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으로
공동체란 말은 매우 아름다운 어휘이나 그냥 가볍게 부르기에는 부담감이 가는 무거운 느낌을 준다. 더욱이 신앙공동체나 우리의 갱신공동체는 고백하는 믿음의 내용이 같아야 하며 그와 같은 행위가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각자가 그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지는 것을 공동체 의식이라 한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을 구성원이 공유할 때 공동체를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초대교회와 달리 물질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에 귀속해 있다는 정신적 기반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느슨한 모임이다. 좁게는 한시적인 광야의 예배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 그러한 공동체 의식이 무디어지고 목표 지향보다는 구성원 간의 사소한 다름에 불편해지고 불평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는 마치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민수기 11:5-6)라고 불평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혹 공동체 구성원 간의 생각이 모두 같을 때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성일 것이다. 개인에 따라 개성이 다름과 같이, 지엽적이고 사소한 일에는 다를지 몰라도 큰 그림이나 방향에는 일치를 보이면 그러한 공동체는 건강할 것이다. 여기서 구성원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 개인의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고 기피 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다름에 대한 불평에 관해, 토마스 아 켐피스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런데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불평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리스도에게도 원수들과 그를 해치려 드는 악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당신의 친구와 동정을 해주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공자는, “군자는 조화롭게 어울리지만, 반드시 같기를 요구하지 않고(화이부동, 和而不同), 소인은 반드시 같기를 요구하지만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다”(동이불화, 同而不和)라고 했다. 어쩌면 이 화이부동의 마음은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 감춰진 약속이나 불문율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감춰진 약속이나 불문율 일지라도 서로 지켜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미덕일 것이다.
저들은 지난주 축제 분위기였다는 데, 우리는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참고로 지난해 12월4일에 사랑 넷에 올린 같은 내용을 아래와 같이 일부 소개합니다.>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하나 되는 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 된다는 것은 공동체 개인의 다양성을 배제하여 획일화하려는 일이 아니다. 서로 용납하는 것은 곧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개인이 화합하여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성도 개인의 의지로는 이루기가 어려운 일이므로,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다.
여기서 안타까운 사실은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헌신했다고 확신하는 성도들일수록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자신의 교회관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신념이 어떤 기회로 훼손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면, 이제까지 쌓았던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피해의식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도 공동체의 덕을 세우고 하나 되기 위해 오래 참는 것이 성숙한 순례자의 모습이 될 것이다.
아무리 화려함을 자랑했던 단풍잎들도 땅에 떨어지면 보통의 나뭇잎과 다르지 않은 낙엽이 된다. 그때가 비로소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기를 비우고 빈 가지가 되어야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빈 가지는 이듬해 봄에 다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분명 공동체에 남은 자들을 기뻐하시며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주실 것이다.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땅을 고쳐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화이부동의 마음으로 하나 되어 다시 아름다운 땅을 순례하는 겨울 나그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2022.12.4
첫댓글 "주님은 분명 공동체에 남은 자들을 기뻐하시며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주실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