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3월 26일,
31세 청년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일제로부터 부당한 재판을 받을 때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던 안 의사는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밝히며
대한 독립을 주장했고, 동양의 나라들이
힘을 합쳐 평화를 이루어 낼 것을 염원했다.
그로부터 100년 뒤인 2010년 3월 26일,
서해를 지키던 '천안함'이 백령도 해상에서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으로 침몰하면서
꽃다운 청년 46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전우를 구하기 위해 구조 활동을 벌이던
한주호 준위도 뒤이어 순직했다.
국민은 충격에 빠졌고 눈물 흘렸다.
그동안 깨닫지 못하던 분단국가의
불완전한 평화를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보의식을 다잡았다.
100년을 사이에 두고 우리 역사에
큰 의미를 남긴 두 사건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국가보훈처가 작년 11월 전국 15세 이상 남녀
1000명에 대해 실시한 나라 사랑 의식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 68.6%가 안보 상황에 관심이 있고
51.5%가 안보 상황을 우려하고 있으며,
77.9%가 체계적인 안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6%는 우리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75.5%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한편, 나라 사랑에 대한 인식은 2030세대가
약 60점에 그치나 5060세대는 80점을 웃돌아
세대 간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이는 정전 이후 끊이지 않는 북한의 위협,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우경화 일로(一路)를
걷고 있는 일본 정부, 한반도 평화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강대국들의 예측할 수 없는 행보 등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우리의 안보 여건이
반영된 결과이다.
국민이 국가와 안보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아직까지 전반적으로,
특히 전후(戰後) 세대를 대상으로 한
나라 사랑 교육이 절실함을 알 수 있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기와
천안함 피격 4주기가 되는 날이다.
안 의사와 천안함 용사들과 한주호 준위를
잠시나마 떠올리는 시간, 이날의 의미와 정신을
국민 여러분이 잊지 않길 바란다.
2009. 11. 10 - 대청해전
2009년 11월 10일,
북괴 경비정이 NLL을 불법 남하(南下)하는 것을
발견한 대한민국 해군은 참수리급 고속정 4척과
울산급 호위함 1척을 보내 이를 방지하게 한다.
국군은 북괴 경비정에 5차례 경고방송
(속히 북으로 돌아가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괴는 이를 무시하였다.
이에 국군은 경고사격을 개시하게 되는데
국군의 공격을 받은 북괴군 또한 반격에 나서
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괴군은 해전에서 패하여
8명의 사망자를 내고 함정이 반파된 채로
배를 돌려 도주하기에 이른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 해군에서는
아무런 피해가 나지 않아
제1차연평해전 때처럼 대승을 거두게 된다.
※ 제1차연평해전 때 교전수칙 :
경고방송 - 경고사격 - 격파사격
※ 제2차연평해전 때 교전수칙 :
경고방송 - 시위기동 - 차단기동 - 경고사격 - 격파사격
※ 대청해전 때 교전수칙 :
경고방송 - 경고사격 - 격파사격
※ 시위기동 :
적함에 근접하여 다시 한 번 경고방송을 함
※ 차단기동 : 적함에 몸통박치기...를 해서
밀어내기식으로 몰아내려 함
※ 교전수칙 : 제2차연평해전에서의 교전수칙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다시 원래대로 개정됨
북괴에서는 후계자가 정해지면
그 대상을 우상화하는 작업을 치루게 되는데
김정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그들은 대청해전에서의 복수를 위해,
김정은의 '업적'으로 포장할 사건을 계획하게 되는데
김정은을 위해 북괴가 꾸민 사건 중 하나가
천안함 피격사건이다.
※ 같은 예로 김정일은 1인자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KAL기 폭파사건을 지휘했었다.
