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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2023년 2월 6일에 발생한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지역에 걸쳐진 큰 지진으로 2월 18일 어제까지 사망자만 4만 5,000명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젠 2주일이 넘어서 거의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간간이 생존자에 대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튀르키예에 강진이 덮친 지 11일이 지난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본 하타이주의 데프네구 한 아파트 건물 잔해에서 ‘하칸 야시노글루’라는 40대 남성이 278시간 만에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비슷한 피해를 본 카라만마라슈주의 한 아파트 잔해 속에서 열 일곱 살인 알레이나 올메즈가 지진 발생 248시간 만에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청소년인 알레이나를 구조했던 구조대는 248시간 동안 무너진 건물더미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고 살아있는 고양이도 발견해서 구조했습니다. 그 바로 전 날 하타이주에서는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더미에서 13세의 소년이 매몰된 지 229시간 만에 구조된 일도 있었습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속에서 230시간, 250시간, 280시간을 버텨낸 생존자들의 극적 구조소식은 정말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자 구조에 대한 소식보다 사망한 시신 발굴 소식이 더 많이 전해지면서 총 4만 5천명의 사망확인자 시신이 수습되었습니다. 재해 발생 2주를 넘기면서 이제 구조대는 구조작업보다는 시신수습과 부상자 치료에 대한 작업으로 구조활동의 양상을 바꾸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가족들은 실종된 가족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자신들이 믿는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하루에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이슬람성지 메카를 향해 절하며 기도하도록 되어 있는 이슬람식 기도 때에 그들이 믿는 알라신에게 가족을 돌려 보내달라며 기도한다고 합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전 국민이 알라를 신으로 믿고 모하메드를 최후의 선지자로 믿는 이슬람교를 전체 국민이 신봉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지금 지진이후의 이 재난에 대해 국가 전체가 이런 식의 기도를 하며 국가재건과 생존자의 복귀를 알라신에게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적으로 이제는 생존자가 발견되기 힘든 때가 되었지만 그래도 기적과 같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생존자를 찾으려는 구조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현지 방송은 현지 상황을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하는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상황을 머리에 되새기며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볼 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우리를 기다리시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신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아모스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멸망과 재앙속에서 이제는 하나님앞으로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그 심정이 아모스서를 보며 느껴집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지금 죽음의 위험, 죽음의 상황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고 기다리시며 하나님께 돌아가서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과정 첫째는 백성의 잘못을 가르쳐주십니다.
아모스 4장 1절입니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들을 지적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꼬이고 힘들어지고 나라의 형편이 어려워지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신다면 우리의 삶속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 하나님앞에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분명히 죄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단 가난한 사람들에게 악행을 행하며 비열하게 모든 재산을 빼앗는 행위를 스스름없이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아모스 4장 1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열하게 행했는 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모스는 ‘바산의 암소’를 빗대어 쾌락과 탐닉에 빠진 당시 이스라엘의 부유층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산’은 요단 동편 길르앗 지방 북쪽에 위치한 고지대이지만 비옥해서 풀이 잘 자라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는 소나 양을 방목하며 키우는 유목민족이 아직도 그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나 양을 키우기 좋은 곳에서 자라고 있는 암소 즉 ‘바산의 암소’는 무엇을 뜻할까요? ‘바산의 암소들’은 살이 토실토실 올라 정말 보기 좋게 살이 찐 소들입니다. ‘암소’라고 했으니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 될 듯합니다. 이 단어의 1차적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아마 사치와 향락에 빠진 북이스라엘 고위 관리의 아내와 딸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온갖 세상적 쾌락에 빠져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사마리아 귀부인들이 1차적인 의미일 것입니다. 