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무(123)

[눈동자]

광풍무(123)

촤악! 촤악!

바람도 때론 쉬어 가는지, 폭풍처럼 휘감아 도는 회오리바람이 한 번씩 수면을 칠 때마다 수많은 붉은 물방울들을 흔적처럼 남겼다.

“후읍!”

붉은 회오리바람 속에서 깊게 들이마시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혈풍뇌전심법을 펼치며 몸을 달리는 백산의 전신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었다.

회오리바람 밖으로는 바람에 휘말린 물방울들이 소용돌이처럼 돌았고, 안쪽에는 이마에서 떨어진 땀방울들이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았다. 얼마나 달렸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지 못한다.

길조차 모르기에 얼마 전 숭산으로 갈 때의 뱃길을 택했다.
운하를 따라 무작정 달리면 우이에 도착할 터이고, 그곳으로부터 왔던 길을 더듬으면 남경에 도착할 것이다. 오직 그 한 가지 일념뿐이었다.

“우이(旴貽)다!”

멀리 거대한 호수가 보이자 백산은 고함을 내질렀다. 호수는 홍택호가 분명할 터였다. 드디어 강소성에 도착한 것이다. 슬며시 미소를 베어 문 백산은 혈풍뇌전심법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넓이의 홍택호를 오직 혈풍뇌전심법에 의존하여 횡단했다. 돌아가는 법은 일절 없었다. 섬이 나오면 섬을 뛰어 넘었고, 산이 나오면 산을 넘었다.

홍택호를 지나 동남쪽으로 이어진 수로를 따라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잠시 후, 백산의 눈앞에 두 번째 호수인 고우호(高郵湖)가 나타났다.

홍택호와 고우호 수로는 적룡호를 타고 내려갔던 길이라 훨씬 편했다. 호수를 가로질러 달리고 다시 좁은 수로로 변한 물길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양자강에 접어들자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그가 장포에 도착한 시각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 무렵이었다.

“남경인가....... 하연아, 조금만 기다려라.”

멀리 자금산이 보이자 절로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냉정하게, 천천히 일을 처리해야 한다.

잠시 심호흡을 한 백산은 맥궁을 꺼내 시위를 걸었다. 그리고 사방을 살피며 자금산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느냐?”

남경왕 주홍의 처소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이 해진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하후야였다. 권태로움과 짜증으로 하후야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채다.

남경왕부에 도착한 지 벌써 삼 일이 지났지만 주하연을 손에 놓지 못한 탓이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노리개로 가지고 놀다가 귀광두에게 넘겨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아직 진조차 뚫지 못했으니.

“조금씩 진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한두 시진만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오영천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벌써 몇 개의 건물을 뜯어다 불을 피웠는지 모른다. 남경왕부 대부분이 폐허로 변했지만 주하연이 설치한 진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녁 무렵부터 조금씩 변화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넘실대던 운무가 점점 약해지고, 잠시 잠깐이었지만 안쪽에 세워진 석상이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부하 열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진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한숨 자고 있을 테니까 해진되면 깨워라!”
“알겠습니다, 소가주님!”

하후야를 향해 고개를 숙인 오영천은 밖으로 나가며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나무를 더 가져 와라! 건물을 전부 뜯어 오란 말이다!”

오영천의 명령에 따라 동창무인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주하연, 누가 이기나 보자. 누가 이기나 보잔 말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노려보며 오영천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개자식들아, 서둘러 움직이란 말이다! 지금부터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놈은 다리를 잘라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라!”

오영천의 광포한 고함소리가 사방을 강타하자 동창무인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듯싶더니 일제히 몸을 날려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향했다.

주변에 있던 건물은 대부분 재가 되었고 먼 곳에 있는 건물을 뜯어 와야 했기에 다들 떠난 봉선각 주변은 인적 하나 없이 휑했다.

“이게 다 귀광두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내가 뭘 어쨌는데?”

“헉!”

뒤쪽에서 들려오는 속삭이는 듯한 소리에 오영천의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분명 부하는 아니었다. 자신의 부하라면 기척도 없이 다가올 수 없거니와 반말을 하지도 않는다.

순간 머릿속이 아뜩해졌다. 기다리고 있던 놈, 귀광두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여.......!”

우드둑!

