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의식의 특성
나. 모순적 양면성2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하지만 이제는 눈 뜬 여성 자신이 남편에게만 의존하던 경제력을 스스로 쌓아올려 남편과 함께 버티는 가정의 두 기둥으로 당당히 수평 관계를 이루게 되었으니 가히 가상하다. 그러나 부부의 관계가 재래의 상하관계에서 수평관계로 바뀌었다고 남편과 아내의 역할마저 바뀌어서는 큰일이다. 가정주부의 직장 생활로 한 가정의 경제가 형성된다는 것은 기껍고 바람직한 일이나 만의 하나라도 아내나 어머니를 잃은 삭막한 가정으로 퇴락한다면 이는 오히려 안 하니만 못하다. 아내와 어머니가 돈벌이에만 넋이 빠져 집안을 팽개치고 돌보지 않는 사례를 여성들은 무엇보다 경계하고 가다듬어야 하리라.(p. 110) (굵게 강조 : 인용자)
- 구혜영, 「역할과 책임」 중에서 -
위 인용 예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구혜영은 이 수필에서 ‘요새 한국 여성은 향상되는 법적 지위에 힘입고 편리해진 가사노동에서도 풀려난 문화적 혜택으로 스스로의 고정 관념을 깨고 의식을 드높여 종래에는 가사나 육아에만 매달려 있던 중년의 가정주부까지도 의욕적으로 사회로 뛰쳐나와 직장인으로, 전문 직업인으로, 혹은 임금노력자로 능력껏 자신을 확대함으로써 삶의 보람도 얻고 경제력도 구축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는 데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자아를 신장시키려는 여성은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성역할이 따로 있으니 우선 자신의 역할을 잘 되새겨 보라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자아실현을 위한 사회적 토대가 마련된 것을 환영하면서도 작가는 아직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중도적 성향의 정체성 인식은 70년대 수필의 흐름을 답습하고 있다.
여성학자 이효재는 70년대 여성의 국민화를 제안했다. 여성은 가정에서 국민을 내조하고 국민을 양성하며 밖에서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효재는 또 “여성의 존재는 국가사회와의 관계에서 재인식되어야 하며, 여성으로서의 삶의 보람은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국민복리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데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논법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 국민과 시민 사이의 차이나 갈등에 대한 의식을 찾아 볼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을 내 가족으로 생각하고 염려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모성애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박완서의 초기 수필 즉 1970년대 발표된 수필에도 이런 논리가 등장한다. 박완서에게 ‘일’과 ‘자기 성정’의 관계는 특별하다. 생산노동이냐 재생산노동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에 대한 노력과 긍지가 일의 가치를 결정하며 자기 성취를 좌우한다. 주부와 여성 노동자의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끌어올리려고 하는 이러한 시도에 동원되는 것은 “근로야말로 모든 미덕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소금”이라는 이데올로기이며, 특히 주부의 경우에는 ‘사랑’과 ‘모성’이라는 이데올로기다.
여성소설가 박완서의 수필에서 볼 수 있듯이 70년대 여성수필에서는 가족과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격차와 불평등이 근로와 사랑과 자발성이란 이름으로 은폐되고 무마되는 경향이 강하다. 가족과 사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통해서만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이러한 논리는 이효재의 주장과 다름 아니다. 조경희와 전숙희 수필 속에서도 이런 논법이 발견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1970년대의 여성에 대한 여성의 담론에 내재해 있는 어떤 한계점을 볼 수 있다. 1970년대는 ‘민중문학’ 혹은 ‘노동문학’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인간주의나 소시민적 휴머니즘을 그 나름대로 조명하고 비인간화의 역사 현실을 탁월하게 해부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많은 눌린 자의 사건 속에 있는 여성의 고통과 소외현실’을 역사적 사건으로 포착하는 문학작품은 거의 없었다. ‘역사 속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사건의 내용을 누르는 자와 눌림받는 자의 사건으로 보편화시키는 시각이 없었다는 말이다. 여성소설가 고정희는 1970년대를 여성문학의 새로운 분기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탈여류문학‘의 면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