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전 [김사인]
처마 밑에 쪼그려
소나기 긋는다
들어와 노다 가라
금칠갑을 하고 앉아 영감은
얄궂게 눈웃음을 쳐쌌지만
안 본 척하기로 한다
빗방울에 간들거리는 봉숭아 가는 모가지만 한사코 본다
텃밭 고추를 솎다 말고
종종걸음으로 쫓아와 빨래를 걷던
옛적 사람 그이의 머릿수건을 생각한다
부연 빗줄기 너머
젊던 그이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
소나기 오고 마음이 조급해져도 이승은 놀 새가 없다.
허공에 쏘아올린 공과 같아서 떨어질 때까지는 놀거나 쉴 수가 없다.
글쎄, 다음 세상을 가본 적이 없으니
그 세상은 놀거나 쉴 수 있고, 행복만 있거나 불행만 있거나
아니면 이승과 똑같은지는 알 수 없는 게다.
이승에서의 삶을 길게 늘이면
좋았던 때도 있는 법이다.
부연 빗줄기 너머로 예뻤던 그사람이 떠오르는 건
그땐 그랬지, 행복했었지, 좋았었었지,인 게다.
빗방울에 간들거리는 봉숭아보다는 처지가 좋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개똥밭을 구르는 것이 마땅한 줄 아뢰오.
첫댓글 나이드니 추억이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기쁨만 사는 맛이라 여겨졌는데
슬픔의 힘도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됩니다
희노애락이 없으면 밋밋한 삶이 되겠죠.ㅎㅎ
그땐 그랬었지,하는 것들이 많으면 행복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요.
늘 함께 하며 큰 힘들을 주고 받자구요.^^*
개똥밭을 굴러줄 누군가가 있어야죠.. 같이 굴러줄,, 시가 같이 굴러주겠지요
개똥이 묻은 숭고한 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