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엿장수가 오면 아이들은 처음 보는 엿장수에게 어리둥절한다.
생전 처음 보는 엿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지혜로운 엿장수는
엿을 하나 뚝 잘라 아이들의 입에 넣어 준다.
달콤하고 사르르 녹는 그맛이 놀랍다.
세상에 이런 달콤하고 맛난 것이 있네
아저씨, 이게 뭐예요.
이건 엿이란다.
우와 맛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엿을 살 수 있어요?
응! 집에 있는 쇠붙이를 가져오면 되!
그러면 아이들은 냄비뚜껑 솥두껑 다들고 나온다.
저녁에 엄마가 밥을 지으려고 보면
솥두껑이 없다.
얘, 솥두껑 못 봤어.
응, 그것 엿사먹었는데요.
아 이놈아 그게 어떤 것인데, 엿을 사먹어
한바탕 난리난 동네의 풍경을 생각해 볼수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한번 맛본다면
이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될 것이다.
하늘을 다녀온 바울은
그 놀라움과 신비로움을 묘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이전에 자기가 추구하던 재물과 명예와 쾌락들을
하늘과 비교하면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 다고 고백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땅에서 하늘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인가?
죽지 않고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 있고 말고,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일이다.
감사는 천국을 경험하는 일이다.
가졌다고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감사할 때 행복하고
감사하는 만큼 행복하다.
하수는 감사할 만한 일에도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한다.
날마다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이 일어나도
불평과 원망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수는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감사를
나쁜 일이 있을 때는 불평한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의 고수는
슬픈 일에도 나쁜 일에도
평범한 일상에도 감사하는 법을 안다.
고난이야 말로 축복의 또 다른 이름임을
알기에
시련의 비바람앞에서도 오히려 꿋꿋하다.
감사하는 것,
그것은 천국을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 천국을 맛볼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첫사랑의 아름다움을
되돌려주랴!
어떤 시인은 노래를 했다.
첫사랑의 달콤함이 기억나는가?
몇날 몇일 설레이게 했던 그 달콤한 추억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 아닌 원칙이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것이 사랑이다.
상대의 기쁨속에서 더 큰 기쁨을 얻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생각해줌이다.
사랑은 배려이다.
사랑은 친절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사랑은 미소이다.
그 사랑속에서 우리는 천국을 맛본다.
왜냐하면 그 천국은 사랑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천국을 맛보려면,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봉사를 해야한다.
남들보다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 같은데
남들보다 더 높아지면 행복할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낮아짐으로
오히려 자신을 줌으로
우리는 신비로운 하늘의 기쁨을 얻는다.
당신은 왜 오늘을 살고 있으며 -안병욱
왜 내일도 살기를 원하는가
당신을 사랑하고
또 당신을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있어서
내일도 그를 보고 싶고
그와 함께 있고 싶고
그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일 외에
우리가 살아야 할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https://youtu.be/CUSDzE-6eNw
셋째는 봉사, 선행을 행하는 것이다.
착한 일을 하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본질상 선(善)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처럼 우리에게도 선행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역량-높은 선의 잠재력-이 있기에, 우리는 자연히 선행에 기쁨을 느낀다. 우리가 그 선의 잠재력을 실행에 옮길 때마다 하나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네 모습이다.”
그 웃음과 말씀이 우리에게는 자신의 존재 및 행위에 대한 내면의 인정으로 느껴진다.
-빌 하이벨스의 ‘인생경영’ 중에서-
빛이라 칭함을 받은 우리 안에는 착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만날 때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외면치 마십시오. 당신을 통해 어둠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빛이 임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사들도 항상 남의 행복을 위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이 저들의 기쁨이다. 품격과 계급이 열등한 가련한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은 이기심이 있는 자들이 비천한 봉사로 여기는 바이나 그것이 죄가 없는 천사들의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사랑의 정신은 온 하늘에 충만한 정신이니 그것이 곧 하늘의 행복의 요소이다. 이 정신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가져야 할 정신이요, 또 이 일은 그들이 하여야 할 일이다. ”(정로, 77)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 속에 있으면 마치 좋은 향기 같아서 그것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랑의 거룩한 감화는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정신은 마치 사막 가운데 있는 샘과 같이 흘러서 모든 사람을 시원케 할 뿐 아니라 죽어가는 자들에게 생명수를 마시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만든다.”(정로, 77)
https://youtu.be/2ZXyp9a4DWU?list=PLWP5B6z6O6rdtEjfIhN_JpdpFpulMtQcK
https://youtu.be/2ZXyp9a4DWU?list=PLWP5B6z6O6rdtEjfIhN_JpdpFpulMtQcK
https://youtu.be/1ulaaIQ1dgw
https://youtu.be/6uUumsl3Svo?list=PLx0S-BH6AEXhqALYArUmxpp3cF0xyjVIj
https://youtu.be/cSBMhC6i-fQ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사랑의 율법은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을 위해 몸과 마음과 목숨을 다하는 헌신적인 봉사를 하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봉사는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도 큰 축복을 가져다 준다. 이타적인 정신은 모든 참된 발달의 기초이다. 이타적인 봉사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재능이 최대한으로 계발된다. 이러한 일이 계속될 때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교육,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