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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shhyelow
오늘 여러 번 현대미술 게시물이 핫플이 되는 걸 지켜본
일개 쩌리 여시야 ㅋㅋㅋㅋ
개인적으로 아무 설명 없이 그냥 작가 이름이랑 제목, 가격만 덩그러니 있다보니
좀 말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
그래서 몇몇 작가들을 뽑아서 설명을 좀 붙여봤어
yBa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 제국, 2008
현대미술 작가 중 가장 영민하고 운 좋은 작가이자
작가로 성공하기 전까지 작품 제작에 자기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 무리에서 벗어난, 1994
허스트는 항상 죽음을 주제로 작업해
그는 죽음을 관람객의 눈앞에 지속적으로 보여줘
그는 이러한 방법으로 관람객에게 끊임없이 죽음을 성찰하게 하지
데미안 허스트, 채러티, 2002-2003
우리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중 하나
아라리오 회장 김창일이 20억 원에 사들인 작품이야
현재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 전시 중이야
데미안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실제 사람의 해골을 백금으로 주물을 뜬 뒤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작품이야
실제 사람의 해골이 작품의 주 재료가 되었다는 사실도 논란거리였지만
이슈를 불러일으킨 더 큰 이유는 작품에 붙은 가격표 때문이었어
순수 제작비만 1,200만 파운드(한화 220억 원)였던
이 조각품은 5,000만 파운드(한화 1,000억 원)에 달하는 가격표를 달고 전시에 나왔어
생존 작가의 작품 중 세계 최고가였어
이 작품은 개인이 아닌 미국의 헤지펀드사가 구입하게 돼
데미안 허스트, 금송아지, 2008
허스트는 딜러를 거치지 않고 소더비 경매를 통해
<금송아지>를 비롯한 작품 223점을 직접 판매했어
이틀간 진행된 경매에서 출품작 전부가 낙찰되었고 낙찰 총액은 2,200억에 달했어
작가가 딜러를 통하지 않고 직접 2차 시장인 경매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것은
기존 미술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데미안은 경매가 작품을 판매하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이고
이와 같은 행위가 현대미술을 위한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답했어
트레이시 에민
영국에서 가장 싫어하는 현대미술 작가이자 가장 좋아하는 현대미술 작가인 트레이시 에민
에민은 부모가 운영하던 휴양도시 마아게이트의 호텔에서 공주처럼 자랐어
그러나 일곱 살 되던 해 부모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열세 살이 되던 해 그녀는 강간을 당하고 가출해 거리의 여자로 살아가
에민은 스스로를 포기한 채
그냥 눈 맞는 사람이 있으면 잠시 한때를 보내면서 몇 년간 지내다가
친구의 권유로 지방대학의 단기 예술 과정에 등록해
그러나 에민은 두 번의 낙태를 경험하면서 충격으로 그림을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해
몇 년 후, 친구 루커스의 설득으로 에민은 다시 작업을 시작해
루커스는 조플링에게 부탁해 그녀에게 첫 개인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줘
몇 달 후,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리라는 기대로 에민의 집을 방문한 조플링은 당황해
전시 오프닝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도
에민은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았던 거야
정리되지 않은 에민의 방과 집 안 곳곳은 온갖 쓰레기로 뒤범벅되어 있었고
에민은 언제나처럼 술에 취해 있었어
"집이 예술이군."
