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 20240824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간소하고 힘 있는 시이다. 그 힘은 현재까지 이어진다. 시인이 지적했던 껍데기는 1960년대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변형되어 두터워졌다. 이념 갈등과 독재 정권의 자리를 서로를 향한 혐오와 당파 싸움이 차지했고 쇠붙이는 여전히 두 쪽 난 한반도의 상처를 후벼파고 있다.
껍데기는 눌어붙어 피부가 되었다. 비리는 관행, 눈먼 비판은 정의 수호, 당의 성장은 민생이 되었다. 우리의 삶도 나라 살림을 닮아간다. 방관이 성실, 무관심이 집중, 혐오가 가족 사랑이 되었다.
어느새 껍데기가 인생의 목적이다. 우리는 매체가 비추는 삶을 탐하며 질투를 동기로, 희망을 채찍으로 게걸스럽게 달려든다. 음식으로 속을 채우고 옷으로 몸을 꾸미며 그것을 자랑하는 데 열심이다. 사랑도 어디선가 멋진 자리 하나쯤은 꿰차고 있어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학창 시절이 참 바쁘다.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더 멋진 껍데기를 가질지 난리다.
“껍데기는 가라” 살은 썩는데 껍데기를 보살피는 우리에게 신동엽이 외친다. 안타깝다! 하지만 내 살이며 삶인 껍데기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국가를 “껍데기는 가라”로 바꾸면 껍데기가 사라질까. 나랏일 결정하기 전에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한목소리로 선창이라도 하게 할까 보다.
“나니아 연대기”의 유스터스가 생각난다. 용이 되어 고통받는 유스터스를 치료하고자 사자 아슬란은 용 가죽을 발톱으로 찢어 뜯는다. 마찬가지로 피부가 된 우리의 껍데기를 찢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도움은 이미 주어졌다. “내게로 오라” 다가가 칼을 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