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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0:18
기다림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포기한 사람은 기다리지 않고 마음이 떠난 사람은 서성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쉽게 등을 돌리지 못합니다. 떠난 유다를 향해 애달프게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심판 언어의 틈새에 영존하시는 아버지 마음이 비칩니다. 공주야!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면 왜 지금 그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가’에 대한 의문을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고 계시기 때문이란다.
Waiting is another name for love. A person who has given up does not wait, and a person whose heart has left does not linger. However, love does not easily turn its back, even when the chances are slim. There is one who waits with aching longing for Judah, who has gone away. In the crevices of judgmental language, the mind of the eternal Father shines. Princess! You have probably wondered at least once, “If God is just, why hasn’t that justice been fulfilled yet?” It is because God is showing us grace and mer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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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의인이 정의의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죄인을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의인이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보복하지 않고 은혜와 긍휼에 참여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음은 정의의 심판이 이를 줄 믿기 때문이란다. 주께서 기다리신다. 심판을 통해 자기 백성이 돌아와 은혜 구하기를 기다리신다. 일어나 긍휼을 베풀려고 대기하신다. 정의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의한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의 정의에 참여할 때 복을 주려고 기다리신다.
Therefore, when the righteous say that they wait for the God of justice, it means that they are partaking in God’s grace and mercy, which endures sinners forever. The righteous do not give up on participating in grace and mercy without seeking retribution, even amid suffering and persecution, because they believe that the judgment of justice will bring it. The Lord is waiting. Through judgment, He waits for His people to return and seek His grace. He is waiting to rise and show mercy. The God of justice waits to bless us when we rise from our place of injustice and take part in His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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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르짖는 소리에 즉시 응답하려고 서두르신다. 회복과 구원의 날에 주께서 우리의 스승이 되어 주실 것이다. 치우치지 않도록 인도하시니, 이 백성은 모든 우상을 내어버릴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부드러운 말만 듣고 거짓 예언을 부추기던 시대와 결별할때만 주님의 생명의 통치를 누릴 수 있다. 예루살렘이 구원받는 날 그들은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It hurries to respond immediately to the cries we make. On the day of restoration and salvation, the Lord will make Himself our teacher. As you lead them away from all the idols, this people will cast them all off. Only when we part ways with the age of refusing to hear the word of the LORD, listening only to sweet talk, and encouraging false prophecy, can we enjoy the Lord’s reign of life. On the day Jerusalem is saved, they will enjoy the blessing of anointed and fertile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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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가 살육을 당하는 날 개울과 시냇물이 흘러 생명력을 회복할 것이며,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어 치료하실 뿐더러, 이전보다 일곱 배나 더 큰 은총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잘못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돌아와서 회복되고, 이전 보다 더 큰 은혜 아래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앗수르를 심판 하실 것이다. 창일한 하수같이 민족들을 삼켰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하수 같은 호흡에 멸망할 것이다.
On the day Assyria is slaughtered, streams and streams will flow and restore life, and He will not only bind up and heal the wounds of His people, but also fill them with grace seven times greater than before. As important as not doing wrong is returning, recovering, and living under even greater grace than before. God will personally bring judgment on Assyria. Assure, which swallowed nations like a mighty flood, will be destroyed by the breath of God, like the fl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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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 역할을 하던 그들이 여호와의 막대기에 무너질 것이다. 그들의 멸망이 이스라엘에게는 축제가 되고 즐거움이 될 것이다. 우상을 섬기던 그 도벳이 그들의 심판의 장소가 될 것이다. 어린아이를 희생시키던 그 잔인한 곳에서 그들이 희생제물이 될 것이다. 행한 대로 돌려받게 하실 것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복된 자들의 소유를 어떻게 회복하시는가? 주님이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는 날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는가, 나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가?
Those who had acted as the rod of God’s wrath will be brought down by the rod of the LORD. Their destruction will be a festival and a delight to Israel. That Dabet that once worshipped idols will become their place of judgment. In that cruel place that used to sacrifice children, they will become the sacrifice. You will make you get back exactly what you did. How do you restore the possession of the blessed ones who wait on the Lord? What happens on the day the Lord wraps up the people’s wounds? Am I waiting for God, or am I remembering God, who is waiting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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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구원 약속(18-26)
a.구원의 때:18-19
b.스승이 되신 하나님:20-21
c.땅의 축복:23-24
d.살육의 날:25
e.치유의 날;26
앗수르의 심판(27-33)
a.멀리서 오시는 여호와:27-28
b.노래하며 기뻐하는 자들:29
c.앗수르를 치시는 여호와:30-32
d.마련된 소각장: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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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호와께서(18a)
기다리시나니(18b)
이는 너희에게(18c)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18d)
일어나시리니(18e)
이는 너희를(18f)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18g)
대저 여호와는(18h)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18i)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18j)
복이 있도다(18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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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에 거하며(19a)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19b)
너는 다시(19c)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19d)
그가 너의(19e)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19f)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19g)
들으실 때에(19h)
네게 응답하시리라(1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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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너희에게(20a)
환난의 떡과(20b)
고생의 물을 주시나(20c)
네 스승은(20d)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20e)
네 눈이(20f)
네 스승을 볼 것이며(2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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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21a)
우편으로 치우치든지(21b)
좌편으로 치우치든지(21c)
네 뒤에서 말소리가(20d)
네 귀에 들려(21e)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21f)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21g)
할 것이며(2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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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희가(22a)
너희 조각한(22b)
우상에 입힌 은과(22c)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22d)
금을 더럽게 하여(22e)
불결한 물건을(22f)
던짐 같이 던지며(22g)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2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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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23a)
