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설토에 들어가기 전에 이 글로나마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일본선수를 대신 변호할
그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 하며, 혹시나마 낚일 법한 WBC 에서의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의 활약을
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일단,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 "팀"의 활약은 정말로 기대이상입니다.
사실 저도 어느정도 예상은 한다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샌디에이고에서 보여준 졸전은 실망하고도 남았으니깐요.
더군다나 메이저를 상대적으로 많이 접하면서, 아시아 예선은 그렇다치더라도
어떻게 미국과 멕시코(의외로 많은 메이저리거를 볼 수 있었습니다)를 이기고 4강에 올라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한일 슈퍼게임에서 꼴랑 선동렬 선수 등판한 한 경기 이기고 나머지 모두 한 수 아래
가르침을 받은 것을 어린 시절이지만 똑똑히 봤기에 다시 일본을 이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구요.
미국 한 기자가 이랬던가요.
한국 팀은 팀플레이를 할 줄아는 "진짜 팀"(the real team)이라고.
여기에 정답이 있습니다. 베스트 멤버라 할 수 없는 일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야말로 다른 거 다 팽개치고 "국가를 위해" 그 부름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대회에 참가했으며, 해외파와 국내파가 뒤섞였지만 다 한 팀의 감독인데도 타격코치, 투수코치로
완벽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아무 불만없이 김인식 감독님 아래서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집중력은 분명 일본, 미국에 비해 앞선다고 할 수 없는 실력을, 그 이상으로 배가시키는
멋진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정신력의 승리였죠.
하지만 너무나도 흥분하게 만드는 소식에 아래에서 보여준 "사대주의"라든지,
이치로 선수를 아직까지도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막 하는 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리에 도취하는 건 좋습니다. 그건 승리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니깐요.
그러나 몇몇 사례를 보면 이건 승리를 자랑스러워하기 보다는 "우리를 깔보았던 놈들, 고소하다"로
들립니다. 이건 평소 자신들이 뛰어나기에 비아냥 거린 상대를 "역시 우리가 너희들보단 낫지"가
아니라, "평소엔 함부로 말 못 했지만 이젠 말 할 수 있다. 이럴 때 신나게 한 번 까보자."로 들립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분들의 대다수가 최근 들어서 총대를 맨냥 아주 예전부터 일관된 목소리를
내신 것처럼 하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죠.
물론 워낙 감정이 격양되다보니까 일련의 얘기까진 얼마든지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 역시도 지금의 한국팀의 성과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치로 선수의 인터뷰 원문을 보죠.
"단지 이기는게 아니라 (일본야구가)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상대가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수 없겠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확실히 이기겠다."
한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상대라고 했으니까 같은 조의 한국과 대만을 간접적으로는 지칭한 거겠죠.
그것을 중점적으로 파고 들면서 이치로가 한국을 상대로 망언을 했다는 쪽으로 해석한 쪽은
우리나라 중에서도 스포츠 찌라시 쪽이었습니다.
전형적으로 보는 이들의 눈을 자극하고 발끈하도록 만들고자하는 기사였죠.
평소에는 그토록 남들과 편승하여 찌라시 찌라시 하던 분들이, 이번 같은 기사같지도 않은 낙시질에
제대로 걸린 듯 한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도 나름대로 불안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관 정서가 다르다지만, 같은 아시아이자 옆 동네인 대한민국은 평소 늘 더 낫다고 생각했지만
"애국심"이란 건 제대로 뭔지 보여주면서 해외파 100% 참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일본은?
마쓰이, 이구치, 죠지마의 메이저리거 불참에, 심지어 국내파조차도 협조를 못 얻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제의 라인업 3번에 후쿠도메 고스케 말고 히데키 마쓰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그 불안은 현실로 다가오고야 말았고,
그렇다면 이제는 이치로의 발언은 결국 "우리는 그냥 이길 거다란 생각보단 한국한테 질 수도 있겠다고
불안해하나봐"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는 소속팀 스프링 캠프까지 빠지면서 나라를 위해
긴장타는데 누구는 다른 것도 아닌 "돈이 더 좋아서" 국가의 부름을 끝까지 저버린다는 것...
가뜩이나 동계올림픽에서도 하마터면 노골드의 수모를 당할 뻔 했던 일본, 그리고 그 낭패의 원인을
자국내에서도 "근성"이 부족하다며 정신력의 해이를 지적당하던 판에, 혹시나 올지모를 사기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주장이자 팀의 상징으로서 앞장서서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게 아닐까요.
