면 즐거운 고향 친구들
【아래 그림】언제나 그 모습 오염되지 않고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이 맑은 영혼을 가진 친구들
【아래 그림】시골 고향친구들 사이에는 특별한 말이 필요치 않다.
【아래 그림】구름도 쉬어가는 정자(亭子)라는 의미의 운서정(雲棲亭)
사선대는 높지도 낮지도 않으나 바로 아래 오원강이 흐르고 있어 쉽게 구름을 모을 수 있는 곳이다.
【아래 그림】사선대 가정문(嘉貞門)
가정문(嘉貞門)이란 의미는 저 문을 통하여 계단을 오르면 신선(神仙)처럼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관촌역은 현재는 여객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화물만 취급하고 있다.
【아래 그림】우리는 사선대를 구경하고 옥정호로 향하였다. 옥정호도 오랜 가뭄으로 저수량이 적다.
【아래 그림】우리 어릴 적에는 운암호라 불렀던 것 같다.
【아래 그림】오랜 가뭄에다 오늘따라 장맛비가 내려 "맑은 호수"라는 뜻의 옥정(玉井)호는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아래 그림】옥수수를 먹으며 비 내리는 옥정(玉井)호를 구경하고 있는 친구들.
【아래 그림】덧없이 흐르는 세월의 한가운데서 중심을 바로잡지 못한 체, 이리저리 세파에 흔들리면서 무엇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도 없이 육십이라는 인생길을 향하는 나 오늘따라 내 자신이 작게만 느껴진다.
【아래 그림】우리는 사선대와 옥정호 산책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위하여 다시 전주로 돌아왔다.
【아래 그림】저녁 메뉴는 빠가매운탕이다.
사람들은 몸이 허해져 쉽게 피로해지거나 입맛이 떨어질 때 민물매운탕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중에서도 빠가는 지방함량이 적어 다이어트에 좋은 민물고기이다.
【아래 그림】빠가매운탕에 소주 한 잔으로 우리들의 우정을 나누며
【아래 그림】고향마을 친구들과의 추억 속으로의 시간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전주역으로 왔다.
【아래 그림】서울로 돌아가는 친구들의 배웅하기 위하여 전주역으로 함께 온 친구들과 전주역 구내 커피숍에서
【아래 그림】늦은 밤 용산역에 도착함으로써 나의 분주했던 하루를 마친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언제나 그리움으로 맺히는 주천리 친구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파란 마음, 하얀 마음으로 함께 했던 순수한 고향의 정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운 나의 주천리 친구들아!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하다가, 친구들이 부르면 다시 한 번 일탈을 꿈꾸자.
주천리가 고향인 이화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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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두 여자 한분은 알겠습니다. 그녀하고 동창이였군요. 오셨으면 선배도 봐야제 동창생들만 보구 가신겨 섭하오.
숙자씨하고 친구셨네요.워요 그리고 문협에 큰도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