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금색(靑金色)의 신비, 왜 꽃에는 찾을 수 없을까?
인류가 가장 선호하는 색깔은 어떤 것일까? 땅에는 흙과 바위, 돌 그리고 풀과 꽃과 나무들의 다양한 색으로 조화를 이루지만, 하늘은 청명한 푸른색이어서 신비, 또는 신성한 색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신이나 제왕, 성스러운 사원과 상징물, 건축물과 성화에서 푸른색의 절정인 청금색(靑金色)이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 중에 푸른색이 40%를 차지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푸른색 계열을 110여 개의 색상표로 규정한다고 하니, 보통사람의 심미안으로는 근접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터키에서는 푸른색을 70여 가지로 달리 표현한다고 한다. 그래서 Turkish Blue(Turkey Blue)란 말도 나왔을 것이다.
이 청금색은 고대 이집트 왕족들이 청금석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눈가에 발랐는데, 유물로 출토된 투탕카멘 마스크의 눈 부분과 무덤 내의 벽화 일부에도 청금석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의 이슈타르 문의 신비한 푸른색도 청금색으로 장식되었다.
그런데 이 청금석은 페르시아의 호라산지역,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Badakshan) 주의 광산과 파키스탄의 광산에서 제한적으로 채굴되었다. 그러함에도 그 선명함과 아름다운 색에 매료되어 기원전 4천 년부터 수메르 도시국가와 고대 이집트에까지 교역품으로 거래되었으니 원거리 무역의 효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처럼 신비한 색인 청금색(靑金色)을 사람들은 꽃에서도 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흰색, 노란색, 녹색, 붉은색, 보라색의 꽃들은 많지만, 푸른색의 꽃들은 별로 없는 편이다. 왜 꽃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으로 피어나지 않을까? 식물학자들은 그 이유로 꽃들은 사람이 아니라 곤충들을 유혹하기 위해 아름답게 핀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종족 번식을 위해 열매와 씨를 맺으려면 곤충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원예학자이자 식물학자인 안드레아스 바를라게(Andreas Barlage)가 쓴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에는 이런 설명이 나온다.
“생물은 누구나 나름대로 선호하는 색이 있다. 꽃들이 유인하려 하는 곤충들이 색을 우리 인간과는 완전히 달리 인식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보라색은 자주색이나 분홍색과 같이 세포액 속의 안토시아닌이 유발하는데, 곤충들이 문제없이 볼 수 있는 색깔이다. 아주 집중적으로 보면 우리 눈에 어두운색으로 감지되지만, 벌들에게는 아주 밝게 빛나 보인다. 흰색 꽃은 벌들에게 꽤 나 노랗게 보인다. 꽃의 노란색은 우리에게는 환하게 빛을 내뿜지만, 벌들에게는 더 어두운색, 그러니까 가의 자주색에 가깝게 보인다. 찬란한 붉은색은 벌들은 어차피 전혀 보지 못한다. 어둡거나 검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몇몇 꽃들이 붉은 꽃을 피우는지 궁금할 것이다. 열대 식물의 경우 우리 인간과
달리 비슷한 시지각(視知覺)을 가진 새들이 가루받이를 담당한다. 붉은색의 상징과 같은 개양귀비의 경우에는 이 상황이 어떠할까? 이 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반사한다. 그러면 벌들의 눈에는 이 색이 청 보라색으로 보인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청 보라색 말이다. 푸른 꽃들은 우리에게 매력적이다. 만약 우리가 식물을 가루받이하는 존재였다면 푸른 꽃을 무성하게 번식시켰을 것이다.
꽃의 푸른색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는 색소는 델피니딘 (Delphinidin)인데, 이것은 소수의 식물에서만 발견된다. 푸른색은 우리가 동경하는 천상의 색깔이지만 가루받이를 해주는 다수의 곤충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의 겹눈이 우리 인간의 눈과는 달리 완전히 다른 칼러 차트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푸른 색조는 존재 이유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식물의 꽃에는 없어도 되는 색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그저 푸르디푸른 수레국화, 초롱꽃, 히말라야 양귀비 따위를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이 어떨까?”
한편 여름에 피는 우리 토종 꽃 중 청색으로 분류되는 꽃에도 보라색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진짜 푸른색은 ‘달개비’로 불리는 ‘닭의장풀’ 정도이다.
만일 다른 동물이나 곤충의 색상감지 능력이 인간과 같았으면 꽃들의 생태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단조로운 색상만 남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지금처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계절을 따라 조화롭고 질서 있게 우리 주위를 물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보면 우주와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섭리가 경이롭게 느껴질 뿐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육체이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바람이라도, 풀꽃 하나에도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것보다 낫게 하신 그분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