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인간)이 태동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연의 의도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즉, 부여받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성멸(成滅)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규정한 '부귀빈천(富貴貧賤)'은 자연의 의도가 아닙니다. 자연의 의도는 '약육강식(弱肉强食)'입니다. 그래야만 자연의 본질(本質)인 순환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은 만물(인간)이 객체수를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나 터전을 인식하게 하고, 더 나아가 만물(인간)이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질서를 인지하게 합니다.
'음양과 오행'은 자연과 만물(인간)이 하나가 되는 방법을 궁구하여 정립한 이치(理致)가 됩니다. 그리고 '십간과 십이지'는 자연이 만물(인간)에게 선물한 은혜로움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 칼질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치 만물(인간)이 자연이 보여주는 시간과 공간을 왜곡할 수 있다고 우기는 '어깃장'과 같은 것입니다.
이제는 깨어나야 합니다. 자연의 의도를 여과없이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자연의 의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혜안(慧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물(인간)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잠깐 아니 찰나를 살다가 가는 객체(客體)일 뿐입니다.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주체(主體)가 되는 자연뿐 입니다.