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우리 아파트의 '알뜰장'이 서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저께 토요일 아침엔, 날씨가 추운데도 내려가 '두부' 한 모와 '국수'를 사가지고 올라왔는데,
어제 일요일엔 뭐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오전을 보내다가,
과일이라도 하나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과일도 다 떨어졌기에,
추워서 나가기는 싫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채소가게에 가서 싼 단감(일요일이라 물건도 시원찮아 달걀보다 약간 큰 잔 감이라 열 개에 5천 원)을 사가지고 돌아오면서 저는,
내가 요즘 ‘식충이’나 다름없구나...... 하고 자조하기도 했습니다.
하는 일은 없는데(요즘 두 달 가까이 일손이 잡히질 않아 제가 통 일을 못하고 있답니다.) 먹는 건 이것저것 잘도 찾아 먹고 있는 스스로를 비판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월요일 아침,
올 들어 가장 춥다고 하던데,
그래도 날씨는 맑아 환한 햇볕이 방 안에 가득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음악을 듣고 있다가 또 눈 앞에 있는 그림들을 바라보면서는, (이런저런 그림 재료도 상기되어)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면서,
바로 음악을 끄고는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사람'이란,
이제는 하던 일을 그만 둔(은퇴한) 여기 주변 대학에 있던 '화방 사장'이었습니다.
여름이 되기 직전에 일을 그만뒀는데,
그 얼마 뒤 제가 캔버스 문제로 전화를 걸었더니 받질 않아서,
외국 여행 중인가 보구나. 하고 말았었는데,(일을 그만 둔 뒤, 부부가 외국 여행을 떠난다고 했었거든요. 그 부인도 때맞춰 일을 그만뒀다더군요.)
추석 즈음엔가?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는데, 그 때도 받질 않아서,
무슨 일이지? 하던 일을 그만 뒀다고 사람마저 끊으려는 건가? 하기도 했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했던 건,
(제가 그동안 여기 까페에 올렸던 글로도)여러분도 아시는 분이 있겠지만,
그 사람도 저에겐 참 잘해줬던 사람 아니었습니까?
가난한 화가인 저에겐(그 사람에겐 잘 나가고 부자인(대학 교수 등) 고객들이 많던데) 거의 재료값만을 받는 식으로 싸게 미술 재료를 제공해준 것도 있지만, 자기 화방에 남아 돌던 재고품 등은 챙겨 뒀다가 공짜로 주는 것도 모자라, 이따금 한 번씩 자기 고향에서 지은 농산물 같은 걸 갖다 주기도 하는 등... 제가 이 동네로 이사온 이래(1999-2023), 그러니까 20여 년간 인간적으로도 교류를 하며 정도 많이 들었던 사이였기에,
일을 그만 둔 뒤, 어떻게 지낼까?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던 겁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전화를 받기에,
"0 사장님,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일 그만 둔 뒤, 전활 걸어도 받지도 않고......" 하고 약간 투정 조로 말을 했더니,
"아, 죄송합니다! 제가 최근에... 바깥으로 좀 나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기에,
"허긴, '열심히 일한 사람, 떠나라!'고 했듯, 그렇게 지내신다니 좋기는 합니다.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요. 그래, 건강은 하신가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답니다." 하자,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더니, "지금 뭐 하시는데요?" 묻기에,
"저는 집이지요. 요즘, '식충이'처럼 지낸답니다." 했는데,
웬걸? 그 사람 갑자기,
"그럼, 저하고... 사우나나 가시겠습니까?"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에? 웬, 사우나?..." 저는 깜짝 놀라다 못해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는데,
"제가 지금 사우나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저하고 사우나나 가십시다!" 하기에,
"아니, 무슨 생뚱맞게... 사우나요? 하 하 하...... 난, 안 가요." 하고 아니 웃지 못했는데,
"왜요? 어때서요?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함께 가시죠!" 하고 물러서질 않기에,
"아이, 무슨 사우나요? 특별한 일은 없지만... 오후엔 제 친구('야학'하는 친구가 출근 길에) 하나가 여기에 들를 지도 모르는데......" 했더니,
"에이, 그냥 가십시다. 그럼, 제가 11시 40분까지 다시 아파트에 모셔다 드릴 게요." 하기에,
"아니, 그래도 그렇지... 무슨 아닌 밤에 홍두깨도 아니고... '사우나'라니......" 하고 여전히 제가 난색을 표하는데도,
"그냥 가세요. 제가 40분까지(그 때가 막 9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갈 테니, 나와 계십시요." 하기에,
"나는 사우나 같은 데 잘 안 가는 사람인데......" 하고 발뺌을 하려는데도,
"오랜만에 얼굴도 한 번 볼 겸, 제가 곧 가겠습니다." 하니,(그 사람도 여기서 가까운 '중계동'에 살거든요.)
