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무척 바빴던 날들이 지나가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됩니다.
주님 안에서 쉼을 갖게 하옵소서.
오늘, 컴퓨터가 잘 고쳐져서
일상의 평온함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은 자임을 생각하며
자기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성령님께서 인도하여 주실 줄 믿고 나아갑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 그 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전할 자가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 있는 헐벗은 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하게 하려 함도 아니며
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13. 보라 그가 구름 같이 올라오나니 그의 병거는 회오리바람 같고 그의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14.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15.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16. 너희는 여러 나라에 전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리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17.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했기 때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21. 내가 저 깃발을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본문 주해)
11~18절 :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섭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바벨론 군대가 구름과 회오리바람처럼 몰려오는데 그것들이 독수리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기에 다 멸망한다고 한다.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는 유다 전 지역에 재앙이 닥친다는 선언이다.
‘단’은 팔레스타인의 최북단이고, ‘에브라임 산’은 예루살렘 인접의 언덕을 말한다.
결국 바벨론이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항하여 진군하여 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선지자는 명백하게 밝히며 회개를 촉구한다.
그것은 마음의 악을 씻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고 성경은 증거 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8:21)
이것은 우리가 회개하여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도 없고, 결국은 심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네 길과 행위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네가 악함이라”(18절)
19~21절 : ‘슬프고 아프다’는 이 표현의 히브리어는 ‘내 창자여 내 창자여’ 하는 말이다.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 임산부의 해산의 고통과 같이 아프고 답답하여 잠잠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의 심령에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듣기 때문이다.
“아이고, 배야. 창자가 뒤틀려서 견딜 수 없구나. 아이고, 가슴이야. 심장이 몹시 뛰어서, 잠자코 있을 수가 없구나. 나팔 소리가 들려 오고, 전쟁의 함성이 들려 온다. 재난에 재난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온 나라가 황무지가 된다. 홀연히 나의 천막집도 무너지고, 순식간에 나의 장막집도 찢긴다. 저 전쟁 깃발을 언제까지 더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가? 저 나팔 소리를 언제까지 더 듣고 있어야만 하는가?”(새번역)
22절 : 이에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고 하신다.
악을 행하기는 지각이 있지만 선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없는 자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회개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회개를 하여도 거짓된 회개나 할 뿐이기에 결국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만다.
(나의 묵상)
‘슬프고 아프다’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의 고통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의 고통이리라.
하나님의 고통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네팔 단기 선교에서 복음을 전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철 영어의 <Who made the world?>를 사용했다.
그 내용 중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만드신 이유가 ‘to love’와 ‘to be loved’로 표현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전에 이 과정을 수료할 때는 ‘그렇지’ 하며 지나쳤던 내용인데 지금은 너무도 중요한 부분임을 느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한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영생이기 때문이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 (딛1:2)
하나님께서 나를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내 삶의 최우선은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으며 이 영생을 누리는 가운데 교회 사역을 하고 전도하며 선교도 하며 봉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도 얼마든지 전도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자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의 공통 특징은, 열심은 있으나 자기중심적이요, 겉으로 드러난 결과 중심적이라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많다. 그러니 화도 잘 내고 이기적이며 자기의로 충만하다.
나도 과거엔 철저히 그런 부류에 속했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은 나의 부족함으로 오는 시행착오 속에서 적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기에, 아니 잘 모를 때에도 속히 십자가 앞으로 달려간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모른다.
나를 기준으로 해서 볼 때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겨우 4년이 조금 넘는 말씀 묵상의 시간으로도 나는 30년 동안의 나의 묵은 신앙생활을 갈아엎을 수 있었다.
그것을 말해 주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 그건 특별한 너나 잘해라’는 식으로 흘려듣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로 다른 구별된 시간을 가지는 것도 아닌데.....
혹자는 ‘금식기도, 특별 새벽기도, 일천번제...’등등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그 기도 시간을 무시하고픈 마음은 없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통해 어떻게 그 사람을 다루실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기도 시간이 하나님을 더 알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결국 자기 소원성취를 바라는 것인지를 안다면 참다운 교제 시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으리라.
아담의 범죄 이후 죄악 속을 헤매고 다니는 인간은 스스로 참 회개를 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것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아버지께로 갈 길을 열어주셨다.
주님께서 죽음으로 열어주신 이 길을 가지 않는 자야말로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에 해당하는 자라 할 수 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디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갈 수 있을까?
선을 행하는 지혜를 어디서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묵상 기도)
주님,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꼿꼿한 목과 반반한 이마를 용서해 주시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며
십자가를 붙들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게 베풀어 주신 이 크고 놀라운 은혜를
슬프고 아픈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힘도 능도 없는 부족한 저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