재산 불리기를 좋아하며 온갖 사치를 좋아하고 쾌락에 빠져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며 살아가는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 ‘바산의 암소들’입니다. 그래서 1차적인 의미로 이스라엘의 귀부인 여성을 뜻하겠지만 결국 그 당시 쾌락과 향락에 빠져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다 빼앗은 왕과 귀족들 지역의 권세가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부유층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바산의 암소들’은 그 시대의 부유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의 타락을 빗댄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귀족들, 이스라엘 부자들의 행위는 마치 바산의 암소들이 풀을 뜯을 때는 오로지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몰두한 모습입니다. 그들은 남을 배려하거나 돌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날마다 값비싼 물건과 호화로운 음식으로 성대한 잔치를 벌이면서도 문 앞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가난한 백성들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구제나 자선은커녕 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여 갈취한 권세자에게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고 말하며 치부하며 모은 재산들로 잔치를 베풀어 자신들의 쾌락을 해소하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 사람, 사마리아 사람들은 정말 ‘바산의 암소들’처럼 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고 압제하고 치부한 재산으로 오로지 그들만 호의호식했습니다. 사마리아의 여인들도 남편에게 ‘술을 가져오라’, ‘우리로 마시게 하라’며 날마다 흥청망청했고 착취당한 가난한 자들은 굶주려 더욱 시들어 갔습니다. ‘바산의 암소들’같은 이스라엘의 부유층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포하시기 전 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한 원인, 즉 어려움을 당할 이유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아모스 4장 2절 하반절을 한 번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지금까지는 살진 암소처럼 오로지 자기의 배만 불리며 호사를 누렸지만 곧 때가 이르면 그들이 모두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들처럼 ‘갈고리로 끌어가실 것’이라고 합니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처럼 꼼짝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느 시대나 주변의 어려운 자,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경멸하며 무시하고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당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이유, 이스라엘의 심판을 받을 이유를 분명히 가르쳐주십니다. 그런데 이들의 죄가 그냥 사치, 향락 ,재물에 대한 욕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어쩌면 이들은 책망이 아니라 칭찬받을 행위를 하는 듯 기록되어 있습니다. 4절과 5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이들은 “아침마다 제사”를 드립니다. “3일마다 십일조를 철저하게 계산해서 바칩니다”. 제사의 양식에 따라 “수은제사, 낙헌제사” 등을 드립니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을 그들은 기뻐하고 있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이 오히려 잘못되었다는 키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모스 4장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분명 4장 4절에서 각종 희생제물과 십일조를 드리며 수은제, 낙헌제 제사를 잘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죄를 먼저 지적하십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형식주의에 빠져 진정한 예배가 아닌 쇼같은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각종 제사의 형식대로 제사를 드리면 뭐합니까? 평소에 살아가며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는 행위란 행위는 다 한다면 주변의 사람 입에서 “저런 사람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하나님 못믿겠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각종 예배를 잘 드린다고 말하지만 평소의 생활에서 악한 말과 행동이 나온다면 이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시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하며 삼일마다 모든 돈을 철저하게 구별해서 십일조생활하고 절기 때마다 절기에 맞는 예배를 드리며 신실한 예배자인척 살아가도 결국 하나님앞에 진실한 신앙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오늘 본문에서 아모스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심령의 죄를 고백해야 할 자리에 보여주기식 제사만 드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발견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과연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는 삶,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이스라엘백성이 받은 책망, 이스라엘백성이 심판받을 이유는 하나님앞에 종교생활의 형식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참 신앙인으로서의 삶, 참 신앙인으로서의 말과 행동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앞에 칭찬받고 인정받을 삶이 되려면 내면에서부터 우러나는 진정한 신앙인의 말과 행동이 나오고 우리의 삶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받으실 진정성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신실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앞에 바로 서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과정 둘째는 깨닫길 기대하며 징벌적 재앙을 주십니다.