조플링은 한마디를 남긴 채 에민의 집을 떠났어
전시 오프닝이 다가오자 에민은
집 안 곳곳에 널려 있던 바로 그 물건들로 갤러리를 가득 채웠어
그리고 개인전의 제목을 '나의 회고전'이라 지어
자신에게 두 번 다시 전시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러나 에민의 첫 개인전은 큰 성공을 거둬
트레이시 에민,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 1995
사치에서 3억 원에 사들인 에민의 작품이야
텐트 안에는 지금까지 에민과 함께 잤던 102명의 이름이
천에 수놓여 있어
남자친구의 이름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낙태수술로 미처 세상에 나오지 못한 아이의 이름까지
에민이 전 생애에 걸쳐서 함께 잤던 모든 이들의 이름이 수놓여 있어
세라 루커스
1988년 <프리즈> 전시에서 한 작품도 팔지 못한 유일한 작가였으나
곧 사치가 기획한 주요 전시에 초대되어 알려지기 시작했어
세라 루커스, 인간 변기
지금 그녀의 사진 작품들은 3~4억 원을 호가할 정도
세라 루커스, 오, 자연스러운, 1994
채프먼 형제
YBA 중 가장 엽기적인 작가로 꼽히는 작가야
채프먼 형제, 죽은 자에 대한 위대한 행위, 1994
19세기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기롯한 에칭 작품을 3차원으로 재현한 작품이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그 폭력은 누가 허락한 것인지를 물어
채프먼 형제, 집합적 가속도, 유전공학적, 탈승화적 리비도 모델, 1996
마크 퀸
마크 퀸, 셀프, 1991
퀸은 1991년 자신의 피로 만든 두상 <셀프>로 단번에 런던 예술계의 스타가 되었어
그는 <셀프>를 제작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신의 몸에서 채혈을 해 총 4,500그램의 피를 모았어
일반 성인의 몸속에 있는 총 혈액량과 거의 비슷한 양이었다고 해
퀸은 자신의 피를 냉동한 후 특수 제작한 냉동고에 넣어 전시했어
퀸은 이런 자기복제 의식을 5년에 한 번씩 수행해
1991년에 만든 원조 <셀프>는 사치가 구입했으나
관리자의 부주의로 냉동고 스위치가 꺼지는 바람에 녹아 없어지고 말았어....
퀸은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며
우리 삶 역시 언제든지 갑자기 끝날 수 있는 유한한 것이며
예술이든 인생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해
2001년에 만들어진 세 번째 에디션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볼 수 있어
YBA의 두 아티스트의 작품을 비교해봤어
여시들은 어떤 작품이 더 마음에 들어 ㅋㅋㅋㅋ?
론 뮤익
뮤익은 원래 TV나 광고용 인형을 만드는 기술자였다가
1995년 순수 예술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았어
상업 현장에서 최고의 테크닉을 훈련받은 그의 조각들은
실제 모델과 너무도 흡사한 섬세한 모델링으로 단번에 미술계의 화제가 되었어
초창기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마담 튀소에 있는 밀랍인형들과 비교하며 강하게 비판했어
"나는 거울처럼 완벽하게 재현한 모델을 만들 수도 있지만
스케일에 변화를 주어 심리적인 의도를 표현하고 싶어요.
그것이 마담 튀소에 있는 복제품들과의 차이죠."
평론가들의 비난은 뮤익의 유명세를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었어
사치가 이런 작가를 놓칠 리는 만무했지
론 뮤익, 죽은 아버지, 1996-1997
자신이 지켜보지 못한 아버지의 운명을 기억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이야
신장은 대략 90cm 정도
누구나 늙으면 심리 상태가 어린아이와 비슷해진다는 이유로 왜소하게 제작했다고 해
론 뮤익, 빅 베이비
뮤익은 집이나 사회에서 차지하는 아이들의 위치를 고려해
아이들은 매우 크게 확대해 작업해
마크 로스코
추상회화의 본질과 형상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마크 로스코야
초기: 1920년대 ~ 1930년대
마크 로스코, 모자를 쓴 여인의 초상화, 1932
이 시기에 로스코는 누드, 자화상, 도시 풍경 등을 주제로
수백 점의 그림을 그려
마크 로스코, 무제, 1920-1930
초기의 로스코는 야외 풍경 등 수채 풍경화를 주로 그렸어
그러나 곧 로스코는 자연의 유기적 곡선보다 도시의 기하학적 구도에 매력을 느끼게 돼
마크 로스코, 지하철 환타지, 1940
때문에 로스코의 그림에서 형상은 갈수록 뒤틀려 나타나고,
이런 특징은 1930년대 말 그려진 <지하철 환타지>에서 확연하게 드러나
<지하철 환타지>는 로스코가
뉴욕 지하철을 인간 소외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탐구한 대표적 작품이야
평면적이고 무표정하면서 지극히 연약한 인물들은
그물망 같은 답답한 지하세계에서 건축적 배경과 뒤섞여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로스코는 프랑스 조각가 자코메티를 엄청 좋아했어
<지하철 환타지>도 자코메티의 영향을 어마무시하게 받은 작품이야)
과도기: 1940년대