고함을 질러 보려 했으나 오영천의 입에선 한마디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목이 돌아가는 시간이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보다 빨랐던 탓이었다.

“내가 밥을 달라고 했냐, 아니면 옷을 달라고 했냐! 왜 나를 못살게 구는 거냐고, 개새끼야!”

목이 한 바퀴 돌아 서로 마주보는 형상이 된 오영천의 얼굴을 보며 백산은 나직이 입을 뗐다.

“이유도 모르는 것들이. 그러니 평생 남의 수하나 하는 거야, 병신아.”

이미 숨이 끊어진 오영천의 얼굴에 대고 중얼거리듯 말을 한 백산은 그의 시체를 이끌고 진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터인가, 자꾸만 그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정신을 깜빡 놓을라치면 어느새 그가 다가와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의 미소를 보면 절로 힘이 솟았다.

텅 빈 단전을 채우는 건 그의 미소였다. 그의 미소는 약해진 빙천수라마공을 더욱 강하게 해 주었고 무너지려는 정신을 지탱하게 해 주었다.

비릿한 냄새가 끊임없이 목을 타고 넘어왔다. 만두 몇 개밖에 먹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도 넘어오는 건 많은지.

조그마한 뱃속에 뭐가 그리 많은 것들이 들었는지 쉬지 않고 넘어왔다. 얼마나 게워 냈을까. 종내는 속이 비어 어지럽기까지 했다.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다시 빙천수라마공에 집중했다.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백산이 정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된다.

정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는 피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잠자는 천살성을 깨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백색지안이 될 필요도 없고, 흑색지안이 될 필요도 없고, 광혈지안이 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한 번만이라도 오빠 얼굴을 봤으면 좋겠어요. 한 번만이라도.......”

희미해진 눈으로 전면을 응시하며 주하연은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그분의 모습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절한 바람은 기적을 불러왔다. 바로 앞에 그가 있었다. 눈을 감고 있지만 분명 그가 있었다.

물론 환영이리라. 하지만 환영이면 어떠랴. 바로 눈앞에 그가 있는데. 마지막 순간에 그의 모습을 보며 죽을 수 있는데.

“눈을 떠 봐요. 눈을 뜨고 저를 봐 주세요.”

하늘은 두 번째 소원도 들어주었다.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그가 이편을 본 것이다.

“저 때문에 울 필요 없어요. 전 역적의 딸인 걸요. 반역자의 딸인 걸요.”

문득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듯했다. 그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천영 언니, 추렴 언니, 소운 언니를 외쳐 부르면서도 그는 울지 않았었다. 그분들과의 사연을 얘기하면서도 그는 울지 않았었다.

만두를 보면서도 울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편을 보고 울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본 백산의 모습은 환영이 아니었다. 백산은 정말로 울고 있었다.

하연이 너무 불쌍했다. 그녀의 주위는 온통 피로 벌겠다. 언제부터 피를 토해 냈는지 가슴께에서 아랫비로 이어진 벌건 핏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다.

창백한 얼굴엔 핏기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재빨리 주하연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명문혈에 대고 내기를 밀어 넣었다.

“왜 왔어요.”

문득 명문혈을 통해 노도처럼 밀려드는 빙극지기를 느낀 주하연은 맥없이 말했다. 환영인 줄 알았는데, 꿈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수천 리 길을 달려 그가 온 것이다.

“땀을 많이 흘렸잖아. 그래서 땀 좀 식히려고!”

“정말이네....... 오빠 몸에서 땀 냄새가 진동하잖아요. 아무리 바빠도 몸은 씻고 다녀야죠. 그래야 우수에 젖은 얼굴, 영롱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는 거라고요. 그리고 여기서 빙극지기를 쏟아 내면 한빙쇄혼진은 더욱 강해져요. 누구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저기 밥 있으니까 배고프면 먹어요. 전 잠 좀 잘게요.”

백산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것저것 마구 말을 쏟아 낸 주하연은 이내 고개를 떨궜다. 더 이상 몸이 견뎌 주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래 푹 쉬어라.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하마.”

주하연을 품안으로 끌어들인 백산은 그녀가 가리켰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소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것들은 꽁꽁 언 만두였다.

[청당마을]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그랜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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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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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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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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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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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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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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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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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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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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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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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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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만]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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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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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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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바람]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