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산본부에서 회의 마치고 한 잔하고 가자는 꾼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구덕터널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잡은 것은 어제 오후의 일이다.
남포동 길을 돌아 보수천 흑교를 지나면서 몇 차례 신호등에 걸렸었고
동대신동 운동장 사거리를 거쳐 거의 무의식적으로 동대신동 캠퍼스
진입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교련복 입은 남학생의 표정은 무둑뚝했고,
흰 부라우스 여학생의 옆구리에 낀 책은 무거워 보였다.
무리 속을 분주히 오가는 검은 뿔테 안경잡이, 펄럭이는 잠바떼기, 무릅이 툭 튀어나온 색바랜 청바지,
울긋불긋 색깔,색깔들이, 뒤죽박죽 모양, 모양들이,
웃음소리, 재잘거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소리들이,
물결처럼 흘러 내려 오고 있었다.
해가 아직 중천인데, 수원지 상회에는 막걸리 사발을 앞에 둔 더벅머리는
꾸벅꾸벅 졸고 있고, 노가리 굽는 냄새가 구수했다. 』
" 아저씨, 키 꽂은 채로 내리슈"
주차장 아저씨의 외마디에 고개를 드니
낯설은 풍경이 펼쳐진다.
내 머리속에 그려진 그 길을 뭉개고,
골목을 허물고, 인도석으로 강제로 구분하고,
사람대신 끊임없이 자가용이,택시가 밀려갔다 밀려내려오는 좁디 좁은 이런 길은 아니었는데...
동아대 병원 장례식장 앞을 지나 예술대 쪽 뒷문으로 들어서니
웅장해 보이는 병원건물에 눌려 오히려 오붓해 보이는 교정이 눈에 들어 온다.
석당이 응가하고 있는 동상은 여전하고, 호랑가시나무 울타리도 그대로 인데
등나무밑에 자리잡은 구두닦는 아저씨가 반기며 오라고 손짓하는데....
이내 일렁이는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오고 가는 수 많은 발자욱들로 인해 새카맣게 변해버린 복도, 삐걱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곳,
거창한 꿈은 아니더라도 그나마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를 만들어 준 나의 태반같은 곳,
그 곳 도서관은 "석당기념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었다.
30년전 어느 선배가 그랬던 것 같다.
' 요즘 학교에 오면 사람들이 받힐까봐 팔도 못 뻗겠다, 고
그 땐 그랬다.
전두환 정권초기 정원의 130%를 뽑는 바람에 나같은 어중이 떠중이, 기타등등이 대학교정을 메워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텅빈 교정은 베낭맨 초로의 아저씨들이 간간이 쉬어 갈 뿐
신록의 5월에도 쓸쓸해 보였다
파크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려 본다.
저 나무 울타리를 돌아 누군가가 웃으며 걸어 올 것만 같다.
30년의 세월을 지나 제법 둥치가 굵어진 벽오동 머리위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첫댓글 아~ 그게 호랑가시나무 울타리였구나,,, 우린 왜 옛 기억속에 살고있을까? 추억에 머물러,,,ㅎㅎ
지금은 그림이 확 바뀌었지, 추억은 전설속의 한 편린으로 남아있지
77년 한해만 그쪽 댕기고.. 거의 안가봐서.. 기억세포가 희미해.....^^
예대에 다니는 딸레미때문에 그쪽에 몇번 갔지 아직 박물관은 그자리에 있는것 같은데 도서관은 워낙 체질이 아니라서 그쪽으로는 안봤네? 6월말경 짐싸러 한번 가때 시간내어 수원지 상회한번 들러볼까?
추억의 수원지 상회는 없습니다. 대신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1층은 약국입니다. 슬픕니다
본관을 스쳐지난지가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네... 멀리 떠나있다 되돌아온 땅에서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반가워 들렸었는데...^^ 멀리서나마 추억 회상하게 해주는 글 고맙게 읽고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