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선생의 ‘뇌룡정(雷龍亭)‘ 한시(漢詩)편 1.> 고영화(高永和)
뇌룡정(雷龍亭)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학문은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정자이며, 경남 문화재자료 129호로,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토동마을회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남명 선생이 55세 때인 을묘년(1555년)에 조정에서 단성현감(丹城縣監)의 벼슬을 내렸다. 이때 선생이 단성현감의 벼슬을 사양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이것을 ‘단성소’ 즉,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이다. 남명 선생이 단성소를 지은 곳은 ‘단성’이 아닌 합천군 삼가면 ‘뇌룡정’이라는 곳이다. 합천은 남명이 태어난 고장이면서 학문을 강론하던 뇌룡정이 있는 곳이다. 합천의 뇌룡정이 있었기 때문에 선생은 덕산 산천재에서 학문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남명 선생은 48세 되던 해(1548년) 2월 어머니 상을 마치고 삼가 토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30세 때부터 처가가 있는 김해 신어산 밑의 탄동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온 것이다. 이때 공부하러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아 뇌룡사(雷龍舍)를 지어 공부하는 곳으로 삼았다. 또한 뇌룡사 건너편에 계부당(鷄伏堂)을 지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고, 근처 절벽에는 선생이 노닐었던 영파대(暎波臺)가 있었다고 전한다. 남명이 공부하는 곳을 ‘뇌룡’이라고 지은 것은 어지러운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뇌룡(雷龍)은 장자(莊子) 재유(在宥)편의 ‘연묵이뇌성 시거이용현(淵默而雷聲 尸居而龍見)’에서 따온 말이다. ‘깊은 연못처럼 고요하다가 우뢰처럼 소리치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용처럼 나타난다.’는 뜻이다. 곧 뇌룡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덕을 갖춘 사람이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묵묵히 있어도 그 덕의 교화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 삼가의 뇌룡정에는 이 두 구절이 주련으로 걸려 후세 사람들에게 남명의 숨결을 전하고 있다. 남명이 강학하던 뇌룡사는 정유재란때 불에 탄 뒤 복원되지 못하고 1678년 합천군 봉산면 계산에 있었던 용암서원(龍巖書院) 부속건물인 뇌룡정으로 재건되었고 1758년과 1831년에 중건되었는데 1868년 서원 훼철령으로 없어졌다. 지금 건물은 1883년 허유 정재규 등 삼가의 유림들이 원래의 자리에 중건한 것이다.
1) 정후윤과 약속하고 뇌룡정에 모였는데, 마침 큰 눈이 내려 운을 뽑아 함께 짓는다[約鄭厚允會于雷龍亭 適大雪 拈韻共賦] / 허유(許愈 1833~1904)
曩飮無何(邨名)酒 예전에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서 술을 마셨는데
更賞雷龍雪 뇌룡정에 눈 내린 경치가 참 아름다웠다.
亂離四五載 사오년 동안 시끄럽고 어지러운 시기에
此遊誠奇絶 이곳에서의 유람은 참으로 기이하였다.
君才合經濟 그대의 재능은 경세제민에 합당하니
我懷思明發 나의 마음에서 여명이 밝아 오는듯하네.
誰知無極蘊 끝없이 쌓아둔 학식을 그 누가 알리오
先自礪名節 먼저 스스로 명예와 절개를 갈고 닦아야 한다.
悠悠千載下 아득히 천년 세월 지나온 뒤에도
起視寒江月 일어나보니 차가운 강물에 달이 떠 있네.
(時讀寒洲集) 때마다 한주집[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시문집]을 읽었다.
[주]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응제왕(應帝王)·지북유(知北遊) 등 여러 곳에 나오는 말이다.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말로,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행해질 때 도래하는, 생사가 없고 시비가 없으며 지식도, 마음도, 하는 것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 또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번거로운 일이 없는 허무 자연의 낙토(樂土)를 이르는 말.
2) 뇌룡정[雷龍亭] / 임진부(林眞怤 1586∼1658)
塊坐空堂已一旬 빈 집에 포로괴좌(抱爐塊坐)한 지가 열흘이 지났는데
只憑書籍會精神 오직 서적에 의지하며 온통 정신을 쏟았다.
碧天雲盡仍明月 푸른 하늘에 구름 걷히고 밝은 달이 조용히 비추니
沙面波心絶點塵 모래땅의 물결 한가운데 수면에는 티끌 한 점 없어라.
[주] 포로괴좌(抱爐塊坐) : 겨울 생활을 묘사하는 말,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방안에 화로를 껴안고 흙덩이처럼 앉아 있다는 뜻이다.
