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이 혁명이란 단어에 대해 지극히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2백여 년전인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지금 이 시점까지 펼쳐진 세계 각국의 이런 저런 혁명들 가운데 제대로 성공한 경우가 몇번이나 있는가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일시적인 성공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혁명이 성공적이였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실제가 그렇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도 그러했다.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인 마리 앙뚜아네트를 단도대에 보낼 때까지는 혁명이 성공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혁명 주체세력사이에 알력과 균열이 생기게 되고 그것은 더욱 큰 혼란을 야기시켰으며 나폴레옹이라는 군인이 개입하게 되고 힘겹게 만들어진 공화정이 붕괴된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에 의해 제정시스템이 구축되고 나폴레옹의 야욕으로 결국 제정이 무너지고 다시 왕정이 세워지게 된다. 다시말해 프랑스 대혁명은 또 다시 왕정 복구라는 괴상한 흐름을 만들고 만 것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되고 이루어진 혁명이 결국 또 다시 그 왕을 우두머리로 세우는 왕정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야말로 죽쑤어서 개에게 준 결과가 아니고 뭔가.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대혁명의 대단함을 폄하할 수는 없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시민들의 시스템 공화정을 만들어냈으니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지만 제대로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혁명세력들의 야심과 야욕으로 인해 또 다른 괴물을 만들어 내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은 정말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국에서도 여러가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바로 1960년 4.19혁명이다. 자유당의 독재 강화로 자행된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그 시위를 짓밟으려는 공권력의 무력진압이 결국 혁명을 불러냈다.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김주열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혁명은 불이 붙었고 전국으로 퍼졌다. 결국 대통령 이승만은 망명하고 이 혁명은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리더그룹이 존재하지 않았고 내부적으로 혁명세력을 이끌 진정한 리더가 존재하지 않아 어수선한 가운데 1961년 박정희가 이끄는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장악하게 된다. 4.19혁명은 결국 5.16 쿠데타를 만드는 가교역할밖에 하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난 2016년 촛불혁명은 또 어떤가. 수많은 촛불 시민이 광화문 광장을 발디딜 틈조차 없이 메웠고 그 추운 겨울날 시민들의 함성과 열정이 결국 박근혜 정권을 붕괴시켰다. 당시 프랑스 취재진들은 프랑스 대혁명이 한국의 광화문에서 그 결실을 맺었다고 할 정도였다. 세계사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대단한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지금은 어떤가. 물론 문재인 정권이 탄생했고 정책 추진에 성과도 실패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기대한 만큼 제대로 국정을 이끌지 못했다. 리더 그룹들의 비젼과 능력이 촛불 시민들이 생각한 것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열정만 앞섰지 부작용도 많이 발생했다. 지리멸렬된 세력들이 재규합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자신들이 찾아냈다는 그 대단한 인물들이 자신을 발탁한 권력을 누르고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촛불혁명은 현 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한 그야말로 다리역할만 한 것인가.
지도자를 바꾸면 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그야말로 막연한 기대감으로는 혁명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었던 혁명에 가담한 시위대는 특정인들만 제거하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두머리를 교체한다고 해서 세상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세계 혁명사에서 너무도 뚜렷하게 보아왔다. 그 나라 그 사회의 구조와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지 않는한 혁명은 그야말로 일시적인 행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을 내세우며 검찰의 수장을 바꾸면 개혁이 그냥 이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결국은 지금 이런 모습으로 귀착되고만 것이다.
혁명이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일 때 그 이후 어떻게 이 혁명의 힘을 그리고 그 열정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승리에 취해 세월가는지 모르고 있다가 결국 통채로 권력을 새로운 도전자에게 바친 셈 아닌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하면 일이 잘 될 것이라는 아주 요상한 심리에 빠져 그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꼼꼼하게 대비하지 않아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상황은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혁명에 다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오로지 혁명만 성공하면 된다, 그리고 권력을 장악하고 그러면 세상은 바뀌고 국민들은 따라올 것이고 혁명의 흐름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안일함이 결국 혁명의 성과를 붕괴시키고 또 다시 혼돈속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았는가.
지금 이란에서도 이스라엘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란에서는 히잡으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이스라엘에서는 새로운 총리에 대한 반감 그리고 힘으로 국민들을 이끌겠다는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대규모 시위는 진행되고 있다. 이런 대규모 시위의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 지는 모르지만 제발 각국에서 혁명이 실패한 원인을 정확히 짚어 성공하는 혁명, 나라를 자유와 평등으로, 그리고 사회를 정의롭게 만드는 그런 혁명으로 이어지길 기원해 본다.
2023년 1월 1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