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이미지의 유형학
최용호 /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교수
이미지 수사학이란 본래 롤랑 바르트가 <커뮤니케이션> 제 4호에 실은 그의 논문 제목이다. 무엇보다 이미지 수사학에 대한 서두를 바르트에서 시작한 이유는 원천으로의 회귀가 단순한 역사적 고찰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에 대한 탐구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문명’이란 표현은 이제 진부한 것처럼 들린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지의 산업’이란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문화가 상품이 되고 상품이 문화화되면서 우리는 인문학의 새로운 도전, ‘응용인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과제를 부여안게 된다. 이 글의 목적은 언어와 이미지의 유형학에 대한 간단한 성찰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학의 유용성은 조작 가능성에 있다. 인문학에서 사용하는 도구는 개념이다. 사회가 문화적으로 복잡하게 됨에 따라 이러한 개념적 도구에 대한 사회적, 산업적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우리가 바르트로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학 비평의 개념을 문화 분석에 최초로 적용한 학자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한마디로 매체의 문제이다.
문자와 이미지, 두 매체 사이의 관계
바르트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큰 틀, 다시 말해 구조적인 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책이 출현하고부터 텍스트와 이미지와의 관계는 흔한 것이 되었지만 구조적 관점에서 이 관계가 연구된 사례는 거의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이 인용 문구에서 언급된 ‘텍스트’는 문자로 쓰여진 언어를 가리킨다. 바르트는 여기서 문자와 이미지 두 매체 사이의 관계를 구조적 시각에서 다루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천명한다.
그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 관점에서 이 두 매체 간의 관계를 잘 알려진 대로 고정과 중계 두 유형으로 나눈다. 고정은 이미지의 다의성을 한정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는 이러한 역할을 광고사진이나 보도사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보도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설명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계는 언어와 이미지와의 상호적인 참조관계로 정의된다. 언어와 이미지 두 선수가 텍스트 경기장에서 계주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언어는 이미지에 바턴을 넘겨주고 다시 이미지는 언어에 바턴을 넘겨준다. 이러한 교대를 통해 텍스트 전체의 메시지가 해석되고 이해된다. 예컨대 만화나 영화에서 우리는 언어를 배제한 채 이미지만을 감상할 수 없으며 이미지를 배제한 채 언어만을 읽어낼 수 없다. 바르트가 제시한 이 두 구분은 사실 사진과 영화라고 하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미지의 문명’ 속에서 전통적인 매체인 말과 글의 역할을 재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그의 개념적인 재규정 속에 그의 언어중심주의적 사상을 간파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이와 같이 해서 이미지의 문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매우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쓰기와 말은 항상 정보적 구조로 가득찬 사항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전에 없이 글쓰기의 문명권에 있는 것이다. 사실상 오직 언어적 메시지의 존재만이 중요하다.” 바르트는 오늘날 이미지의 역할이 과대 포장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전에 없이 글쓰기의 문명권엷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바르트가 문자와 이미지와의 관계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 사실을 환기시켰다. 사실 바르트는 두 가지 유형이 아니라 세 가지 유형을 상정하고 있었다. 다음의 문구를 살펴보자. “현재의 관계 속에서 이미지는 파롤을 명확하게 하거나 실현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승화하고 비장하게 하거나 합리화 하는 것은 파롤이다. 예전에는 이미지가 텍스트를 삽화로 보여주었으나, 오늘날에는 텍스트가 이미지를 무겁게 만들며 이미지에 도덕, 문화, 상상력을 부담 지운다. 예전에는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축소가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이미지에서 텍스트로의 확대가 있다.” 예전과 오늘날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바르트는 이미지가 예전에 수행한 삽화로서의 기능을 언급한다. 삽화란 문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예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기능은 고정 기능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고정이 이미지 중심의 텍스트에서 글이 이미지의 다의성을 해소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삽화는 글 중심의 텍스트에 상상력을 불어 넣는 보충적 기능을 수행한다. 중계는 글과 이미지가 보다 역동적인 관계로 발전한 새로운 매체, 만화나 영화 덕분에 등장한 기능이다. 왜 바르트는 예전에 존재했던 삽화의 예시적 기능을 자신의 분류 체계 속에서 배제하였는가. 우리는 그의 언어중심주의를 충분히 의심해볼만한다. 고정이 언어에 절대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중계가 언어와 이미지에 동일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반면에 이처럼 삽화는 오히려 이미지에 발언권을 부여한다. 우리는 이러한 언어중심주의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와의 보다 활발한 상호작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바르트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그가 제안한 구조적 관점을 언어와 이미지와의 관계에 대한 구조적 관점을 견지하고자 한다.
차단과 상승의 기능
우리는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기능 외에 또 다른 두 개의 기능, 즉 차단과 상승의 기능을 추가하고자 한다. 고정과 삽화가 서로 상반되는 방향으로 진행하듯이 차단은 교대의 기능을 중단함으로써 작동한다. 즉 언어가 이미지의 의미작용을 차단하고 이미지가 언어의 의미작용을 차단하는 경우이다. 결과적으로 낯설게 하기의 효과가 발생한다. 초현실주의 작품 - 예컨대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에서처럼 - 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는 이러한 효과는 오늘날 종종 광고에도 적용된다. 침대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소개한 에이스 침대 광고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상승은 교대의 기능을 시적으로 고양시켜주는 작용을 가리킨다. 한 텍스트 안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각기 독립적으로 고유한 의미작용을 수행한다. 별도로 수행된 각각의 의미작용은 그러나 텍스트 전체 메시지의 의미를 고양시킨다. 마치 서로 다른 주파수의 두 소리가 어느 한 음역에서 우연히 만나 증폭되듯이 텍스트 전체의 의미가 상승효과를 산출한다. 바로 이러한 경우가 상승에 해당한다. 예컨대 시와 풍경을 한 폭의 그림 안에 넣은 시화가 상승의 경우에 속한다.
우리가 약술한 다섯 가지 유형 - 고정, 교대, 삽화, 차단, 상승 - 은 언어와 이미지의 상호관계를 조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개념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우리는 다매체적 텍스트 속에서 매체간의 복잡한 관계를 위의 구분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해 낼 수 있다. 주어진 텍스트 뭉치 속에서 어느 유형이 지배적인 가를 판단함으로써 우리는 텍스트의 커뮤니케이션의 전략을 진단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삽화적 기능을 강조한 광고는 매우 텍스트 중심적이고 이미지는 단지 예시적 기능만을 수행한다. 반면 카피를 참조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미지를 해독해 낼 수 없는 광고가 존재한다. 차단이나 상승의 전략을 사용하는 광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보다 더 추상적인 이미지 전략이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삽화적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예컨대 기업과 소비자와의 관계가 친밀하지 못하고 소통이 주로 인지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반면 고정이나 상승 등의 전략은 두 주체 간의 친밀하고 긴밀한 소통적 관계가 설정되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반면 고정이나 상승 등의 전략은 두 주체 간의 친밀하고 긴밀한 소통적 관계가 설정되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이미지의 수사학은 단지 문학비평의 관점을 문화연구로 확대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커뮤니케이션의 전략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자의 역할은 상아탑을 넘어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