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357호 나를 다스리면 못 이룰 것이 없다 (잠16:32)
투계(鬪鷄)를 몹시 좋아하는 어느 왕이 당시 최고의 투계 사육사에게 최고의 투계를 키워내라고 명했습니다. 일을 맡긴 지 열흘이 지나자 왕이 사육사를 불러 물었습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또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작은 자극에도 벼슬을 세워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고 왕이 묻자 사육자는 대답했습니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목계가 되었습니다.”
‘목계(木鷄)’란 나무로 만든 닭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의 능력을 일컬을 때 쓰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대그룹의 총수로 지목되면서 부친에게 ‘목계가 되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말이기도 합니다. 싸움닭 중에 가장 으뜸은 상대 싸움닭이 달려들면 벼슬과 털을 다 세우고 대항하는 닭이 아니라 웬만한 닭이 달려들어도 나무로 만든 닭처럼 무반응하는 닭이듯, 잔바람이나 풍랑에 출렁이는 쪽배가 되지 말고 폭풍 속에서도 끄떡없는 항공모함같이 큰 자가 되라는 것을 교육받은 것입니다. 그 교육을 받은 그는 지금 기업을 잘 이끌어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지요. 왜냐면 세상에서 가장 싸우기 힘든 적이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기는 자가 진정한 강자인 것입니다. 자승자강(自勝者强)이 그런 말입니다. ‘스스로를 이기는 자가 진정으로 강한 자’라는 뜻으로, 남을 이기기보다 자기 내면의 욕망, 분노, 한계를 다스리는 데서 강함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도 이와 똑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분노는 단순히 감정이 격해진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분노는 꼭 다투거나 사고를 치기 때문에 무서운 겁니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29:22).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살인자인 가인, 그가 그런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가지게 된 원인이 바로 분노였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안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에 가인이 분이 가득하여 분을 이기지 못하고 아벨을 죽였습니다(창4:4~8). 그 결과는요? 당연히 저주지요(창4:11~12).
사울은 사람들이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칭송하며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잃고 다윗을 죽이려 혈안이 되어 허구한 날 다윗을 쫓습니다. 그 결과요? 사울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함께 비명횡사하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습니다(삼상31:1~6).
분노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34:15),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찌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겔21:4~5).
여러분, 분노는 활화산과 같습니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 활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그 뜨거운 용암이 지면을 덮어버리지 않습디까? 다 죽는 겁니다. 생명이 끊어지는 겁니다. 분노가 그런 겁니다. 성경은 분노가 활화산 같다 말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27:4). 태풍이 지나가고, 홍수가 나면 어찌 되던가요? 다 쓸어버리지 않습니까? 공들여 쌓아놓은 것들, 노력해서 얻은 것들, 소중한 것들을 일순간 다 쓸어가 버립니다. 집도, 농토도, 자동차도, 때론 가족조차도…. 분노가 그런 겁니다.
공든 탑도 계속 공들이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한순간의 분노가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해야 합니다(잠16:32). 평생 화를 안 낼 수는 없지만, 화를 더디 내면 그 사이에 분노가 가라앉아 마음이 제어됩니다. 흔들린 콜라병을 바로 따면 옷에 튀고, 바닥에 흘려 남는 게 없지만, 탄산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더디 따면 튀는 것 없이 하나도 낭비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12:16).
우리는 예수님처럼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보면,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라고 베드로가 적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도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인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도 분노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예수님의 본성은 ‘온유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온유해지는 방법은 성령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니, 그 영이 내 안에 오시어 그 영으로 충만해지면 우리가 온유하게 됩니다. ‘온유’, ‘오래 참음’이라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갈5:22~23).
여러분, 사람의 외모는 바꿀 수 있지만, 본성을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본성을 바꾸는 방법은 노력해서가 아니라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겁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면 혈기 방자하던 내가 죽고 온유한 자가 되는 겁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혈기가 왕성했던 사울이(행9:1) 성령이 임하자 전혀 새 사람인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매한 핍박과 환난과 모함에도 참고 이겨냈고, 더는 기뻐하였으며,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고 편지했고, 고린도전서 13장을 아름다운 사랑 장(章)으로 썼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대제사장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 하자 분노하여 칼로 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버린 베드로(마26:53~54)도 성령을 받은 후 변화하여,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벧전3:15~16)고 권면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총 나간다, 칼 나간다’ 하던 성격이 성령을 받은 후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온유한 자가 되니 사람이 몰립디다. 온유한 자가 되니 만사가 잘 풀립디다. 복이 따릅디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받을 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여러분, 분을 내면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약1:19~20). 그러니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거든, 부자가 되고 건강하고 싶거든, 즉 만사가 형통하기를 원하거든 분을 내지 마세요. 혹 분을 냈다면 해가 지기 전에 풀어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하고요(엡4:26~27). 혹 분을 내는 자가 있거든 그와는 동행도 하지 말고(잠22:24),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되십시오(빌4:4). 자고로 자갈이 없는 옥토에서 곡식이 잘 자라고, 잔잔한 순풍에 돛단배도 잘 가고, 따뜻한 양지에 꽃이 먼저 피는 법이니까요. 할렐루야!
경영은 관리다 내 마음을 관리하라
분노가 공든 탑을 무너트린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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