그걸 발판삼아 의욕을 다지는 건 좋지만 (박찬호 선수도 인터뷰에서 밝혔지요) 발끈할 필요는 없고,
아직까지도 비아냥을 넘어서는 건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은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분들이 원하시는 굴욕과 "쌤통이다, 이쉑기야!!!" "그 입 함부로 놀리더니~" 정도는
이미 경기를 통해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여줬습니다. 파울볼을 놓쳤을 때 이치로가 괜히 관중들을 향해
버럭하는 모습 기억하시죠? 미국 현지 방송조차 "어차피 잡을 수 없던 공인데 저 선수 왜 저러죠"
였지만, 더군다나 실제 시즌에선 그보다 더한 관중의 방해가 있어도 원랜 얼굴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담담하게 경기에 돌아서는게 이치로 선수 아니었던가요? 결국 이것 역시 그 상황에서
"이러다 지는 거 아냐?" "진다는 건 생각도 하기 싫어"란 생각에 스스로 평정심을 잃었다고 할 수 있죠.
천하의 이치로조차.
그만큼 어제 1차전의 우리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사건을 저질른 건지,
이치로는 지금 자기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얼마나 납득이 안 되면 괜히 경기 끝나고 뷁!하는 장면이
잡혔겠습니까. 얼마나 일본이 2차전은 이기고 싶어했는지 알게 해주는 단면이라 봅니다.
적은 가능성이지만 탈락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일본이 3차전을 이겨서 목표로 하던 우승까지 하더라도
한국에선 1승 2패로 뒤졌다는 전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 국적은 버려도 학적은 못 바뀐다 할까요?
2차전도 힘든 경기가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평소 못 미더운 경기를 더 많이 본 박찬호 선수가 선발이라고 한데도 말이죠.
그만큼 이제까지 한국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3차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더 이상 일본이 그렇게까지 대단해보이진 않습니다.
이치로의 사무라이의 칼같던 방망이는 삼진으로 내동댕이 쳐졌고, 자기들 리그에서 40홈런 친다는
아라이 다카히로, 30홈런의 타무라 히토시는 오승환한테 "농락"이란게 뭔지 이번에 알았을 겁니다.
승리의 기쁨은 맘껏 즐기셔도 됩니다.
하지만 애국심과 내셔널리즘은 구분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사람인게 너무나 자랑스러우면 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애국이라면 "일본한테 뒤지는 줄 알았는데 이번 기회에 이겨 너무 고소하다."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꿈틀거릴지도 모르는 내셔널리즘일 것입니다.
"왜 일본을 이겼다고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그러는가?" 그 원천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저는 오히려 그런 행동이 "우리는 아직 일본에 미치지 못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
더욱 지양해야될 것으로 보입니다.
칸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MLB 팬은 사대주의자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정중히 사과를 요구합니다.
저부터 말씀드리자면 텍사스 팬이된 건 96년이지만, 이미 92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팬이었습니다.
첫댓글 칸원군이 특정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약간 오해가 있었던 듯. 다졌어님이 지적하신 것은 무분별한 사대주의에 빠진 엠엘비 팬인데 칸원군은 엠엘비 팬이라면 무조건 사대주의에 빠져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듯 하다는.
일리 없는 말씀은 아니시지만 톤을 약간 순화해주세용. 장미에 가시가 돋는 이유는 누군가를 찔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그렇다고 MLB 팬은 사대주의자다라고 하는건 다소 논리비약인듯 ^^;
저도 ML 팬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ML 팬 중 몇몇 야구 사대주의에 빠진 이들에게 한 말이지 ML 팬은 다 사대주의자라고 한 말이 절대 아닙니다.
음 상당히 일리 있는 말씀이시네요. 근데 이치로의 발언이요, 한국 스포츠 찌라시 뿐만 아니라, ESPN에서도 한국과 대만이라고 괄호 처리해서 분명히 지칭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2라운드 중계 방송 때 계속 자막 내보내 주면서 한국과 대만에게 엄포 넣은 거라고 미국 중계진들도 흥미로워 하던데요.
이번만큼은 이치로가 오버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같습니다. 그건 한국 스포츠 찌라시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