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오후의 예항
미시마 유키오의 『오후의 예항』은 1963년 9월 발행된 장편소설이다. 1960년대 초반은 시대적으로는 고도경제성장과 더불어 대중소비사회가 정착되던 시기였으며, 미시마 개인적으로는 1958년 결혼 후, 1962년 5월 2일 장남 히라오카 이이치로가 태어나 인생의 큰 변화를 겪은 시기이다. 이 시기 미시마의 관심사는 일본, 일본인, 그리고 아버지라고 볼 수 있는데, 『오후의 예항』은 시대적 흐름에 있어서도 개인적 상황에 있어서도 그 관심사가 여실히 드러난 소설이라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오후의 예항』이 발표되었던 1960년대의 아버지 표상과 소설 속의 아버지상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오후의 예항』에서 ‘아버지’가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1950년대 후반~196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무기력한 ‘아버지’ 표상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전후의 부정적 아버지상은 전전(戰前)의 가부장적 아버지상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후의 예항』에서 소년 그룹이 류지를 처형하는 것은 전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무기력한 아버지를 처형하는 것이자, 강한 아버지의 복권을 염원하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인정받고 있다. 도쿄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며 1948~49년 일본 대장성 금융국에서 일했다. 자전적 소설 <가면의 고백>으로 소설가의 길을 걸었고, <사랑의 목마름>, <금지된 색> 등 많은 작품을 썼다. 마지막 작품 <풍요의 바다>는 4권으로 된 역사 이야기로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좌익 봉기가 일어나거나 공산주의자들이 공격해올 경우 덴노를 보호하는데 이바지하려는 생각으로 약 80명의 학생들을 모아서 ‘다테노카이’라는 사병대를 조직했다. 1970년 4명의 다테노카이 추종자들과 함께 총감실을 점거했고, 전쟁과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 헌법을 뒤엎으라고 촉구하며 할복자살했다.
첫댓글 일본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자신을 죽이는 그 광폭함이 변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되어 성행을 하는 은혜가 있기를
죽고 사는건 오직 신의 권환임을 알게 하소서 억눌러 이기는 그 교만을 보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