3) 뇌룡정을 지나며[過雷龍亭]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澄江隱映瀉寒潭 맑은 강물 은은하게 비치며 차가운 연못으로 쏟아지고
遠樹冥濛合翠嵐 멀리 보이는 나무들은 어둑하고 푸른 산기운 머금었네
看取先生留氣象 남명 선생이 남긴 기상을 살펴보니
晴峰無數出東南 맑게 갠 봉우리 수없이 동남쪽에 솟아있네
4) 뇌룡정[雷龍亭] / 하용제(河龍濟 1854~1919)
河山元氣作斯亭 산하의 원기(元氣)를 이 정자가 만들었으니
咫尺欣瞻我馬停 나는 말을 멈추고 지척에서 흐뭇하게 바라본다.
魂夢他時如可作 훗날 꿈속에서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神明舍事質寧丁 천지신명께 일까지 제쳐두겠노라 정녕 맹세하리다.
5) 뇌룡정[雷龍亭] 최원칙(숙민 1837~1905)에 차운[次崔元則(琡民)] 二絶 / 허유(許愈 1833~1904).
허유 선생은 경남 삼가현 오도리에서 태어난 조선말기의 문신으로, 한말의 성리학자(性理學者)이며 자는 퇴이(退而)이고, 호는 남녀(南黎)·후산(后山)이다. 다음 한시는 영남의 유학자 최숙민이, 그가 존경하던 여러 인물들의 자취를 찾아다니던 중에, 한주 이진상의 학파인 허유와 더불어 뇌룡정에서 만나 서로 학문을 나누며 암울한 조국의 미래를 걱정했는데, 그때 지은 허유의 시편이다.
我馬玄黃子佩鮮 내 말은 피곤해서 누렇게 변했으나 그대의 패옥이 선명토록
雷龍追逐不期然 뇌룡정을 왕래하며 서로 자연스레 만났구려.
白頭相勉知何語 백발의 두 늙은이가 어떤 말도 서로 알아듣고 노력하는데
好把淵冰且進前 사이좋게 손을 잡고 연빙(淵冰)하듯 전진해 나아갔다.
吾人爲學最難心 우리는 가장 근심스런 마음으로 학문을 닦으며 생각하길,
方寸誰能濟陸沉 좁은 우리나라의 더러워진 땅을 누가 구제할 수 있으랴.
山海眞詮秖在此 다만 여기 뇌룡정에서 국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神明舍裏共推尋 신명스런 집에서 함께 생각하며 헤아렸다.
[주] 연빙(淵冰) : 임금이 선(善)을 좇고 악(惡)을 멀리하면서 항상 잘못될까 두려워하고 삼가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민(小旻)에,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하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 한 데서 온 말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뇌룡정(雷龍亭)‘ 한시(漢詩)편 2.> 경남 합천군 / 고영화(高永和)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본관 창녕(昌寧), 자 건중(楗仲), 호 남명(南冥), 시호 문정(文貞), 김우옹(金宇) ·곽재우(郭再祐)는 그의 문인이자 외손녀 사위이다. 삼가현(三嘉縣 합천) 토골(兎洞)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20대 중반까지는 대체로 서울에 살면서 성수침(成守琛) ·성운(成運) 등과 교제하며 학문에 열중하였고, 25세 때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읽고 깨달은 바 있어 이때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30세 때 처가가 있는 김해 탄동(炭洞)으로 이사하여 산해정(山海亭)을 짖고 살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1538년 유일(遺逸)로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임명되었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45세 때 고향 삼가현에 돌아온 후 계복당(鷄伏堂)과 뇌룡정(雷龍亭)을 지어 살면서 제자들 교육에도 힘썼다. 1561년 지리산 기슭 진주 덕천동[德山洞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거하여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강학(講學)에 힘썼다. 1566년 상서원 판관(尙瑞院判官)을 제수받고 왕을 만나 학문의 방법과 정치의 도리에 대해 논하고 돌아왔다. 1567년 즉위한 선조가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1568년에는 올바른 정치의 도리를 논한 상소문 〈무진봉사(戊辰封事)〉를 올렸는데, 여기에서 논한 ‘서리망국론(胥吏亡國論)’은 당시 서리의 폐단을 극렬히 지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명은 신명사도(神明舍圖)를 통한 끊임없는 수양으로 도덕적 자아를 발현하고, 행동으로 실천해 정의를 구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주의 중심에 서고자 했다. 마음을 올바로 세울 때 비로소 자신이 우주와 하나로 통한다고 본 것이다. ‘신명사도’는 천지신명, 즉 절대자가 사는 집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을 절대자(자연섭리)와 동일시 해 ‘마음이 머무는 집’으로 풀이하면 이해가 쉽다. 내 안의 작은 우주가 곧 천지만물의 섭리와 다를 게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주인장을 ‘태일군’이라 칭했다. 태일군은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순수한 마음 자체’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표현했다. 마음의 작용을 나라 다스리는 일과 동일시했다. 사람은 안으로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욕심과 싸워 이겨야 하고, 밖으로는 세상만사 모든 유혹과 죄악을 물리쳐야 비로소 ‘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저서에 문집 《남명집》과 그가 독서 중 차기(箚記) 형식으로 남긴 《학기유편(學記類編)》이 있고, 작품으로 《남명가》 《권선지로가(勸善指路歌)》 등이 있다.
