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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4:1
불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멈추면 무너지고 뒤쳐질 것 같아서 위기의 시대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힘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유다도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 보다 야곱의 군대를 더 현실적으로 여겼습니다. 두려움은 기억을 희뿌였게 만들었고 이제는 애굽을 피난처처럼 붙들게 합니다. 공주야! 우리는 정의가 승리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꼭 그런 것 같지 않다. 불의가 득세하고 불의한 자가 더 잘산다.
Anxiety moves people. Because if we stop, we will collapse and fall behind, people in every age of crisis seek out visible power. Even Judah, faced with the threat of Assyria, regarded Jacob’s army more realistically than God. Fear has turned memory into a blight, and now it clings to Egypt as a refuge. Princess! We say that justice prevails, but in reality, it doesn’t seem to be necessarily the case in the world we live in. Evil rules, and the unjust prosper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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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에 또 억울함이 더해지는 일도 많다. 정의는 아직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다. 이것을 믿지 않기가 믿기보다 쉽다. 세상의 힘은 눈에 보이고 하나님의 힘은 보이지 않고, 세상의 나라는 망하지만 또 다른 나라가 쉴 새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한 힘에 의한 다른 힘의 승리와 패배라고 보는 것이다. 믿음은 그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모든 믿음의 시작이다.
There are also many times when one sense of injustice adds to another. Does justice still exist? God is the sovereign Lord of the whole world. It is easier to not believe this than to believe it. Because the power of the world is visible, and the power of God is invisible, the kingdom of the world may fall, but another kingdom rises without pause. Therefore, it is seen not as God’s work, but as the victory and defeat of one power by another, all by one force. Faith is believing that there is God’s work behind it. This belief is the beginning of all b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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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창조,그분의 심판, 그분의 구원은 한 개인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하고 있다. 이것을 믿어야 내 신앙이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으며, 이 사회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구할 수 있다. 에돔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을 위해 정의를 행하시는 것이다. 그들을 향한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를 능가한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살라질 것이다. 그 땅에는 두고두고 사는
자가 없을 것이며, 오직 들짐승과 날짐승의 거처로 변할 것이다.
His creation, His judgment, and His salvation are not directed toward a single individual, but toward the whole world. By believing this, one can ensure that my faith does not remain confined to a personal or psychological dimension, and that God’s reign may come upon this society and the world. God’s judgment against Edom is carrying out justice for Israel. Judgment against them surpasses that against Sodom and Gomorrah. It will be burned by a fire that will never go out. No one will ever live there; it will become a dwelling place for wild animals and birds of p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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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없는 삶, 하나님의 백성을 무시하고 배반하는 삶은 창세 전 혼돈과 공허(1:2)로 돌아가 그들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전략할 것이다. 하나님을 삶에서 지운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간주될 것이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입이 명령하였고, 하나님의 영이 모으신 것이니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만약 성경의 예언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그분의 역사주권이 허언이었다면 하나님 나라는 없다. 그런데 아니다.
A life without God, one that disregards and betrays God’s people, will return to the pre creation chaos and emptiness (1:2) and strategize as if they too do not exist. Those who have erased God from their lives will be regarded as if they do not exist. This prophecy was commanded by the mouth of God and gathered by the Spirit of God, and it will surely come to pass. If the prophecies of the Bible had not come to pass, then the Bible is not God’s Word. If His sovereignty over history was a lie, then there is no Kingdom of God. But that's no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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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말씀대로 이뤄졌다. 역사는 그분의 뜻대로 나아가고 멈추고 있다. 우주와 역사에 대한 그분의 섭리와 경륜에 대한 신뢰가 오늘 일상에서 나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나의 기도를 결정하고, 나의 삶의 목표를 결정 한다. 불안의 시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나는 불안을 넘어 신뢰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하는가?