2010. 3. 26 - 천안함 피격사건
-2010년 3월 26일 - 21시 22분(오후 9시 22분)-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사령부 소속 천안함(PPC-772)이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침몰한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사건 발생 6분이 지난
21시 28분에 천안함의 침몰 상황을 접수하였고
21시 30분에 대청도에 있던 고속정편대를
천안함이 침몰한 지역으로 보내 수색을 지시한다.
-2010년 3월 26일 - 22시 10분(오후10시 10분)-
생존자 수색에 나선 구조대는 현장에 도착하여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한 활동을 개시한다.
이에 구조 활동 개시 18분이 지난 22시 28분에
첫 생존자를 구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23시 13분까지 총 58명의 생존자를 구조하게 된다.
-2010년 3월 26일 - 22시 30분(오후 10시 30분)-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에는
갑호비상령이 내려졌고
동해지방해양경찰청에는 을호비상령을 내리게 된다.
※ 갑호비상령 : 계엄령이 선포되기 전의 상태에서 발령
--> 경찰 전원 비상근무
※ 을호비상령 : 집단사태로 인한 치안이
악화되었을 때 발령 --> 경찰 50%가 주야간 비상근무
해양경찰청에서 비상령을 발령한지 20분이 지난
22시 50분에는 대한민국 경찰청에서 수도 서울과
북괴와 대치하고 있는 인천·경기·강원지방경찰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한다.
-2010년 3월 27일-
정운찬 국무총리는
"초계함 침몰 사고는 국가 중대사태이다."라고
말하였고, 행정안전부를 통해 전국의 공무원들에게
총대기령을 내리고 혹시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였다.
공무원 총대기령은 2004년 노무현 前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당시에 발령된 이후
6년만에 다시 발령되었다.
※ 이때(2010. 3. 27)까지 국군은 천안함 사건이
북괴의 소행임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2010년 3월 27일-
정운찬 국무총리에 의해 대한민국 공무원들에게
총대기령이 발령되었을 때 미국은 구축함 2대를
서해에 파견하여 북괴의 도발을 대비하며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으며, 대한민국은 잠수요원
18명을 보내 탐색구조작전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2010년 3월 28일-
대한민국 해군 소속 기뢰탐색함 옹진함(MSH-572)이
음파탐지기로 천안함의 함미(艦尾)를 찾아냈고
하루가 지난 2010년 3월 29일에는 기뢰탐색함
양양함(MSH-571)이 음파탐지기로
천안함의 함수(艦首)를 찾아냈다.
대한민국 해군은 생존자들이 아직 남아있을거란
실낱같은 희망에 천안함 함미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한다.
※ 함미(艦尾) : 배의 꼬리, 배의 뒷부분
※ 함수(艦首) : 배의 머리, 배의 앞부분
국군은 옹진함과 양양함의 공으로 천안함이
침몰한 지역을 정확히 알아냈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수색작업을 벌이게 되는데
그만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고 만다.
그 불의의 사고란 바로 사진에 보이는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폭파대(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수색작업 중 그만 실신한 것이었다.
이에 그는 급히 미국 해군 구조함 살바(SALVOR)로
이송되어 응급조치를 받았으나 끝내 전사(戰死)하고 만다.
-2010년 4월 1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사건 당일(2010. 3. 26)
21시 21분 58초에 1.4~1.5도 규모의 진도를 감지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다이나마이트 170kg이 폭발한 것과 같은 수치였으며
이 발표로 대한민국은 북괴군의 소행이라는 것에
점점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2010년 4월 2일-
실종된 신선준 중사의 아버지인 신국현 씨는
2010년 4월 2일 아침에 평택시 해군 제2함대
동원예비교육대 식당에서 2인분의 식사를 주문하고서는
자신의 앞에 식판과 수저를 배치했다.
그러나 신국현 씨의 앞에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국현 씨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생일 축하한데이.
밥 많이 무그라."
이 날은(2010. 4. 2) 신선준 중사의 생일이었다.