그림으로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표현하기를 원했던 로스코는
"이제 누구도 형상을 훼손하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는 때가 왔다"라고 말해
이즈음 로스코는 면 분할된 영역 속에 위치한 반복되는 형태와
심하게 분절된 인간 형상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 ‘무제’와 같은 일련의 회화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탐구하기 시작했어
마크 로스코, 물속 드라마, 1946
이 시기가 진행될수록 마크 로스코의 이미지는 더욱 상징성을 띠고,
‘근원’, ‘물속 드라마’처럼 신체적 변형을 그린 회화로 이행하면서
추상화에 더욱 근접해
마크 로스코, 무제 No.9, 1948
1947년, 순수추상회화로 옮겨가던 과도기 시절에 로스코는
"멀티폼(다층 형상)"이라는 것을 만들어내
멀티폼은 마치 안개가 낀 듯하게
몽롱한 직사각형의 색면의 그림을 말해
멀티폼은 후에 로스코 특유의 고전주의 회화로 변형돼
원숙기: 1950년 - 1970년
마크 로스코, 무제, 1953
1950년경 로스코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해
‘단순한 표현 속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이상을 실현해
마크 로스코, 무제, 1955
이 시기 작품은 보통 1955년작 ‘무제’에서 나타나듯이
두개에서 네개의 직사각형이 큰 색면 위에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는 구도를 보여
이런 형태 안에서 로스코는 폭넓은 색채와 색조 등을 활용해
다양한 분위기와 효과를 녹여내려고 노력했어
마크 로스코, 무제, 1962
리움에서 소장 중인 작품이야
로스코에 관심 있는 여시들은 리움으로 달려가 ㅋㅋㅋㅋ
마크 로스코, 무제, 1957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1957년 ‘무제’에서 볼 수 있듯이 1950년대에 상당히 어두워졌어
마크 로스코, 무제, 1964
특히 생애 마지막 10년동안 몰두했던 벽화작업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져
마크 로스코, 무제, 1968
1968년, 어머니의 죽음과 대동맥류 발병을 겪은 로스코는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던 방식을 버리고
종이에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어
마크 로스코, 블랙과 그레이, 1970
로스코가 생애 끝자락에 그린 그림은
검은색과 회색의 색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 시기에 로스코의 작품 구도는
기본적인 색채, 색조, 색면의 대치구도로 집약돼
마크 로스코, 무제, 1970
그러나 선명한 붉은색으로 가득찬 1970년작 ‘무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 오로지 어두운 색채만이 로스코의 작품을 압도했던 것은 아니었어
1965년, 로스코는 테이트 관장에게 자신의 작품을 기증하고 싶으니
독자적인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해
그는 터너의 작품을 좋아했기에 자신의 작품이 터너의 전시실 옆에 걸리기를 원했어
결국 1968년 테이트 관장이 터너의 전시실과 같은 건물에
로스코의 작품만을 위한 독립적인 전시 공간을 제공할 것을 조건으로 첫번째 기증이 성사되었어
로스코는 직접 전시의 레이아웃과 전시장 벽의 색 샘플까지 본인이 전부 총괄할 정도로
작품 전시에 많은 신경을 썼어
그러나 작품이 런던으로 도착했을 무렵
그는 뉴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테이트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보지 못했어
마크 로스코, 적갈색 위의 검정, 1958
이 작품은 원래 미스 반 데어 로에가 건축한 빌딩 안에 있는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포시즌'에 걸릴 벽화였어
작품이 완성된 후 레스토랑을 둘러본 로스코는
작품과 장소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품 인도를 거부했어
마크 로스코, No.3, 1949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 된다. 작품에 어떠한 설명을 달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의 해야 할 일은 침묵이다."
마크 로스코, No.61, 1953
한번은 미술 비평가가 자신의 작품에 관해 악평을 늘어놓자 그는 이렇게 말했어
"나는 내 작품에 관하여 변호할 의도가 없다. 내 작품은 스스로를 방어한다."
마크 로스코, Four Darks in Red, 1958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봤어
때문에 그는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다고 말해
작품이 스스로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에 관한 설명하는 대신 보는 방법을 이야기해
조명은 어두워야 하고 그림과 관객과의 거리는 45cm를 유지할 것.