"글쎄요......" 하는 중에,
"그럼, 갈아입을 옷가지나 좀 챙기시고 준비하세요." 하더니 전화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근데 이건 뭐지? 월요일 아침부터? 하면서 저는,
"하 하 하 하.... 내가 무슨 사우나냐고?" 하는 혼잣말까지 하면서 웃었답니다.
(정말, 큰 소리로 말하면서 웃었답니다. 저에겐 정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일 같기도 해서요......)
글쎄요,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했습니다.
제가 원래 '사우나'라는 단어와는 연결된 밀접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아니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전거 출타'를 하면서는 '찜질방'을 밥 먹듯(?) 드나드는 사람인데,
거기 가서 목욕하는 게 '사우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니까요.
이름(단어)만 달랐지, '목욕탕'에 가는 일이니, 생소한 일도 아닐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아직 샤워 전이었기에(음악을 들은 뒤 방안정리를 조금 하고 샤워를 할 예정이었기에),
목욕탕에 가서 '온탕'에 몸을 담궈서 손해볼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정말 뜬금없는 일이었기에 저는 재차,
아니, 월요일 아침부터 무슨 사우나냐고? 하면서, 연신 웃고 말았는데요,
얼마 뒤에(아직 10분도 더 전에) 전화가 울리더니, 0 사장이었습니다.
"선생님, 내려오세요!"
"예, 기다리세요."
추운 날 아침이라 저는 목도리에 빵모자까지 쓰고 갈아입을 옷을 가방에 넣은 상태로 내려갔고,
오랜만에 보았기에 그 사람과 악수부터 한 뒤 그 차에 올랐는데,
"아니, 0 사장님! 이거 너무 웃기지 않습니까? 무슨 사우납니까? 참내! 하 하 하......" 여전히 제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을 했는데,
"뭐가 그리 우습다고 하시는지... 저는 아주 자주 가거든요?" 하기에,
"그래요? 난, 따지고 보면... '사우나를 가는 건' 어쩌면 난생 처음인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나 한 번 들읍시다. 어디 어디를 돌아다니셨는지......" 하면서 둘이는 그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 한국이 한참 푹푹 찔 때(지난 여름 살인적인 더위였을 때), 그 부부는 '노르웨이' '발트해 3국' 등 북유럽을 다니고 있었다더군요.(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서 저는,
"아, 나는 지난 여름... 정말 죽는 줄 알았답니다. 에어컨도 없이, 꼼짝 못하고 내 아파트에서 여름을 보내느라......" 하고 그들을 부러워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
차를 시내 쪽이 아닌 여기 '불암산' 외곽쪽으로 모는 거 아니겠습니까?