-2010년 4월 2일-
천안함 사건 수색에 나섰던 민간인 어선 98금양호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캄보디아 화물선인 타이요호에 의한 충돌로
발생한 사건인데 타이요호는 사건 발생 직후
도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타이요호는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난 4월 3일,
대한민국 해양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2010년 4월 3일 - 18시 10분(오후 6시 10분)-
수색작업에 나선 해난구조대(SSU) 소속 석규주 중사와
송하봉 중사는 천안함 함미 부분 식당 안에서
남기훈 상사의 시신을 발견했다.
남기훈 상사는 아내에게는 한없이 자상하였으며
세 아들에게는 다정하고 존경스러운 아버지였다.
그에게는 아들 남재민 군, 남재현 군,
남재준 군이 있는데 남재준 군은 사건 당시
3세의 어린아이였다.
남재준 군은 아버지가 실종자 명단을 보도하는 TV에
아버지의 사진이 나오면 아무 것도 모른채로
"텔레비전에 아빠가 나왔다"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남기훈 상사의 부인이자 세 아들의 어머니였던
지영신 씨는 그 모습에 오열하고 말았다.
-2010년 4월 3일 - 21시 45분(오후 9시 45분)-
천안함 사건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정말 어려운 결단을 내려 기자회견을 열게 된다.
"더 이상의 인명 구조와 수색작업에 대한 중단을
군에 요청했습니다."
이는 한주호 준위의 전사와 98금양호의 실종 사실,
남기훈 상사의 시신 발견 소식을 접하고서
추가적인 피해를 원치 않으며 실종자들이
살아있으리라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해군은 실종자 가족협의회의 결단을 받아들이고
2010년 4월 4일부터 천안함 인양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2010년 4월 7일 - 16시 경(오후 4시 경)-
해난구조대(SSU) 대원들은 천안함 함미
기관조종실 부근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김태석 상사는 중사로 천안함에서 복무 중이었다.
2010년 4월 1일, 김태석 중사는 해군 상사로
진급하게 되었는데 이에 김태석 상사의 부인인
이수정 씨는 말했다.
"사고만 없었으면 어제 살아서 상사 계급장을 달고
정말 좋아했을 텐데…."
-2010년 4월 8일-
천안함 사건 생존자들과 실종자들의 가족들 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실종자들의 가족들은 생존자들에게
실종된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묻기도 하였고
동료를 구하지 못한 채 혼자서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빠져있는 그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만남의 장은 눈물의 바다, 그 자체였다.
-2010년 4월 11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규명하기 위한
민군합동조사단이 발족했다.
-2010년 4월 15일-
국군은 침몰한 천안함을 인양하는데 성공했다.
천안함은 곧바로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이송되었고
곧 실종되었던 장병들 중 36명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으나
8명의 장병들은 아직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실종 상태였다.
-2010년 4월 15일 현재 실종자 상황-
시신 발견 - 38명
시신 미발견 - 8명
총 46명
-2010년 4월 17일-
북괴는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와 군을 비난했다.
"남조선 괴뢰군부 호전광들과 우익 보수정객들은
침몰 원인을 규명할 수 없게 되자
불상사를 우리와 연계시켜 보려고
어리석게 획책하고 있다."
"역적패당은 최근 외부 폭발이 어뢰에 의해
일어났고, 어뢰는 우리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에 의해
발사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북 관련설'을
날조하여 유포시키고 있다"
-2010년 4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장병들을 가슴에 새기며'
라는 주제로 전사한 장병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2010년 4월 22일-
천안함 연돌(굴뚝) 안에서 박보람 하사의
시신이 발견된다.
박보람 하사는 다리가 편찮으신 어머니의
병원비를 모았었던 효자였다.
-2010년 4월 24일-
국군은 천안함의 함수를 인양하는데 성공한다.
국군은 함수에서 수색작업을 개시,
자이로실에서 박성균 하사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의 아버지는 운수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안전운전 하시는지 매번 걱정이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문안을 여쭙던 효자였다.