로스코는 말해
그 거리에서 작품을 보면 색 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자유를 경험하게 될 거라고
요제프 보이스
독일 현대미술의 신 같은 존재야
보이스는 정치와 사회 문제를 항상 미술과 연관시켰어
수많은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 조각과 드로잉을 통해
그는 정치적 상황과 사회 문제에 적극 개입했어
그는 전체 사회를 거대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인간의 창조력을 옹호했어
그는 누구든 모든 직업에서 잠재적 창조자로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모든 삶의 형태를 예술 작업의 일부로 생각했어
보이스의 예술관은 개념미술, 행위 예술, 환경 미술을 비롯해
독일 신표현주의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어
보이스는 '모든 사람은 다 예술가'라고 주장하면서
강의실 문을 개방해 학생뿐 아니라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했어
때문에 당시 보이스 추종자들이 예술과 철학을 배우기 위해 수백 명이나 몰려들어
강의실은 물론 복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보이스는 이 일로 교수직을 박탈당하게 돼
요제프 보이스, 지방 의자, 1964
낡은 의자 위에 삼각형으로 잘린 지방 덩어리를 올려 놓았어
지방은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기온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해
보이스는 지방이 가진 변화와 전환의 특징을 치유와 생명의 의미와 연관시켰어
그는 지방이 녹아 형태가 변하는 것을 통해
냉기에서 온기로, 정형에서 무정형으로, 규칙에서 불규칙으로,
억압된 상태에서 자유롭고 에너지 넘치는 상태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을 표현했어
1960년대, 보이스는 독특한 퍼포먼스들을 선보이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어
<죽은 산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법>이라는 퍼포먼스에서
보이스는 샤머니즘의 주술사 같은 역할을 연기했어
그는 머리에 벌꿀과 금박을 뒤집어쓰고 발에는 쇠로 창을 댄 신발을 신은 채,
품에 안고 있는 죽은 산토끼에게
미술관 안에 걸려 있는 작품들에 대해 조용히 설명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어
관객은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이스의 퍼포먼스를 관찰했어
토끼는 보이스가 작품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 동물로서
토양, 육화(肉化), 재생, 부활, 정신적 전환 등을 상징해
1974년, 보이스는 펠트 천에 싸여 들것에 실린 채 구급차를 타고
르네 블록 갤러리로 향했어
그는 갤러리 바닥에 건초더미, 펠트 천, <월스트리트 저널> 등을 깔아 놓고
그곳에서 코요테와 3일 동안 생활했어
보이스는 커다란 펠트 천을 두른 채 지팡이만 내놓고
코요테와 대화를 시작했고
코요테가 자신에게 익숙해졌다고 판단되자
펠트 천을 벗고 코요테와 함께 창 밖을 바라보는 등의 퍼포먼스를 펼쳐
3일이 지난 후 보이스는 갤러리에 도착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외부와 일체 접촉하지 않은 채 미국을 떠났어
이 퍼포먼스에서 코요테는 아메리카를 상징해
코요테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던 동물이었는데
백인들이 아메리카를 점령하면서
코요테를 비천하고 교활한 동물로 낙인 찍었어
즉, 코요테는 잃어버린 아메리카의 참모습,
아메리카 땅이 겪은 정신적 충격을 상징해
요제프 보이스, 7,000그루의 오크나무 - 20세기의 끝, 1982-1983
보이스는 시멘트와 콘크리트, 빌딩으로 가득 찬
독일의 중소도시 카셀에 7,000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이상적인 자연의 도시, 숲의 도시로 전환하고자 했어
이 프로젝트는 5년간 지속되었고
1987년 사망한 보이스를 대신해
보이스의 아들이 마지막 7,000번째 나무를 심음으로써 완결되었어
돌기둥은 나무를 한 그루 심을 때마다 치워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여러 미술관에 보내져 영구 안치되어 있어
Joseph Beuys, Table with Accumulator
사람들은 거의 종교적인 열성을 가지고 작품 활동과 설명을 했던
보이스의 유토피아적인 미술관을 다소 귀찮고 곤란한 것으로 받아들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스는 국제적으로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되었어
보이스가 혹자의 평가처럼 주술사 혹은 사기꾼이건
아니면 영웅적인 선지자 또는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이건 간에
