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뜨개질을 모 문화센터에서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친정 어머니께서 아주 손재주가 좋으셔서 취미로 옷을 만드시곤 하셨어요.
그때 늘 옆에서 제도나 천 마름질을 거들었고,
학교 다닐 때도 바느질이나 자수는 늘 칭찬받을 정도였기 때문에
뜨개질도 영 헤매지는 않을 거라는 약간의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뜨개질은 아니었어요.
정말 짜증났어요.
뜨개질 자체가 싫은 건 아닌데, 아니 사실 뜨개질 자체는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뭘 어떻게 하는지만 알면 다 따라하겠는데... ㅋㅋㅋ
그래서 떼려치워버렸어요.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제 손재주에 심각히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그 때 그 문화센터 강사가 좀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제대로 다시 배우고 싶어서 세라 선생님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신촌 계실 때 찾아뵈었으면 가깝고 좋았을 텐데
이제는 지하철만 한시간 반 타고 갑니다.
그래도 좋아요. ^^
세라 선생님한테 배우는 것도 좋고,
맛난 커피 마시는 것도 좋고,
스튜디오 밖의 멋진 풍경도 좋고,
수업 마치고 지하철 타러 가면서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바로 간단하게 반찬거리라도 사갈 수 있어서 좋아요.
ㅎㅎㅎ
제 남편이 다음 달 초에 베를린으로 떠납니다.
요즘 거기가 말도 못하게 춥다네요.
바로 따라가서 도와주지도 못하는 처지에 마음이 짠해서
옛날에 문화센터 다닐 때 뜨다가 그만 둔 풀오버라도 완성해서 입혀 보내고 싶어졌어요.
뒷판 단 떴고, 앞판도 목 밑까지 뜨다가 그만 뒀으니 팔만 떠서 달면 될 거 같았어요.
그때 그분이 제도해준 도안은 아직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꺼냈더니
헐!!!!!
이 엄청난 진동은 무엇인가?
옷 길이의 반이 진동이예요. -_-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머리를 스쳐지나더군요.
"원형제도와 실제로 옷을 만드는 것은 좀 달라요.
요즘 누가 이렇게 진동을 풍덩하게 파요?"
보고 재밌게 웃으시라고 사진도 첨부해봅니다.
보이시나요?
저 깊고도 넓은 진동... ㅋㅋㅋ
고치기 귀찮아서 그냥 일단 떴습니다.
뭐 그 동네 사람들이 유행에 아주 민감하지는 않으리라 믿고... ㅋㅋ
그러다 보니 또 두둥!!!
원래 그 분이 제도해준 도안 대로라면 왼쪽에도 꽈배기 무늬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안대로 뜨니 옆선에서 올라오는 게 아니라
겨드랑이와 가슴팍 가운데서 갑자기 무늬가 툭 튀어 나와요.
다시 떠오르는 선생님 말씀.
"계산을 치밀하게 해야지. 안 그러면 무늬가 삐꾸나요.
무늬가 가다가 뚝 끊길 수 있어요.
난 그래도 상관없다 하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은 안 예쁘잖아요."
으...
아무리 그 동네 사람들이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도
눈이 달렸으니
이 뜬금없는 무늬의 출현은 눈에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예 빼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왼편 어깨가 좀 심심하기는 해요.
뭘 달아줘야 하나... 고민 중이예요.
어쨌거나 제도 수업 듣는 중이라고 이런 게 눈에 보이니 정말 재미있었어요. ㅎㅎㅎ
마지막으로 오늘 가장 기분이 좋았던 건...
그때 그분한테서 고무뜨기 마무리를 배운(?) 적이 있어요.
후드 넥워머를 뜨는 데 고무뜨기 마무리를 해야했어요.
한번 시연을 보여주면서
"겉뜨기 코를 뜨고 실을 다 빼지 말고 살짝 둔 다음,
다음 겉뜨기 코를 뜨고 아까 빼둔 실을 당기고,
어쩌고 저쩌고..."
천천히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휙휙 뜨면서 말하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수강생들이 봐달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나만 계속 가르쳐 달라고 하기 그러니
동영상으로 찍으면 안되겠냐고 물었죠.
그 분 대답.
"(버럭하며) 찍지마!"
아니... 자기가 무슨 연예인인가?
허락없이 찍는 것도 아니고
자기 덜 바쁘라고 동영상을 찍고 그걸 보면서
따라하겠다고 한 건데
성질은...
우쨌거나 그래서
그 뒤로 고무뜨기 마무리와는 이별했어요.
보기 싫어도 그냥 덮어씌우기해버렸죠.
그런데 오늘 세라 샘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해보니...
세상에...
한코 고무뜨기 마무리가 이렇게 쉬운 거였나요? @0@
동영상 두번만 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역시 고수의 설명은 쉽고도, 명확하고, 간단해요.
참으로 세라 쌤은 니트의 여신입니다...
고무뜨기 마무리를 해내고 있는 저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기념샷 하나 찍었습니다. ㅋㅋㅋㅋ
선생님, 고맙습니다.
첫댓글 하마터면 그 좋은 재주와 취미를 썩힐뻔 하셨군요. 첨부터 탁월한 선택을 하셨다면 더 좋았겟지만 이제라도 열뜨합시다
볼줄알고 느낄줄알고 내것으로 만들줄 아시고 감탄하실줄 아는 스너글님도 뜨개매니아이시네요...
오가는 길이 멀어도 즐거우시죠??~~~~탁월한 선택을 하ㅅ셔서 그런걸거예요 . ㅎㅎ~~멋진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제가 아이들한테 가끔 해 주는 얘기인데요. '뭘 모르는지만 알면 이미 반은 아는거다'라구요.겁게 하는것 같습니다.겁게 오갈수 있을거예요.
모르는거 알아가는 재미가 먼 거리를 오가는 수고도
저도 아이들 방학이 끝나면 먼거리를
화이팅
소질이 있는 사람은 살짝만 터치해줘도 빨아드리는 속도가 스펀지 같아요. 원래 재능 있는 사람이었구만.
가르침이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고 칭찬에 쑥스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