※ 자이로실 : 항법을 결정할 방위와 배가
기울어진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하는곳
국군은 박성균 하사의 시신을 찾아낸 것을
마지막으로 하여 2010년 4월 24일 19시 22분
(오후 7시 22분) 수색작업을 종료하였다.
이창기 원사, 최한권 상사, 박경수 중사, 장진선 하사,
강태민 일병, 정태준 이병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46인의 용사에 대한 영결식이 진행되었다.
영결식에는 민주노동당 대표 강기갑도 참석하였는데
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님이 강기갑에게 전했던
말씀을 옮겨본다.
"쟤들이 왜 죽었습니까?
이북놈들이 죽였어요.
주면 무기만 만들어서…."
"누구 좋은 일하라고 우리 국민 더 죽으라고
이거(대북지원) 주장하십니까.
정치만 잘 하세요…."
사건 이후
-2010년 5월 19일-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은 백령도 부근에서
한자가 쓰여있는 어뢰 파편을 찾아냈고
이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漁-3G 어뢰라고 발표하였다.
漁-3G 어뢰는 북괴군이 사용하는 음향어뢰였다.
이에 다음 날인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사건은 북괴의 소행'
이라고 최종 결론을 짓게 된다.
-2010년 5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담화문을 발표한다.
"우리는 천안함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好戰的(호전적)인 집단과
대치하고 있다는 현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3.26 천안함 사태’ 로 유엔헌장을 위반하고,
정전협정, 남북기본합의서 등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기존 합의를 깨뜨렸습니다"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代價(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에 북괴는 애써 자신들의 소행이 아님을 강조했다.
1. 우리는 130t 연어급 잠수정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2. 우리는 어뢰 번호를 '호'라고 하지, '번'이라고 하지 않는다.
3. 합동조사단에는 한국과 친한 나라들만 포함되어 있다.
이에 국방부는 북괴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1. 우리는 북한이 보유한 연어급 잠수정
정찰위성 사진을 갖고 있다.
2. 2003년 입수한 북한의 시험용 어뢰에도 '4번'이라고
손으로 쓴 어뢰가 있다.
3.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나라 중 스웨덴은 중립국이다.
더 나아가 1996년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참여,
대한민국에 남파되었다가 귀순한 간첩 이광수도
북괴에 반박하기를
1. 나는 북에 있을 때 130t급 연어급 잠수함 4척을
본 적이 있다.
2. 잠수함을 부를 때는 '번'이라고 부르지만
부품은 '호'로 표기하였다.
-2010년 6월 29일-
대한민국 국회는 '북한의 천안함에 대한 군사도발 규탄 및
대응조치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게 되는데
총 237명의 의원이 참석하여 164명의 의원이
찬성표를 던져 대북결의안은 통과된다.
-찬성표를 행사한 정당과 의원 명수-
한나라당 144명
자유선진당 9명
미래희망연대 7명
국민중심연합 1명
무소속 3명
이에 반해 70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반대표를 행사하였는데
민주당 의원 69명과 진보신당 의원 1명이었다.
강기갑 곽정숙 권영길 이정희 홍희덕 이상
민주노동당 소속 5인은 일부러 표를
행사하지 않기 위해 이날 회의에 불참하였다.
웃기는 대한민국
정범구 병장은 천안함 피격 당시 선체 내에 있었고
결국 전사(戰死)하였다.
정 병장의 부모님은 정 병장이
두살 어린아이였을 때 이혼하셨는데
정 병장의 어머님은 위자료 한 푼 받지 않고
홀로 아들을 키워오셨다.
그런데 국가는 전사자보상금을 정 병장이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까지 지급하였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아들의 영결식에
참석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들의 죽음으로 지급된 보상금
1억을 챙긴 것이었다.
정 병장의 어머니인 심복섭 씨는
자신이 지급 받은 보상금 1억을 아들의 모교인
강원대학교에 전액 장학금으로 기부하였다.