보이스는 미술의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던 인물로 기록되고 있어
잭슨 폴록
잭슨 폴록, 연보랏빛 안개 넘버 1, 1950
전쟁의 참상을 겪은 유럽의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이 초래할 수 있는 극도의 광기와 폭력을 목격한 후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문명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버렸어
1차 대전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 2차 대전은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여주며 끝을 맺었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진 그들은
불안과 고독, 상처와 불신을 껴안고 있었어
잭슨 폴록, 자화상, 1931-1935
미국 아티스트들은 칼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이성의 통제와 합리적인 판단에서 도망쳐나온
무의식을 표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냈어
융은 현대인의 기억 어딘가에
과거로부터의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들이 저장되어 있다고 주장했어
그는 집단 무의식 안에 담겨 있는 이미지들이
문명과 물질의 과잉에 지친 현대인의 정신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어
잭슨 폴록, 돈키호테, 1944
초현실주의자들은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가
인간 정신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되었어
그들은 우연히 생겨난 효과,
형식이 없는 자유로운 형태,
계산하지 않은 즉흥적인 구성 등이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믿었어
잭슨 폴록, 원을 자르는 달의 여인, 20세기
잭슨 폴록, 달의 여인, 1942
폴록도 그 중 한 사람이었어
폴록의 초기 작품 <원을 자르는 달의 여인>과 <달의 여인>에 등장하는
기호와 상징적인 이미지는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 등을 보여줘
폴록은 이젤에서 캔버스를 떼어냈어
그는 붓과 팔레트를 버려두고
하얀 캔버스천을 바닥에 펼쳐둔 채
온 몸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잭슨 폴록, 검정색, 흰색, 노란색, 붉은색 위의 은빛, 1948
폴록의 회화 기법을 '액션 페인팅'이라고 불러
'액션 페인팅'은 중국의 대가들이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방식과 흡사해
유럽 회화가 아직 개척하지 못한 영역에 도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어
폴록은 당시 뉴욕에서 유행했던 선 사상의 인기와 맞물려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미국 최고의 스타 작가가 돼
잭슨 폴록, 열기 속의 눈, 1946
잭슨 폴록, 불가사의, 1953
잭슨 폴록, No.20, 1949
사실 '그렸다'는 표현도 적합한 표현은 아니야
'그린다'는 '무엇'을 그리는지 대상이 정해져 있는 반면
폴록은 그냥 그리는 순간의 행위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야
잭슨 폴록, No.33, 1949
잭슨 폴록, No.26A, 1948
폴록은 물감통에 나무 막대와 페인트붓을 여러 개 담아두고
그들 중 랜덤으로 도구를 집어들어 물감을 흩뿌리고 던지고 끼얹었어
잭슨 폴록, No. 5, 1948
글자 그대로 그림 속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림과 더 가까이, 그 일부가 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잭슨 폴록
잭슨 폴록, No .1, 1950
폴록에게 완성된 회화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
그는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은 채
그림 속에서 자신과 그림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어
잭슨 폴록, 하얀 빛, 1954
대부분의 현대미술이 그렇듯
그의 미술을 수용하는 대중이 있는 반면
거부하는 대중들도 많아
잭슨 폴록, 아른아른 빛나는 물질, 1946
1949년 8월, 대중 잡지 <라이프>는
"잭슨 폴록이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미국 화가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해
<라이프>의 답은 YES였어
물론 <라이프>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으나
폴록의 그림은 2006년 14억 달러에 팔리며
여전히 현대미술의 강자 입지를 단단히 다지고 있어