주께서 비를 주사(23b)
땅 소산의 곡식으로(23c)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23d)
그 날에 너의 가축이(23e)
광활한 목장에서(23f)
먹을 것이요(2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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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24a)
키와 육지 창으로 까부르고(24b)
맛있게 한 먹이를(24c)
먹을 것이며(2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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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살육하는 날(25a)
망대가 무너질 때에(25b)
각 고산, 각 준령에(25c)
개울과 시냇물이(25d)
흐를 것이며(2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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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26a)
그 백성의 상처를(26b)
싸매시며(26c)
그들의 맞은 자리를(26d)
고치시는 날에는(26e)
달빛은 햇빛 같겠고(26f)
햇빛은 칠 배가 되어(26g)
일곱 날의(26h)
빛과 같으리라(2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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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여호와의 이름이(27a)
원방에서부터 오되(27b)
그의 진노가 불붙듯 하며(27c)
빽빽한 연기가 일어 나듯하며(27d)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27e)
그 혀는 맹렬한 불같으며(2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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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호흡은 마치 창일하여(28a)
목에까지 미치는 하수 같은즉(28b)
그가 멸하는 키로(28c)
열방을 까부르며(28d)
미혹되게 하는 자갈을(28e)
여러 민족의 입에(28f)
먹이시리니(2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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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거룩한 절기를(29a)
지키는 밤과 같이(29b)
노래할 것이며(29c)
저를 불며(29d)
여호와의 산으로 가서(29e)
이스라엘의 반석에게로(29f)
나아가는 자 같이(29g)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2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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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30a)
그 장엄한 목소리를(30b)
듣게 하시며(30c)
혁혁한 진노로(30d)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30e)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30f)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3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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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목소리에(31a)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31b)
주께서는(31c)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3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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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32a)
예정하신 몽둥이를(32b)
앗수르 위에(32c)
더하실 때마다(32d)
소고를 치며(32e)
수금을 탈 것이며(32f)
그는 전쟁 때에(32g)
팔을 들어(32h)
그들을 치시리라(3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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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도벳은(33a)
이미 설립되었고(33b)
또 왕을 위하여(33c)
예비 된 것이라(33d)
깊고 넓게 하였고(3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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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불과(34a)
많은 나무가 있은즉(34b)
여호와의 호흡이(34c)
유황 개천 같아서(34d)
이를 사르시리라 (3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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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리라_God will bless you.
하나님이 너의 스승이 되시리라_God will be your teacher.
심판의 도구가 심판을 당하리라_The tools of the umpire will be jud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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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과 권능으로 앗수르를 멸하시고 자기백성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최후 승리를 믿으며 의의 길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기다리라 너의 갈 길을 인도할 것이며 너의 버릴 것을 알려 주리라 그리고 너를 회복시키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제가 믿고 따르겠나이다.
The Lord, who destroys Assour by his majesty and power and gives salvation to his people, is worthy of praise. Believing in the ultimate victory in the dark world, Live a life of righteousness. Wait, I will lead your way and tell you what to throw away, and I will trust and follow what you have said to restore you.
2026.8.21.fri. Clay
신학 비평//
누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다림과 공의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이사야 30:18은 앞부분의 심판 선언을 놀랍게 뒤집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애굽의 힘을 선택했고, “잠잠하고 신뢰하라”는 요청마저 거절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제 관계를 끝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뜻밖의 말씀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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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기다림은 무능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심판을 서두르지 않는 하나님의 자기 절제입니다. 돌아올 가능성이 남아 있는 동안 문을 닫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기다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면 왜 악을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는가?”라는 질문에 본문은 중요한 대답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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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은 서로 반대되지 않습니다. 공의 때문에 악을 그대로 둘 수 없지만, 긍휼 때문에 죄인이 돌아올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지연은 불의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회개를 향한 인내입니다. 그렇다고 기다림이 죄의 무한한 방치를 뜻하지도 않습니다. 본문 후반에서 앗수르는 결국 심판받습니다. 하나님의 막대기였던 제국이 스스로 주인이 된 순간, 그 막대기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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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하나님의 부재나 무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시간이 영원히 심판을 취소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회복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잘못을 용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네 스승”이 되십니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칠 때 “이것이 정로니 이리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적 회복은 단순히 잃었던 것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회복에는 우상을 버리는 일이 뒤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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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절의 이미지는 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상처를 싸매시며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 빛이 일곱 배가 됩니다. 이것을 물질적 번영의 공식으로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구원이 상처 이전으로 단순히 되돌리는 원상복구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상처 입은 백성을 다시 당신의 백성으로 세우시는 새 창조의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잘못하지 않는 것만큼 돌아와 회복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묵상의 통찰이 살아납니다. 신앙의 목표는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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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졌을 때 자신을 정당화하며 애굽으로 더 멀리 내려가지 않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이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도 단순히 “언제 악인을 혼내주시나” 지켜보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오래 참으셨듯 우리도 성급한 보복을 내려놓고 정의를 행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에 참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은혜란 내가 하나님을 오래 기다려서 얻어낸 보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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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올 때까지 먼저 그 자리에 계셨던 하나님의 기다림을 뒤늦게 발견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30장의 복음은 한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라. 그런데 돌아보라. 이미 하나님께서 너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 기다림을 발견하는 순간, 회개는 벌을 피하기 위한 도망이 아니라 나를 기다리던 사랑에게 돌아가는 길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