신선준 상사의 사연 또한 분노를 느끼게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한 번쯤 그 동영상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26년 만에 나타나 전사자보상금을 챙기고서도
자신에게 항의하는 딸에게 호통치는
어느 여자의 동영상을...
신선준 상사의 어머니되는 사람은
1983년 두 명의 자식을 내버려둔 채 야반도주하였고
현재는 재혼하여 자식을 낳아 편안히 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항의 전화를 한 친딸
(신선준 상사의 친누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버렸다는 이유로 이렇게
질질 끌려 다녀야겠냐?"
나라를 위해 산화한 그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이상한 어머니의 추악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박경수 상사의 전사 소식 또한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그는 2002년 6월 29일, 북괴의 도발로 발생한
제2차연평해전에서 참수리 고속정 357호에
탑승하고 있었으며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무쌍하게 북괴군을 향해 응전하였고
결국 북괴군으로부터 이 바다를 지켜내었다.
박 상사는 연평해전 당시의 충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겪었으나
끝내 이를 극복하고 다시 배에 승선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그는 천안함 사건 당시
북괴군의 공격에 의해 전사(戰死)하고 만다.
애석하게도 국군은 그의 시신을 찾아내지 못했다.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초중고등학생들
37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발표를 믿는 자는 73명(19.3%)에 불과했다.
2012년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있었던 때에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경선후보 김지윤은
제주해군기지를 '제주해적기지'라 칭하며
해군의 명예를 훼손하였었다.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애국 국민들의 심정은...-
772함 나와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린다.
칠흑의 어두움도 서해의 그 어떤 급류도
당신들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작전지역에 남아있는 772함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772함 나와라.
가스터어빈실 서승원 하사 대답하라.
디젤엔진실 장진선 하사 응답하라.
그대 임무 이미 종료되었으니
이 밤이 다가기 전에 귀대하라.
772함 나와라.
유도조정실 안경환 중사 나오라.
보수공작실 박경수 중사 대답하라.
후타실 이용상 병장 응답하라.
거치른 물살 헤치고 바다위로 부상하라.
온 힘을 다하며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
772함 나와라.
기관조정실 장철희 이병 대답하라.
사병식당 이창기 원사 응답하라.
우리 UDT가 내려간다.
SSU팀이 내려갈때 까지 버티고 견디라.
772함 수병은 응답하라.
호명하는 수병은 즉시 대답하기 바란다.
남기훈 상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중사, 박보람 하사,
이상민 병장, 김선명 상병, 강태민 일병, 심영빈 하사,
조정규 하사, 정태준 이병, 박정훈 상병, 임재엽 하사,
조지훈 일병, 김동진 하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중사,
최한권 상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하사,
박석원 중사, 이상민 병장, 차균석 하사, 정범구 상병,
이상준 하사,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병장,
안동엽 상병, 나현민 일병,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하사, 김선호 일병, 민평기 중사, 강 준 중사,
최정환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 중사.
호명된 수병은 즉시 귀환하라.
전선의 초계는 이제 전우들에게 맡기고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대한민국이 부여한 마지막 명령이다.
대한민국을 보우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아직도 작전지역에 남아 있는
우리 772함 수병을 구원하소서.
우리 마흔 여섯 명의 대한의 아들들을
차가운 해저에 외롭게 두지 마시고
온 국민이 기다리는 따듯한 집으로 생환시켜 주소서.
부디 그렇게 해 주소서.
조국은 그대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다시 명복을 빌며...
<참고한 자료 출처>
대한민국 해군 - '천안함 피격사건'
김덕규 교수 -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
위키백과 - '천안함 침몰사건'
동아일보 - '천안함 순직-실종 장병 스토리'
[TIP]
무슨 의미일까?
원숭이도 아리송해???
하여간 개도 웃고 소도 웃을 일이네...
재인이도 웃는다...
에잇,
정희야, 엿이나 드삼!
(천안함 4주기 추모 인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