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한국 대법원은 일본 앞에서 무력한가?
-전범기업 자산 강제매각 사건 신속히 판결하라!-
대법원은 2018년 10월과 11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전범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해 최종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판결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피해자들은 속수무책 세상을 등지고 있지만, 오히려 일본 피고 기업들은 사죄 표명은 고사하고, 한국 사법부 명령조차 헌신짝 취급하고 있다. 가해자가 더 느긋하고 기세등등한 기막힌 일이 지금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법원에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관련해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2건(양금덕, 2022마5815) ▲일본제철이 보유한 피엔알(PNR) 주식(이춘식, 2023마5044) 등 일본 피고 기업 국내 자산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상고심 사건이 계류돼,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일반 사건이 아닌 집행 사건의 경우 무엇보다 신속한 절차 진행이 핵심이라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러나 미쓰비시로 동원된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 사건의 경우 2022.5.6.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된 지 2년이 넘도록 대법원은 손을 놓고 있다. 일본제철에 동원된 이춘식 할아버지 사건도 16개월째(2023.1.6 대법원 접수) 대법원에서 잠자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의 맥락은 간단하다. 대법원이 배상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배상 명령 이행을 이행하지 않아, 채무자의 자산 압류를 확정한 뒤, 매각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이 아닌가?
배상 판결도, 자산 압류도 대법원이 확정한 것인데, 추가로 더 따져야 할 어떤 쟁점이라도 있는 것인가? 대법원이 판결을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진정으로 대법원에 한번 묻고 싶다. 윤석열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강제집행이 한일관계를 파탄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인데, 악덕 채무자에 대해 법의 엄중함을 확인하고자 하는 정당한 권리행사가 무엇이 잘못이라는 것인가? 법원 명령을 콧방귀 뀌는 채무자에 대해 강제집행 절차를 밟는 것이, 사회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사실 이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을 감안하다면, 더 다툴 것도 없이 진즉 심리불속행 기각했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쟁점도 없는 이 사건을 여태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일본 눈치 보기’나 ‘용산 눈치 보기’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가 이렇게 뒤틀어진 데는 외교부가 소위 한일관계를 개선한다는 구실로 2022.7.26. 대법원에 ‘의견서’를 보내 판결에 개입한 것에 있다. “외교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판결을 미뤄달라고 한 것이다.
이 점에서 대법원에 다시 묻고 싶다. 한국 사법부가 언제부터 대한민국 외교까지 걱정해 사건을 흥정하는 곳이 됐는가? 법원이 헌법이 부여한 역할을 초월하여, 외교 관계까지 고려하는 곳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판결을 지체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백번 양보하더라도, 윤석열 정부가 말한 ‘외교적 시간’은 이미 끝났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에 대해 정작 당사자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 책임을 피해국이 대신하겠다는 것 자체가 해괴망측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마저 일본과 대통령 눈치를 보며 판결을 주저한다면 일본이 한국 사법부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겠는가?
한국 대법원은 일본 앞에서 이렇게도 무력한 것인가? 우리의 사법주권은 어디로 갔는가? 잘라 말하지만, 대법원이 판결을 미루고 있는 자체가 일본의 부당한 개입과 피고 기업들의 억지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누차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정·신속 재판’이라는 사법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강조하지만, 사법부는 사법부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된다. 이춘식 할아버지, 양금덕 할머니는 이제 여생이 얼마 없다. 정녕 대법원은 이분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대법원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강제매각 사건을 신속히 판결하라!
2024년 5월 23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