아모스 4장 9절입니다.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잘못에 대한 징벌을 예언하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어쩔 수 없이 죄에 대한 벌은 내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아모스서를 통해 계속 들어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재앙’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은 팔레스타인 동쪽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을 뜻합니다. 원래 시기적으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것이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기에 엄청난 재앙이 되었던 것입니다. ‘깜부기 재앙’은 동쪽에서 부는 바람에 의해 벼 이삭이 까맣게 타버리는 현상인데 일명 ‘흑수병’이라고 일컬어지는 재앙이라고 합니다. 이 또한 평소에도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규모가 이전과는 확연하게 차이나는 엄청난 일이기에 재앙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예 없었던 일을 재앙으로 쓰시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어려운 일들이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으로 다가오도록 만드시면서 재앙이 되도록 하시기도 합니다. 이번에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일어난 지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튀르키예와 시리아에는 이번 지진과 비슷한 지진이 종종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구과학적 분석으로는 이번 지진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땅 아래에 있는 움직이는 지질덩어리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 아라비아판, 그리고 아나톨리아판 등 총 4개의 판이 튀르키예 부근에서 충돌했고 이 충돌로 생긴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지진이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규모 7.8의 이번 지진으로 찢어진 땅의 길이가 20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경상도쪽으로 따지면 서울에서 구미정도, 호남선으로 따지면 서울에서 전주정도까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약 그 정도의 거리의 땅이 폭삭 주저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이 가십니까? 이렇게 강력한 지진의 진동은 진앙에서 7400km 떨어진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2월 6일 월요일 오전 10시 28분, 지진이 난 지 11분이 지난 시각에 백령도 지진계를 포함하여 강화, 연천, 덕적도 등 전국 282곳의 지진계가 갑자기 요동치면서 충격파를 감지한 장면이 TV뉴스에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엄청난 지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에 따르면 이런 지진이 이전에도 수시로 튀르키예 지역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1939년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 동부를 강타했고 그로부터 3년 뒤인 1942년에는 규모 7.0, 1943년과 1944년에는 규모 7.5와 7.6, 1957년과 1967년에는 규모 7.1과 7.3의 강진이 단층을 따라 계속 서진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에는 이스탄불 코앞인 이즈미트에서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지진이 엄청난 재산피해, 인명피해가 일어나서 그렇지 이전에도 그런 지진이 계속 있었는데 이런 지진이 엄청난 재난이 되었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조만간 다음 강진이 인구 1천5백만 명의 유서 깊은 대도시 이스탄불에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이스탄불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동시에 중요하게 여기는 성지중의 성지입니다. 옛날 이름은 콘스탄티노플, 지금은 이스탄불 정말 고대 기독교의 성지가 지금은 이슬람의 중심도시가 되어 있는 땅입니다. 이런 땅까지 이제 큰 재앙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지진전문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4장 6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 아모스는 세상의 모든 재난에 하나님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하며 이스라엘이 처한 재난 상황을 나열합니다. 지금 읽은 6절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양식의 부족하게 되는 재앙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7, 8절에서는 추수할 시기에 약간의 비가 내려야 하지만 지역마다 극단적 강수차이가 일어나 추수할 수 있는 곳과 아예 추수를 망친 곳이 생기는 재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접한 지역지만 극단적 강수차이를 보여주며 정말 농사하는 일도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이뤄지는 것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이런 극단적 강수량의 차이로 인해 물이 넉넉한 성이 있는가 하면 마실 물도 부족해서 사람들이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곡식이 마르는 재앙, 깜부기재앙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절에서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전염병이 찾아와서 사람들이 죽고 전쟁이 일어나 젊은이들이 죽고 재산이 탈취당한다고 했습니다. 11절에서는 이젠 삶의 터전인 성이 무너지고 주거지역이 사라지게 되는 재앙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재앙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런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아모스 4장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가 오늘 살펴보고 있는 아모스 4장의 6절부터 11절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재앙을 주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6절 하반절, 8절 하반절, 9절 하반절, 10절 하반절, 11절 하반절을 여러분 눈으로 한 번 살펴보십시오. 동일하게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런 재앙을 보여줘도 이스라엘백성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치 출애굽기에 기록된 내용, 출애굽 때 바로왕에게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을 보여주며 책망하는데 그럼에도 돌이키지 않는 바로의 모습이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니다. 10가지 재앙을 경험하며 최종적으로 장자죽음의 재앙이후에 회개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듯 하지만 결국 다시 이스라엘백성을 쫓아가며 회개하지 않는 바로와 바로의 군대들이 몰살당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 이스라엘백성이 돌아오지 않음을 한탄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원하며 깨달으라고 든 매로써 재앙을 주셨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깨달음이 없습니다. 돌이킴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만나시는 은혜를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이런 재앙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대한 갈망이 없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하나님을 찾는 영혼들이 없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찾지 않은 죄를 가지고 살아가며 하나님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언된 재앙을 보면 양식과 물을 통한 재앙이 있었습니다. 이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은 이스라엘이 양식이 없어 배고프고 물이 없어 목마를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주십니다. 분명 이스라엘은 배고픔과 목마름을 통해 육신적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배고픔, 이런 목마름을 통해 이스라엘이 깨달아야할 것은 육적인 배고품, 육적인 갈증이 아니라 신령한 배고픔, 신령한 목마름을 깨달아야했습니다.
