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사에서
씻을 수 없는 한국전쟁(1950.6.25~1953.7.27)의
상처는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형제끼리 총구를 겨누기를 3년..
그 슬픔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고,
이 사진들은 미 메릴랜드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것 중에서 오마이뉴스의
박도 기자님이 가려 뽑은 것입니다. 날짜와 지역은
사진 뒷면에 있는 설명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덧붙였습니다 .
강추위 속 1951년 1·4 후퇴 행렬 |
▲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
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 1950. 8. 20. 경북 어느 지역,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가재도구를 이고 있는 여인은 내 고모 아니면 이모일지도.
"같이 갑세" "퍼뜩 안 오고 머하노. 쌕쌕이가 벼락친데이.
싸게싸게 따라 오이라."
▲ 1950. 8. 23. 경남 함안, 기차를 타기 위해 늘어선 피난민들.
할아버지 등에는 온갖 가재도구가 짊어져 있고, 오른 손아귀에는
손자가 잡혀 있다
▲ 1950. 8. 23. 경남 함안, 기차표를 사고자 늘어선 피난민들로
남녀노소없이 피난 봇짐을 이고 지고 있다
▲ 1950. 8. 23. 경남 함안,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꼭 필자의 고향(구미) 마을 같다.
온갖 가재도구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진 피난민 행렬.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뙤약볕 속의 피난 길. 어데로 가야 목숨을 부지할지.
▲ 1950. 8. 24. 경북 왜관 부근. "피난 간 새 지발 집이나 무사해야 할 건데...
"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할배, 어데 갑니까?"
"나 집에 간다." "못 갑니다." "와! 나 죽어도 내 집에서 죽을란다. 어이 비켜라."
▲ 1950. 8. 25. 장소 미상, 기총소사에 쓰러진 피난민들.
"이렇게 객사할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죽을 걸."
▲ 1950. 9. 6. 경북 칠곡 다부동, 가도 가도 끝없는
피난 행렬. 위정자를 잘못 만난 불쌍한 무지렁이 핫바지 백성들이여
▲ 1950. 9. 27. 전주,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
▲ 1950. 9. 29. 충주, 마을 주민들이 학살의 현장을 파서 시신을 획인하고 있다
▲ 1950. 9. 30. 진주, 한 소년이 씨 레이션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다
▲ 1950. 10. 10.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 1950. 10. 10. 함흥,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 1950. 10. 13.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저 올리고 있다
▲ 1950. 10. 19.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 1950. 10. 1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1950. 10. 19. 함흥, 학살에는 남녀가 없었다.
가마니 위에 늘려 있는 여자 시신들
▲ 1951년 2월 담양. 대나무숲과 담양천을 배경으로 씁쓸히 앉아 있는 포로들
▲ 1949. 3. 제5차 소련최고 회의에 참석한 김일성(오른쪽 끝)과
박헌영(김일성 바로옆 안경쓴 사람)
▲ 1945. 8. 평양 붉은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스탈린과 김일성을 환호하고 있다
▲ 1949. 9. 6. 미군사고문단이 국방경비대에서 기관총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 1950. 7. 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파병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 1950. 8. 미군 포로들이 서울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 1950. 8. 원산, 북한군 선전 벽보.
▲ 1950. 11. 21. 압독강변의 혜산진까지 올라간 국군과 유엔군.
▲ 1950. 12. 3. 평양,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넘어 남하하는 피난민 행렬.
▲ 1950. 12. 9. 중공군의 참전으로 혹한 속에 후퇴하는 유엔군
▲ 1950. 9. 27. 전주, 학살된 시신의 사진만 남이 있고 가해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구천을 헤매는 그들의 원혼에 묵념을 드린다 . 고히 잠드소서.....
*** 우리의 祖國 - 大韓民國이여 永遠히 빛나라 ! ***
첫댓글 여기서도 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