'별내'라는 새로 생긴 주거지인데, 아주 말끔하고 새로운 아파트 단지거든요.(경기도에 속함) 그러면서,
"이 쪽에 아주 물이 깨끗하고 좋은 데가 있어요." 하기에,
"나야 뭐, 기왕에 나왔으니 아무 데나... 목욕만 할 수 있으면 돼요." 했는데,
"오전 중에 돌아가셔야 한다면서요?" 하고 묻기에,
"뭐, 약속이 딱 정해진 것은 아니고... 내 친구가 오게 되면 전화를 할 텐데, 그 상황에 따라 바꿔도 되는데, 아무튼 날씨는 깨끗하고 좋네요. 춥긴 하지만......" 했던 게 원인이었던지(?),
"그럼, 우리... '철원'에 갈까요, 선생님?"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 아니, 목욕갈라고 나온 사람한테... 무슨 소풍을 가자는 거요?" 하자,
"그렇잖아도 선생님하고 우리 고향에 한 번 갈려고 했는데(그런 말은 몇 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항상 바쁘다 보니, 그럴 짬을 내지 못했던 건데요.), 마땅한 기회가 없었잖아요? 오늘 갈까요? 거기에 가도, 물은 여기처럼 좋지는 않지만 사우나는 할 수 있으니......" 하기에,
"이거... 씻지도 않은 사람, 어딜 데려간다는 거요?"
"거기 가서 씻어도 되니, 가십시다!" 하면서 차를 아예 '포천' 방향 고속도로로 모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일이... 즉흥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근데, 오늘... 참 이상한 날이네. 월요일 아침부터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 내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 하 하 하 하......" 제가 웃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
"뭐, 인생...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 하 하......"
"그러게요. 하 하 하 하......"
그렇게, 차는 북쪽으로 달려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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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고향은 강원도 철원.
우리나라에서 제일 춥기도 하다는 그 곳,
언젠가 차를 타고 한 번 지나쳤던, 저에겐 낯선 곳이기도 했습니다.
(거기 아래 '포천'까지는 제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등 몇 차례 갔지만 '철원'은 거의 낯선 곳이었지요.)
목욕하러 나가는 사람이 무슨 디카까지 챙겼겠습니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핸드폰으로 사진 몇 컷을 찍기는 했답니다.(기록으로. 아래)
철원에 도착하자마자 거기 '고석정'이란 곳의 사우나에 들러 땀을 뺐고,
나왔더니 12시 반 경,
그래서 개운한 몸으로 점심을 먹고('곰탕'을 먹었는데, 그 집 김치가 맛있더군요.),
그 사람 농장에 들렀는데요(아래),
거기서 커피 한 잔을 마셨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다가,
떠나오는데 갑자기 거기 텃밭에서, 배추 무등을 뽑아주더니(어차피 차로 갔기 때문에 싣고 오는 게 문제가 되지 않아서), 고구마까지 챙겨주드라구요. (아래)
이렇게 고구마까지 챙겨줘서(위), 차에 실었는데,
이제는 저를 '삼부연 폭포'에 데려가더라구요.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오는 장소인데요,(아래)
이런 곳이 철원에 숨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뜻하지 않게 '철원' 구경까지 한 뒤,
서울로 돌아왔답니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면서요......(그 사람 살아왔던 얘기를 들었지요. 아주 열심히 살아와서(그 부부도) 지금은 나름 한 재산 이뤄놓은 상태로 보입니다. 부족함이 없이 살고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근데요,
그렇게 한 보따리 들고 아파트에 도착하니,
엉? 저건 또 뭐야? 했는데,
며칠 전 들렀던 전라북도 '옥정호숫가' '00 산장'에서 보낸 택배였습니다.
그런데, 고구마 한 상자 아니었겠습니까?
아, 오늘은 또 무슨 날이기에... '고구마'도 풍년이로구나! 했답니다.
(그래서 또 바로, 거기로 전화를 걸었지요.
"지난 번에 제가 서울에 돌아올 때도 이것저것 챙겨주시더니(들기름 등) 또 이렇게 보내셨습니까? 저는 맨날 얻어먹기만 하고...... 혹시, 제가 뭐 보내 드릴 거 없을까요?"(나도 뭔가를 보내드려야 할 것 같은데, 고민인데......)
"아녀요! 그런 소리 말고, 그냥 드셔요."(아주머니) "괜찮여! 맘이 있응 게 보낸 거여!"(산장 아저씨)
아, 가을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로 풍성합니다. '인정'도, '먹을 것'도...... 근데, 저는 '식충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