아모스 8장 11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영적 안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고통, 환란, 위기의 순간에 정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셨습니까? 경제적 위기가 찾아오고 물가가 상승하고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분위기가 찾아올 때 저와 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연재해와 온갖 불안한 요소가 찾아올 때 저와 여러분은 이 상황의 해결책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허락하시는 여러 재앙속에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 지를 깨닫고 하나님에게 돌아가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과정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모스 4장 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통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고 아모스의 입으로 말씀하십니다. 아모스가 선포하는 재앙의 이유, 재앙의 내용을 통해 결국 이스라엘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에서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일단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재앙을 주셨다는 사실을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일들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선포하십니다. ‘산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고 뜻을 보이시며 아침에도 어둡게 만드시고 높은 땅을 순식간에 낮은 땅으로 만드실 수 있는 분’, 그 분이 바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만나게 될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 온 지구와 우주공간까지 통치하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 이 땅의 모든 인생, 사람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신실함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깨닫도록 흉년과 가뭄, 병충해, 전염병과 전쟁을 허락하십니다. 결국 흉년과 가뭄, 병충해, 전염병, 전쟁을 통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있을 때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하나님앞에 무릎 꿇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 만나러 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참으시고 인내하시며 우리가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예레미야 29장 11~13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고 선포하시며 결국 우리가 세상에서 반드시 회개하며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거듭난 사람, 하나님을 만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경험하고 변화된 사람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주실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을 향한 뜨거움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이고 그 심령으로 우리의 말과 행동, 삶의 모습도 변화시켜 가실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므로 자기 안에 증거가 있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 증거를 가진 성도들은 장차 능력과 큰 영광으로 다시 오시는 재림하실 구원자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며 만군의 여호와 임재앞에서 무릎 꿇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우리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희생,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앞에 죄사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힘입어 깨끗하게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정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며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통치하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름앞에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우리의 죄악을 고백하며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다리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앞에 우리를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요즘 현실세계에 인공지능 A.I.라는 단어가 많이 쓰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관련 학설중에 ‘모라벡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잘하는 일은 기계가 어렵고 기계가 잘하는 일은 인간이 하기 어렵다”라는 말을 카네기 멜론 대학교 교수 한스 모라벡이 했는데요. 이것을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라고 합니다. 모라벡교수는 ‘지능 검사나 체스에서 성인 수준의 지능을 발휘하는 컴퓨터를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지각이나 이동 능력 면에서 한 살짜리 아기 정도의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만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라고 했습니다. 이 모라벡의 역설이 의미하는 바는 “컴퓨터가 쉽게 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어렵고 인간이 어려워하는 것이 컴퓨터에게는 쉽다”는 것입니다. 수학적 계산, 논리 분석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운동과 감각 능력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따라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인간 고유의 감정과 견고한 운동능력, 상대의 느낌을 근거한 가치판단 능력은 어떤 컴퓨터로 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인간존중이라는 교감이 인공지능이 가능할까요? 특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고유 영역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것을 인공지능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어떤 인공지능 컴퓨터가 나와도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진정한 예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예배는 인간의 특권이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고 하나님과 소통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며 진실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형식적인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참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이스라엘이 그 특권, 그 영광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빠져 세상적 쾌락을 즐기며 하나님을 외면하며 형식적으로만 신앙인인척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책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의 모습이 혹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 척하며 형식적으로는 정말 예배시간을 잘 지키고 예배시간 헌금 잘 드리고 각종 절기때 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여줘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언행이 나타나지 않는 그런 삶은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나는 온갖 현상들, 지금 우리 사회와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온갖 재앙들을 보며 저와 여러분은 어떤 감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정말 마지막 때 우리가 하나님앞에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진실된 말과 행동을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진정성을 가지고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든 삶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기를 기대하실 때 우리의 삶에서 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