It came true as he said. History moves and pauses according to His will. My trust in His providence and providence over the universe and history determines the way I live my daily life today, shapes my prayers, and sets the goals of my life. In an Age of Anxiety, Who Should We Trust? Do I choose to move beyond anxiety toward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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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심판(1-4)
a.민족들의 소환:1
b.민족들에 진노하신 여호와:2-4
에돔의 심판(5-15)
a.여호와의 칼:5-8
b.들짐승의 소굴이 된 에돔:9-15
심판의 확실성(16-17)
a.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에돔의 멸망:16
b.들짐승의 몫이 될 에돔: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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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이여(1a)
너희는 나아와(1b)
들을 찌어다(1c)
민족들이여(1d)
귀를 기울일 찌어다(1e)
땅과 땅에 충만한 것(1f)
세계와 세계에서(1g)
나는 모든 것이여(1h)
들을 찌어다(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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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여호와께서(2a)
만국을 향하여(2b)
진노하시며(2c)
그들의 만군을(2d)
향하여 분내사(2e)
그들을 진멸하시며(2f)
살육케 하였은즉(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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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살육 당한 자는(3a)
내어던진바 되며(3b)
그 사체의 악취가(3c)
솟아오르고(3d)
그 피에 산들이(3e)
녹을 것이며(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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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만상이(4a)
사라지고(4b)
하늘들이(4c)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4d)
그 만상의 쇠잔함이(4e)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4f)
무화과나무 잎이(4g)
마름 같으리라(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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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칼이(5a)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5b)
보라 이것이(5c)
에돔 위에 내리며(5d)
멸망으로 정한(5e)
백성 위에 내려서(5f)
그를 심판할 것이라(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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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칼이(6a)
피 곧 어린 양과(6b)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6c)
기름 곧 수양의(6d)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6e)
이는 여호와께서(6f)
보스라에서(6g)
희생을 내시며(6h)
에돔 땅에서(6i)
큰 살육을 행하심이라(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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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7a)
한 가지로(7b)
도살장에 내려가니(7c)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7d)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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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여호와의(8a)
보수할 날이요(8b)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8c)
신원하실 해라(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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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9a)
역청이 되고(9b)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9c)
그 땅은 불붙는 역청이 되며(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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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고(10a)
그 연기가 끊임없이(10b)
떠오를 것이며(10c)
세세에 황무하여(10d)
그리로 지날 자가(10e)
영영히 없겠고(1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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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아와 고슴도치가(11a)
그 땅을 차지하며(11b)
부엉이와 까마귀가(11c)
거기 거할 것이라(11d)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11e)
공허의 추를(11f)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1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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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12a)
귀인들을 부르되(12b)
아무도 없겠고(12c)
그 모든 방백도(12d)
없게 될 것이요(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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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궁궐에는(13a)
가시나무가 나며(13b)
그 견고한 성에는(13c)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13d)
시랑의 굴과(13e)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1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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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14a)
수 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14b)
올빼미가 거기 거하여(14c)
쉬는 처소를 삼으며(1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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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15a)
알을 낳아 까서(15b)
그 그늘에 모으며(15c)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15d)
거기 모이리라(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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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여호와의 책을(16a)
자세히 읽어보라(16b)
이것들이(16c)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16d)
하나도 그 짝이(16e)
없는 것이 없으리니(16f)
이는 여호와의 입이(16g)
이를 명하셨고(16h)
그의 신이(16i)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1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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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17a)
그것들을 위하여(17b)
제비를 뽑으시며(17c)
친수로 줄을 띠어(17d)
그 땅을 그것들에게(17e)
나눠주셨으니(17f)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17g)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17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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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돔이 유다를 유린하다_Edom seduces Judah
에돔에 보복하시는 하나님_God Revenge Edom
제 짝이 없는 것이 없다_be in one's own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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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땅, 백성, 민족들을 심판하시는 크고 두려우신 주를 바라봅니다. 불의가 오래간다고 영원한 것은 아니고 역사의 마지막 문장은 강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쓰신자라는 것을 믿나이다. 누구든지 주를 대적하는 자에게 임한 심판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진정한 힘과 생명의 근원을 잊지 말고 살게 하옵소서.
We look to the great and fearful Lord who judges heaven, earth, peoples, and nations. Just as injustice does not last forever, I believe that the final sentence of history is not written by the strong, but by one who is God. May everyone not only fear the judgment that comes upon those who oppose the Lord, but also remember to live not forgetting the source of true power and life.
2026.8.25.tue. Clay
신학 비평//
불안의 시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눈에 보이는 힘이 불의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역사 주권을 믿을 수 있는가? 이사야 34장은 위로보다 심판의 언어가 훨씬 거칠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공포를 키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사의 마지막 주권이 제국이나 폭력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데 있습니다. 불의가 오래 지속된다고 해서 불의가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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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애굽과 군사력을 더 현실적인 힘으로 여긴 것처럼, 우리도 불안할수록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들기 쉽습니다. 돈, 권력, 인맥, 제도는 손에 잡히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보이는 현실의 배후에도 하나님의 심판과 섭리가 작동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에돔의 심판은 단순한 민족적 복수로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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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말하는 핵심은 하나님께서 시온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데 있습니다.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실 해”(34:8)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정의가 약자의 탄식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분노의 폭발이라기보다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우는 행위입니다. 특히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34:11)는 창세기 1장의 혼돈과 공허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밀어내고 폭력과 교만으로 세운 세계는 결국 창조의 질서를 거꾸로 돌려 다시 황무지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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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궁극적 결과는 단순한 벌이 아니라 삶의 세계 자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다만 “예언이 문자 그대로 모두 성취되어야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식으로 너무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언서는 역사적 사건, 상징, 시적 과장, 종말론적 전망을 함께 사용합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문장이 기계적으로 실현되었는가보다, 하나님이 교만한 제국을 영원히 두지 않으시고 정의를 향해 역사를 이끄신다는 신학적 증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34장의 질문은 결국 오늘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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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가 잘되고 정의가 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나는 무엇을 믿는가? 눈에 보이는 힘인가, 아니면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끝내 드러날 하나님의 통치인가? 믿음은 불안을 느끼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불안 속에서도 누구에게 역사의 마지막 말을 맡길 것인지 선택하는 일입니다. "불의가 오래간다고 영원한 것은 아니다. 역사의 마지막 문장은 강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쓰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