현대미술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글을 쭉 써봤으니
반대로 현대미술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써볼게
미술품 경매에는 딜레마가 있어
미술 작품의 경매가는 단 한 번의 거래에 기반을 두고 있고
거래 행위는 일시적인 수요와 공급의 총합에 따라 움직여
사람들이 이 그림은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평균선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 부르는 최고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야
때문에 경매사가 담합하여 의도적으로 경매가가 높게 낙찰되도록 하는 경우가 있어
특정 작가의 작품을 매입해서 경매를 통해 작품 가격을 의도적으로 상승시킨 후 판매하거나
해당 작가의 작품을 장기간 보관하다가 희소성이 높아질 때 매매차익을 노리는 거야
이로 인해 미술품은 부동산과 같은 투자 대상으로 변질돼
이런 상황이 낳은 투기적 광기는
'최고의 작가'와 '최고로 비싼 작가'를 구분하는 기초적인 감각을 마비시키고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도록 만들어
결국 경매장에서 한 미술품이 사상 최고가로 낙찰되는 순간
미술품의 예술성은 경매가격의 놀라움에 묻히고 말아
과거 미술품 가격은 크기, 재료, 작업 시간, 미술가의 재능에 의해 결정되었어
그러나 현대 미술 시장에서의 가격결정 기준은
예전에 비해 너무 단순화되어버렸지
또한, 고전 작품들은 어느 정도 가격의 평균선이 정해져 있지만
현대 미술품의 경우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 것을, 얼마에 샀는지에 따라
가격의 폭이 널뛰게 돼
가격의 폭이 널뛸 때마다 투자자들의 투기적 광기는 심화되고
미술품의 가치는 미적 가치에서 교환 가치로 전락하고 말아
데미안 허스트의 미적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yBa의 성공이 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yBa는 미술시장의 논리를 반영하는 스타 시스템과
블루칩으로서의 미술 상품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지
예술과 경제가 공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로 변질되고 있는 단면을 분명하게 보여줘
재미도 없고
설명도 지지리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
현대 미술 자료) yba좋아하지만 여시 관점으로 말한 이야기 구구절절 공감된다!!!
미래에서 왔읍니다. 굉장히 흥미돋고 미술의 지평이 넓어졌어 ㅋㅋㅋ좋은 글 고마워
나도 마크 로스크전 보고 이글읽었는뎅 직접가서 보고오니까 뭔가기분이 음...이상했어...분위기때문에그런가...여튼넘좋다이런글!!!전시회근데또가고싶으뮤ㅠ퓨ㅜㅜ
현대미술 와정리 진짜 잘했다 잘읽엇어 고마워 여시야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어 다시한번 정독할게!
언니 글 잘읽었어요 ~~ㅎㅎ오늘 마크로스코 전시회 보고 글 찾던 중에 들어오게 됏엉 ㅎㅎㅎ 앞으로도 계속 글 올려줭 ㅠㅠㅠ 너무 재밋당 고마워~~
오늘 마크로스코전을 보고 정말 알수없는 내 마음속 저 끝에 존재하는 감정을 보고온거 같아 ... 로스코가 관람자에게 바라던것이 이런게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현대미술글 하나 보고 연어하다가 발견했읔ㅋㅋㅋ 채프먼형제 엄청 특이하다;; 근데 이런거 볼 수록 현대미술 공부하고싶어짐 ㄹㅇ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엄청 많이 담겼엌ㅋㅋㅋ글 고마워!
와 재밋다..!
ㅎ핵흥미돋. 고마워
[현대미술] 와 대박...진짜 정독해서 읽었어 고마워 언니!
너무 재밌게 읽었어 고마워 ㅠㅠ
우와 여시 이 글 쓰느라 고생 많았어!!!! 짱이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게 워낙 없었는데 이 글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알고 가네!!! 고마워!
최고야 정말!!!!!!!!!! 너무 재밌었어!!!!!!!!!
여시얌 존경해!
대박이당.....현대미술 공부하고 감 ㅠㅠㅠㅠ감샤!!
잘읽힌다! 재밌었어!!
잘읽힌다! 재밌었어!!
너무 잘 썼다!!! 또 읽으러올게~!!! 쉅시간에 배운작품도있어서 흥미돋ㅎㅎㅎ
[현대미술] 여시야 진짜 재밌어 ㅜㅜㅜㅜ대박 나도 배우는 부분인데.... 여시가 진짜 설명을 잘해준다 고마워>_<
와 여시야 고마워!!!! 재밌었어!!!!
오 흥미돋!!!
정말 잘 읽고 갑니다 ♥︎
와.... 미술 좋아만하고 공부하려는 건 1도 없었는데 이거 읽으니 재밌다...!! 잡지같은거 구독하면 이런거 더 알 수 있을까??
여시 너무 재밌다
ㅜㅜㅜ더읽구 싶은데
와씨 완전 흥미롭다 진짜 .. 본인 피로 작품 만든거 ㄹㅇ광기다
너무 재밌다 긴 글인데 완독했어
넘 잘읽었어!! 작품들 진짜 충격적인거 많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2.03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