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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은, 최경주, 김대중, 김영삼….
스포츠와 정치 분야에서 최정상에 오른 이들의 공통점은 섬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뭍이 아닌 섬 출신이라는 사실!
지난 3월 9일 PGA투어 혼다클래식에서 우승한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씨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출신이다. 한국 골퍼로는 최경주(39·나이키골프)씨에 이어 두 번째로 PGA를 정복한 양용은. 그는 자신이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제주도가 바람이 많은 섬이니 ‘바람의 아들’은 곧 ‘제주도의 아들’이라는 뜻 아닌가.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프로골퍼 양용은씨의 롤모델(역할모델)은 최경주였다. 최경주씨는 전라남도 완도 출신. 똑같이 섬 출신이었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골프를 독학으로 배웠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닮았다.
뚝심과 집념의 골퍼
닮은꼴 최경주와 양용은
고교 졸업 후 밑바닥 생활을 거쳐 20대 중반에 프로골퍼가 된 양씨. 그의 목표는 ‘최경주 따라하기’였다. 선배 최경주가 가는 길을 그대로 가고 싶어했고, 선배 최경주가 달성한 업적을 역시 자신도 이루고 싶어했다. PGA에 최경주가 없었다면 양용은은 PGA의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골퍼 최경주는 양용은의 희망이고 목표였다.
많은 한국의 프로골퍼들이 PGA 우승에 도전해 왔다. 그러나 PGA 우승을 실현한 사람은 완도 출신과 제주도 출신 두 사람뿐이었다.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뭍 출신보다 강한 권력 의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직선제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5인. 이들의 출생지는 서울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 변방(邊方)이었다. 바닷가나 산골 출신은 대체로 도회지 출신보다 권력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만큼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들 전·현직 대통령 다섯 명 중 두 사람이 섬 출신이다. 섬은 변방 중에서도 극지에 가깝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남 거제도. 지금이야 연륙교 거제대교로 인해 사실상 육지화되었지만 섬은 섬이다.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세운 건 이 섬이 육지로부터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
절박함이 강인함의 원천
김민배 조선일보 부국장은 전남 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민배 부국장은 섬 사람의 특질과 관련 “섬 사람들은 더 이상 도피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을 갖고 산다”고 설명한다. 김 부국장은 PGA를 제패한 양용은과 최경주가 섬 출신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분석한다.
“두 사람은 특별히 섬 출신 중에서도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골프장 주변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몰려있었다. 골프 아니고는 먹고살 게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골프가 장래성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골프를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절박함이 오늘을 만들었다. 골프가 아니면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절박함이 골프로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전남 순천에서 개업하고 있는 김도형 변호사는 여수시 화정면 개도(9.5㎢) 출신이다. 김도형 변호사는 “순천 사람 중에도 개도라는 섬이 있는 줄 모른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개도에서 중학교까지 마쳤다. 당시 중학교 졸업생은 모두 67명. 김도형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대를 거쳐 변호사가 되었다. 그의 말에는 여전히 향어(鄕語)의 억양이 강하다. 김 변호사는 섬사람은 태풍으로 인해 강인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남해안 섬은 태풍이 많은데 논밭이 부족하다. 한번 태풍이 오면 모든 걸 쓸고 간다. 논농사는 벼가 서 있는 상태에서 알곡이 없어져 버린다. 태풍이 지나가면 못살 것 같아도 또 잡초처럼 일어나 살아나가는 것이 섬사람이다. 어려움이 와도 섬 사람들은 또 일어서야 하고 또 일어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자건 여자건 생활력이 강할 수밖에 없다. 섬에서 태어나 자라면 누구나 강인해진다.”
섬사람들은 대개가 어업, 농업 등과 같은 1차 산업에 종사한다. 이들의 자녀는 부모가 육체노동으로 힘들게 생계를 꾸리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다. 여기까지는 산간벽지 출신과 다를 게 없다. 여기에 섬 출신들은 어려서부터 거친 바닷바람과 태풍을 맞으며 수평선 저 너머의 세상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갖는다.
통영항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섬이 한산도다. 충무공 이순신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로 시작되는 시를 남긴 한산도. 이 섬 뒤쪽에 있는 섬 중에 용초도(3.3㎢) 가 있다.
한국가스공사 정광윤 감사는 한산면 용초도가 고향이다. 용초도에서는 한산도가 앞을 가로막아 통영이 보이지 않는다. 정광윤 감사는 용초도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마산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마침내 어릴 적 꿈을 이뤘다. 정 감사는 “섬 사람은 살기 위해선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육지 사람에 비해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정 감사는 “나 역시 육지로 가고 싶다는 열망을 태어나면서부터 가졌지만 쉽게 갈 수가 없으니 그게 어린 시절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섬에서 벗어나려면 도시로 가야하고 또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어려서부터 가졌다”고 말한다.
17대 의원을 지낸 김명주 변호사도 용초도 출신이다. 통영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4년 37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8대 총선에선 공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고향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다. 그가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시절부터였다.
“정치에 뛰어들어야겠는데 나이도 있고 해서 2002년 도의원부터 시작했다. 정치 수업을 하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했다. 원래는 18대 국회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와서 17대에 당선되었다.”
당시 그가 도의원에 당선된 것은 화제가 되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변호사가 도의원 출마를 자청했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기질과 관련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경쟁의식이 몸에 배었고 권력 지향적인 성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섬사람 숙명 같은 가난
“밑져야 본전” 배짱 키워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3선·양천갑)은 제주도 서귀포 출신이다. 원희룡 의원은 양용은씨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원희룡 의원이 여주지청 검사로 있을 당시 양씨가 여주CC 연습생으로 있었다. 원 의원은 당시 여주CC 박경구 프로와 친하게 지냈는데 이때 연습생 중의 한 명이던 양씨를 만났다. 원 의원의 말이다.
“그때 양 선수는 막노동을 하면서 연습생으로 있었다. 고향 후배이기도 해서 자주 만났다. 본인이 고생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눈물 없이는 도저히 못 듣는 이야기였다. 그는 밑바닥보다도 더 아래인 진짜 생밑바닥에서 먹고살기 위해 살아왔다. 내가 알기로 최경주보다도 훨씬 더 고생한 것으로 안다.”
원희룡 의원은 섬사람의 기질과 관련, 흥미로운 설명을 한다. 원 의원은 “섬 사람은 숙명적으로 가난하고 약하다는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어차피 밑질 게 없으니까 큰 것에 도전하는 배짱을 갖게 만든다”고 말한다.
“섬에서 조금 더 큰 섬에 진출하는 건 의미가 없다. 제주도에서 볼 때 서울로 가나 베이징으로 가나 마찬가지다. 코르시카 출신인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는 것이나 유럽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
이 말에서 육지 출신인 기자는 비로소 양용은과 최경주의 핏속에 흐르는 개척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섬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의 성공 가능성은 도회지에서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교육·문화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곳이 섬이다. “어릴 때 책을 읽고 싶어도 도서관이 없는 게 가장 답답했다”는 정광윤 감사의 이야기가 이를 반영한다. 이제는 섬에도 인터넷이 깔려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섬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인생에서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역사를 바꾸는 사람은 인생의 벼랑 끝에 가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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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맞는 말씀입니다 나폴레옹도 섬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