6) 뇌룡정우설[䨓龍亭遇雪] / 정재규(鄭載圭 1843∼1911)
天憐吾輩遊 하늘이 우리를 어여삐 여겨 노닐게 했는데
故雨一夜雪 비가 한밤중에 눈이 되어 내린다.
大地墨潑雲 대지에 먹물이 번진 듯 구름이 덮더니
壓盡塵埃絶 먼지 티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燈深法語細 등불이 짙어가니 법어만 장황하고
酒煖豪氣發 따뜻한 술에 호기만 생겨나네.
落落亭畔松 뜻이 높고 큰 정자의 소나무 숲,
共看歲寒節 세한의 절개를 공히 보노라.
俛仰步中庭 정원을 걸으며 아래 위를 굽어보니
萬古留明月 만고의 밝은 달만 머물러 있네.
7) 뇌룡정우설[䨓龍亭遇雪] / 정면규(鄭冕圭 1850-1916)
風雨三年客 삼년동안 비바람에 시달린 나그네
䨓龍一夜雪 한밤중에 뇌룡정에 눈이 내리는데
此時有此遊 때마침 여기에서 노닐게 되어
亦可謂奇絶 가위 기묘한 경치를 보게 되었다.
展讀洲上文 물가에서 책을 펼쳐 읽었는데
令人曠感發 사람으로 하여금 탁 트인 감동이 일어나게 했다.
氣說走八方 기설(氣說)이 팔방으로 나아가게 하나
無人識眞訣 참되고 깊은 도리를 아는 사람이 없어
徘徊心正苦 마음이 진정 괴로워 배회하노니
爲看寒天月 차가운 하늘에 뜬 달만 보이네
8) 뇌룡정[雷龍亭] / 허유(許愈 1833~1904)
三山爭道德星明 모두들 세 개의 산과 별빛의 덕성을 언급하면서
爲是雷龍特地成 여기 뇌룡정은 특별한 대지를 구비한 곳이라 한다.
陋巷當年餘舊址 그해 누추한 마을에 옛 터가 남아있어
滄洲今日拜先生 금일 바닷가에서 와 선생을 배향한다.
庭前老木干霄意 정원 앞의 늙은 나무 하늘을 치솟을 뜻이 있을 테고
軒外長江入海情 난간 너머 긴 강은 바다로 들어가는 정이로다.
留與鄕人謀久遠 고향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남겨주려 모색한
洪鍾元有未撞聲 홍종원이 소리 소문없이 기여했다하네.
9) 뇌룡정 낙성에 차운[次雷龍亭落成韻] / 김인섭(金麟燮 1827∼1903)
冥翁大道日星明 남명 선생의 올바른 도리는 해와 별처럼 밝았는데
喜此遺亭取次成 남겨준 뇌룡정에 차례로 완성했으니 참으로 기쁘네.
浩氣乾坤充可塞 하늘땅의 호연한 기운이 빙 둘러 가득하고
高風山海凜還生 남명의 높은 기풍이 환생한 듯 늠름하다.
窮推事物知終始 시종일관 사물의 원리를 궁구하게 추구하였고
洞見身心達性情 심신을 닦아 꿰뚫어 보는 성정에 도달하였다.
遐想尸居淵默處 깊은 고요 속에서 시동처럼 있으면서 멀리 내다보았으니
却看龍見與雷聲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나타난 용을 보는 듯 했다네.
[주] 연묵이뇌성 시거이용현(淵默而雷聲 尸居而龍見) : 장자(莊子) 재유(在宥)편에 나오는 말로, ‘깊은 연못처럼 고요하다가 우뢰처럼 소리치고,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용처럼 나타난다.’뜻이다. 곧 뇌룡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덕을 갖춘 사람이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묵묵히 있어도 그 덕의 교화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